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여는 여자
나는 ‘선한 사람’이며 ‘정결한 여성’이다.
지난주 클럽을 갔을 때만 해도
남자와 사라져 버린 친구와 달리
그들을 뿌리치고 숙소로 돌아와 컵라면을 먹은 나는,
시급이 세다며 바에서 알바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웃음 파는 일은 천하다 생각하는
나는, 올곧은 아가씨다.
키스는 세 번째 만남 다음부터다.
섹스는 100일 뒤다.
배 아래를 선민의식으로 가득 채워 의기양양한 나다.
그런 건 전혀, 조금도 궁금하지 않다.
내가 그 게시물을 발견한 건
가끔 정보를 얻기 위해 들락거리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다.
집 근처 들릴만한 화실을 검색하던 중
눈에 띈 누드모델 구인 공고.
정확히는 누드 크로키 모델이다.
당시 내가 하던 일은 최저시급에 가까운 박봉이었는데
짬을 내서 잠시 다녀오기만 하면
하루 일당을 벌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나 정도면.. 하는 귀여운 자신감과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호기심이
내 갸륵한 선민의식을 합리화했다.
빠른 답장에 곧장 다음 날로 면접 날짜를 잡았다.
화실은 집에서 느린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리는
건물 지하에 위치해 있었는데
매일 이 동네를 순찰하듯 오가면서도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시정되지 않은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용 중인 이젤이 여러 개 깔려있었고
여느 화실이나 다를 바 없이
정리된 듯 부산한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일찍 도착한 게 아닌데도 사람이 없길래
빙글빙글 돌며 조금 구경했다.
몇 분 흐르지 않자
누군가가 쿵쿵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는데
일반적인 발소리가 아니었다.
철문이 열리자 목발을 짚고 다리에 힘이 없어 보이는
남자가 나타나 나에게 짧게 인사했다.
화실에 미리 놓여있던 휠체어에 몸을 편히 하는
그는 장애인이었다.
30대 초반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그의 외모는
평범했으나 다소 꼿꼿해 보이는 인상이 있었다.
널브러진 이젤 사이로 잠깐의 적막함과 긴장이 흘렀다.
그는 휠체어를 내 한 뼘 앞까지 끌고 왔는데
순간 꼴깍 침삼키는 소리가 밖으로 들릴까 걱정했다.
자원봉사를 제외하고는
장애인을 이렇게 가까이 마주한 게 처음 있는 일이라.
그는 짧은 눈인사를 한 뒤,
나를 올려다보며 간단한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집은 가깝고… 어… 이름은 문자로 말씀 주셨죠?
음… 그럼 한 번 벗어보시겠어요?”
아? 이렇게 갑자기?
처음 보는 남자와 둘 뿐인 지하실에서
목적 없는 무장해제?
망설이던 마음도 잠시
그의 휠체어를 다시금 확인하니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만 같다.
‘혹시... 나쁜 짓 하더라도, 밀어버리면 그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