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플랫폼

인트로1, 잊히지않는 라디오 프로그램

by 여의강

고등학생 때 입주 가정교사를 한 적이 있었다.

중학교 담임선생님의 소개로 1년 후배의 집에서

전 과목 진학지도를 한 것이었다.

가르친 지 한 달도 못되어 후배의 학교 성적이

크게 향상되자

그 집 어르신들의 분위기는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비록 많지 않은 돈이지만

집안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자부심과 독립정신,

날로 좋아지는 후배의 성적에 집 떠난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사춘기 시절,

순간적으로 바뀌는 감정을 이성적으로 컨트롤하기에는 피가 너무 뜨거웠다.

희망으로 가득 찼던 청춘의 봄날이 갑자기 우울과 고독만이 있는 절망의 나락으로 바뀌기를

수없이 반복하곤 했으니.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키우던 호연지기와

극단의 외로움을 중재할 무엇인가가

더 필요한 시기였다.


그럴 때 조용히 힘이 되어준 것이 라디오였다.

TV가 귀하던 시절 진공관식이나 별표 전축으로 듣던 연속극을 통해 일찍이 라디오와 친해졌었고,

이후에도 ‘전설 따라 삼천리, 별이 빛나던 밤에,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의 프로를 통해

청각에 의한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나갔었다.

그때 라디오와의 인연 때문이었던가,

우연히 내 인생에서의 첫 직업이

라디오 광고를 파는 것이었고

재미있게 그 일들을 해내갔던 것 같다.


가정교사 시절 가장 심취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은

‘밤의 플랫폼’이었다.

통행금지가 있던 1970년대의 동아방송,

밤 10시 즈음 종착역을 향해 치닫는

증기기관차의 굉음이 절정을 이루었다 사라진다.

그리고 폴 모리아 악단의 왈츠곡 ‘이사도라’가 배경음으로 깔린다.

저 유명한 김세원 아나운서가 조용히 시그널을 알리고

-그 사이에 광고 몇 편이 있었던 것 같다-

짤막한 에세이와 밤의 정취에 맞는

음악 몇 곡이 소개된다.

영화 ‘친절한 금자 씨’의 내레이터로도 잘 알려진 그녀의 목소리는

이유 없는 젊은 날의 분노와 열정을 차분히 가라앉히기에

충분히 감미롭고 퇴폐적이었으며,

고혹적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반해 무작정 방송국으로 찾아와 청혼을 하거나,

자살까지 감행한 젊은이들의 에피소드가

당시에 회자되기도 했었다.

사연의 막간에 소개되던 음악 또한

Animals의 ‘House of the rising sun',

영화 천일의 앤의 OST 'Farewell my love' 등

어린 영혼을 뒤흔드는 것들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지금은 방송국조차 사라져 다시 들을 수없는 프로이지만,

질풍노도의 시절에 가슴 깊이 각인되어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프로그램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그 프로가 방송된다면

겨울이 그리 길지만은 않았을 텐데.


*오래전 글을 가다듬어 첫 글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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