나의 언어
내 삶이 외로움을 업고 가는 여정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마치 영화 ’트루먼쇼‘의 짐 캐리 처럼
때때로 사람들은,
너무도 진짜인 나를
신기해하며 살피는 것 같아.
이 가짜 같은 세상에서
실핏줄이 터질 만큼 얇은 피부는
작은 추위에도 감기에 걸리게 하고
동상을 입어 아렸다.
혹시 몰라 가장 아끼는 속옷을
세트로 맞춰 입었는데 다행이다.
“저… 옷은 어디서 벗죠?”
“화장실은 밖에 있는데
저 큰 이젤 뒤에서 벗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뒤를 돌아보니 다른 이젤에 비해
조금 큰 화판이 뉘어있는 이젤이 보인다.
그래봤자 팔과 다리의 실루엣은
휠체어 남자에게 드러나겠지만
내게 특별히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 같았다.
쑥스러운 기색으로 이젤 뒤에 몸을 숨긴 채
상의를 벗어 화판에 걸었다.
스르륵 걷어낸 치마도 걸어놓은 상의 위에 얹어놓고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익숙지 않은 상황에 쑥스러워 보였을 숙녀를 배려한
남자의 동공은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천천히 나에게로 굴러왔다.
그리고 그 순간, 표정이 굳는다.
탐탁지 않은 듯이.
“아뇨, 속옷까지 다 벗으셔야 해요.
전라 상태로 모델하실 거라
상처나 문신이 있는지 미리 확인해야 하거든요…”
다소 당황스러운 요구사항이었지만
납득이 되는 설명이었기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양손을 뒤로 젖혀
브래지어 끈부터 풀어냈다.
이젤 뒤로 숨는 것도 부질없는 짓인 것 같아
체념한 듯, 시선 아래에 맨가슴과 음부를 드러냈다.
기이하다.
지금 대학가 음습한 지하 화실에는
휠체어 탄 장애인 남자
그 앞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한 여자가 서있다.
보정 속옷으로 가슴을 크게 할 수도 없고
커버업으로 실루엣을 가릴 수도 없는
맨몸으로 태어나 부끄러움을 배운 이후 처음으로
나를 보아달라 우두커니 한 이 상황이
어색하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가슴이 예쁘시네요.”
AI 로봇의 불량이라도 검수하듯
분석하는 눈으로 나체의 여자를 살피던 남자가
운을 뗀 첫마디.
“이제 옷 입어도 될까요?”
하는 물음에 그는 대답보다 먼저 내 눈을 마주친다.
”네. 결과는 문자로 알려드릴게요.“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진짜 누드모델을 하게 된다면…
실제 벌어질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다음으론 오늘 벌어졌던 기이한 그 장면에 대한
약간의 쾌감을 부인하긴 힘들었다.
애지중지 아끼던 나를 조금 더럽혔으니
이건 부모님께 선물하는 소심한 복수랄까.
해방이 주는 짜릿함.
곧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지만
사실 그렇게 기쁘거나 놀랍지는 않았다.
“죄송합니다. 생각해 보니 창피해서 못할 것 같아요.”
답장 한 뒤,
나는 다시 트루먼 쇼 정숙한 여인으로 돌아가기로.
하지만 이제, 비상구를 알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