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2021

가을 단상

by 여의강


1.


밤기차에 몸을 실었다

피곤이 지칠 즈음

여명을 앞세운

바다가 피어났다


신기함으로 빛나던

마라도 여름 바다는

포옹을 받아주었다

능력껏 보듬으라

속살도 내어주었다


바다는 하나였지만

제주 홍도 울릉도와

사이판 티니안 아닐라오 세부

자메이카의 바다는

각기 다른 모습이었다


바다는 하나였지만

가슴을 베일듯한 가을 바다와

성난 파도 품은 겨울 바다

졸고 있는 봄 바다

활력의 여름 바다는

매 철 다른 풍경이었다


바다는 하나지만

혼자의 바다와

너와의 바다는 달랐다


바다는 항상 하늘과 함께 했다

때론 푸르고

때론 잿빛이고

때론 눈비를 뿌리는


바다는 늘 바람과 함께 했다

때론 온화하고

때론 포효하고

때론 침묵하는


바다는 빛났다




2.


그런

내가 알던 바다는

내가 알던 세상과 함께

파도에 쓸려갔다


후진국서 태어나

어쩌다

선진국에 와있는

지금


성실과 근면은

절대선에서 멀어졌고

노력만으론 따라갈 수 없는

다른 세상이

멀리 앞서 가고 있다


시련과 빈곤의 바닷가는

풍요와 천박함으로 채워졌다


생선은 귀해졌고

넘쳐났던 쥐치와

해삼 멍게 게르치도

소주 안주로는

접하기 힘든 귀한 몸이 되어있었다

바가지를 든 상인들 사이에

인심 좋은 주모는 사라졌고


비루한 해변은

금싸라기 땅이 되어

카페며 횟집이며 모텔을

마구 토해냈다


뺏으려는 것과

지키려는 것이 투쟁하는 곳


바다는 앓고 있었다




3.


밤바다

붉은 달이

푸른 바다를 대신했다

소주잔에 달이 뜨고

너의 얼굴에도

슬픔이 떴다


'아직은 처녀인,

내가 마시면 대신 취해주었던'

시인들의 바다도 떠올랐다


월식으로 몸을 가렸던 달이

지구의 그림자를 벗어났다


가을의 마지막 날

지금 나는 도심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하

전철 한켠에 몸을 기대고 있다

차창에 비친 내가

무심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을 버리고

이것만을 버리고

빈한한 주객이

잔을 들어 취할 수 있는

빈 바다를 찾아가자


내가 알던 나는

여기 없지만,

내가 알던 바다는

아직 거기 있을까?


가서 보자

바다로


너도 함께 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