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있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옷매무새에 남편이 OK 사인을 내보였다. 나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품고 주말 아침 부산스레 기차역으로 향했다. 타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결혼식은 핑계에 가까웠다. 따로 만나려던 사람이 있었지만 끝내 만날 수 없게 되었고, 그래도 기왕 길을 나선 김에 식장에는 가기로 했다. 그 덕에 본의 아니게 인정 많은 사람이 된 그날의 나는, 무언가를 놓친 사람임과 동시에 뜻밖의 무언가를 찾으러 나서는 사람 같기도 했다. 아직 봄바람이 매섭다기에 코트를 껴입었는데, 막상 마주한 날씨는 생각보다 훨씬 포근했다.
vc19111. 우연히 알게 된 노래가 기차역의 나를 청승맞게 만들었다. 여전히 촌스러운 마음은 늙는 법을 모른다 싶어, 잠깐 멍하니 서서 감상에 빠지려던 찰나였다.
“혹시… 미정이 맞나?”
나씨였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잇살이 제법 붙어 이제는 정말 영락없는 아저씨가 되어버린 나씨. 나이는 서너 살 많은 오빠였지만 우리는 자주 붙어다녔다. 함께 자전거도 타고, 바보 같은 내기도 하고, 공부가 시원찮을 땐 도서관 뒤에서 담배도 나눠 피우곤 했다. 나는 우리가 꽤 친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에 비해 나씨는 해외취업과 동시에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원래 이곳에 없었던 사람처럼.
너무 놀란 우리는 수분간 빈틈없이 서로의 얼굴을 뜯어보며 폴짝폴짝 뛰었다. 신기한 건 그는 4년 만에 단 이틀 입국한 것이었고, 더 신기한 건 우리가 기다리던 열차의 번호가 같았다는 것이고, 더, 더 신기한 건 둘 다 입석이었다.
단 두 시간 반 동안 10년을 말해야 하니 우리는 잠시도 쉬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게, 섹시한 그 BJ에게 나씨가 차였던 썰이었다. 심지어 그 이야기를 나씨보다 내가 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얼마나 웃었는지... 당나귀를 닮은 눈에서 기쁨, 반가움, 놀라움, 미안함, 아쉬움 같은 것들이 쏟아졌고, 나는 덜컹거리는 열차가 가는 내내 그걸 주워 담기를 반복했다. 내리는 길, 그는 내 결혼도 아이도 가까이서 축하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가진 현금을 전부 쥐여줬다. 한사코 거절하려던 손사래가 끝내 실패한 건,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 나는 마흔 먹은 외간 남자를 울리는 유부녀야.
인연이라는 게 늘 내 뜻대로 지켜지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자꾸 착각했고, 그래서 슬펐다. 하지만 어떤 인연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뜻밖에도 입석 칸에서 옛 기억과 함께 다시 주워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