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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Feb 20. 2019

우리 무슨 사이야?

영화 <500일의 썸머>를 보고

어떤 이는 첫사랑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라고 칭송하고, 어떤 이는 답답한 남자의 찌질한 스토리라고 대답한다. 한국에는 첫사랑에 대한 영화인 <건축학 개론>이 존재하는데 영화 <500일의 썸머>가 이와 비슷한 영화라 생각한다. 남자들에겐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이지만, 대부분의 여자에겐 미숙한 남자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영화의 시작에 누군가를 연상되면 어쩌고 저쩌고 나오면서 특히 XX넌 아냐, 나쁜 X라는 자막이 뜨면서 시작한다. 이미 영화의 시작부터 우리는 감독의 세뇌에 잡혀서 영화를 보게 된다.



#영화나 책이나 두 번째 볼 때는 새로운 게 보인다.


나는 좋아했던 영화는 여러 번 보는 성격이다. 처음에는 전체 스토리와 주인공에 집중하지만, 두 번째나 세 번째에 보게 되면 주인공 주변이 보인다. 주인공을 바라보는 조연들, 지나가는 조연들, 배경, 말투, 눈빛 등 처음에는 미쳐 보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재미를 가지게 된다. 처음에 볼 때는 잘 이해되지 않았던 행동이나 말투가 숨겨진 단서들을 찾는 것처럼 눈에 보이면서 선이 연결된다.


책도 다시 읽게 되면 감상이 달라진다. 내가 책을 처음 읽었던 시점과 다시 읽는 시점 사이에 여러 삶을 경험하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 달라진다. 하지만, 책은 워낙 많이 쌓여있어서 다시 보기가 꽤 힘든다. 그래도 가끔 어떤 구문들이 궁금하거나 생각이 나면 해당 파트만 다시 찾아서 보게 된다. 전체는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운 감상평을 얻게 된다.


내가 작성하는 대부분의 영화 포스트 역시 다시 보고 작성한 것들이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게 되면서 나만의 시선을 갖게 된다. 주변의 신호들과 단서들을 연결하면서 감독이 애써 감춰두었던 스토리를 읽게 되는 재미가 있다. 영화 <500일의 썸머>는 추천을 받았다. 영화 내내 썸머는 톰에게 신호를 보냈단다. 나는 전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썸머의 신호들을 추적하기 위해서 영화를 다시 봤다.



#관계에 대한 정의를 내렸잖아.


첫 시작에서 바로 알았다. 썸머와 톰의 관계는 톰이 스스로 내렸다. 물론 그는 겁쟁이에 소심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둘의 관계가 합의가 되었기에 톰은 딱히 억울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첫 회식에서 톰의 친한 동료가 취해서 집에 가기 전에 썸머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건넨다. "톰이 당신을 좋아한데요!" 사랑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던 썸머는 호기심을 가졌고, 기대를 가진 눈빛으로 톰에게 다시 묻는다. "네가 날 좋아한다는데 사실이야?" 여기서 톰이 "사실 난 널 처음 본 순간부터 반했어."라고 돌직구를 날려야 했다. 하지만 톰은 "응, 좋은 사람 같아."라는 멍.청.한. 대답을 남긴다. 실망하는 썸머는 "친구로?"라 물었고 톰은 "친구로"라고 명백하게 대답한다. 우리는 '친구'라는 합의서에 둘은 도장을 찍은 것이다. 


물론 톰은 1) 거절당하는 두려움 2) 회식에서 썸머가 말했던 사랑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3) 친구로부터 시작하면 된다는 희망 등에 의거해서 대답을 한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화학반응이 아니다. 당신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선을 넘은 것은 톰이잖아


썸머가 인쇄실에서 톰에게 키스를 건네고(부러웠다.)부터 둘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관계가 시작될 때 썸머는 톰에게 미리 자신의 의사를 건넸다. "나는 복잡하고 무거운 관계는 싫어." 선택은 톰에게 넘겨졌다. 톰은 여기서도 '동의'를 한다. 하지만, 초반에 관계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는다면 결국 해석에 대한 차이로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여자 친구로 정의되고 싶지 않았던 썸머, 톰은 사귀다가 보면 썸머가 자신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고 애매한 관계도 결국 선명하게 정의될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썸머는 지금 같은 관계가 좋았다. 톰은 관계를 확인받고 싶어 하고, 연인으로서 당당하고 싶었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당당하게 우린 사귀는 사이야 라고 말하고 싶었다. 동상이몽이라고 하지 않는가, 둘은 같이 있었지만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기에 결국 터지고 말았다. 결국 썸머는 관계의 정의에 집착하고, 전 애인을 농담 삼아 꺼내면서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에 지쳤고, 떠났다.



#그녀를 보지 않고, 네가 보고 싶은 그녀를 본 것은 아닐까?


톰이 썸머를 본 순간 톰은 운명이라고 느꼈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고, 그녀가 떠나가면 세상은 불행해졌다. 톰은 자신이 썸머에게 운명이라고 느꼈듯이, 썸머도 톰을 운명으로 느낀다고 믿고 싶었다. 그래야지 '공평한'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사랑에 있어서 항상 공평한 것은 없다.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은데 공평함을 찾는 것은 마른하늘에서 별을 따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썸머에게 빠지고 썸머에게 직진인 톰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썸머를 보았다. 그녀가 자신의 운명이니까 그녀는 자신이 상상하는 그대로의 여자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톰은 썸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직 자신이 좋아하면 썸머도 좋아할 것이라 믿었다. 굉장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연애에 있어서 상대를 보지 않고 본인이 보고 싶어 하는 대로 상대를 본다면, 분명 트러블이 생긴다. 아니, 생기기 마련이다.



#연인은 당신의 액세서리가 아니다.


톰은 썸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책을 보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왜 링고 스타를 좋아하는지, 영화를 보면서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멍청하게도 그냥 썸머가 곁에 있으면 좋았다. 그녀가 왜 기분이 별로인지, 그녀가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 이해하지 않았다.


톰은 썸머를 단순히 옆에 두면서 행복감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썸머는 하나의 인격체이다. 생각을 할 수 있고, 자유의지가 존재한다. 톰이 관계를 원했다면 그녀에게 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서는 안됐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기에 톰은 성숙하지 못했고 그녀가 곁에 있다는 이유로 그녀를 다 가졌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음 때문에 썸머를 놓치고 말았다.


톰이 썸머의 파티에 초대받아서 가게 되었을 때도, 톰은 썸머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선물했다. 그녀가 좋아할 만한 책이 아니라. 여전히 톰은 썸머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고 상상했기에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늘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 썸머는 톰을 친구라 생각했지만, 톰은 썸머와 다시 잘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톰은 불행했고, 분노했다.



#살면서 한 번쯤 찌질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썸머가 사라진 톰의 세상은 태양도 뜨지 않는 겨울이었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고,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행동했다. 운명이라 믿었던 자가 자신을 버려두었기에 배신감이 들었고, 사랑이라는 아름다움의 허구성에 대해 비판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은 혼자 짊어진 것처럼 행동했지만, 그래 살면서 한 번쯤은 찌질해질필요가 있다.


정상적인 삶이 망가지고, 술에 실컷 취하고, 사랑했던 사람을 욕하고, 여기저기 시비도 걸고 다니면서 살아봐야 한다. 슬픔을 겪어보지 않으면 행복을 알 수 없다. 실패를 해보지 않으면 성공을 기도할 수도 없다. 살면서 사랑 때문에 한 번은 찌질해져봐야 사랑의 참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찌질한 시간이 너무 오래되면 안 된다.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찌질한 시간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겠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직접 해야만 한다. 스스로 털고 일어나서 새로운 세상을 봐야 한다. 실패를 극복하고 주춧돌을 삼아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시 시작하는 것은 절대로 창피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자, 이제 어른이 될 시간이야.


어른은 무엇일까? 나이가 들었다고 모두가 어른일까? 어제보다 오늘 더 성숙해졌다면, 어제보다 오늘은 어른이 된 것이라 생각한다. 자, 이제 톰이 어른이 될 시간이다. 톰은 운명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랑에 아프고 어두운 암흑기를 거쳐가면서 사랑의 허구를 느꼈다. 운명은 믿지 않고, 직접 나서서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톰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썸머는 원래 어른이었을까? 아니다. 썸머도 톰처럼 미숙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어차피 사랑이라는 것은 끝나는 것인데 감정을 쌓아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톰에게 뜻하지 않은 상처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썸머를 비난할 수도 없다. 썸머도 그저 톰처럼 성장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썸머는 결혼을 했다.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서 책의 내용을 물었어. 그 사람이 지금의 내 남편이야." 톰은 어안이 벙벙해졌고,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아니 우리는 이해가 간다. 톰은 썸머를 통해서 사랑의 다른 면을 알게 되었고, 썸머 역시 톰을 통해서 사랑의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둘은 서로의 짝이 아니었지만 서로를 성장시켜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그걸로 되었다. 그렇게 서로를 통해서 한 걸음 더 발전했으면 그 시간도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본다.



인생은 우연이다. 모든 것들은 정해지지 않았고, 그때그때의 순간들의 작은 선택들이 우연처럼 모여서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 낸다. 단순히 우연을 운명으로 해석하지 않고 순간순간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처럼 가장 적당한 시간에 운명처럼 내 짝이 나타난다. 그 사람이 내 운명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내가 살면서 겪어온 경험으로 인해서 상대를 알아볼 수 있다. 내 지치고 힘들었던 지난 사랑을 토대로 내 짝을 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영화 <500일의 썸머>는 지질한 남자가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이다. 영화 포스터에도 적혀있듯이 이 영화는 사랑이야기가 아니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랑은 굉장히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우리가 본 영화 <500일의 썸머>는 사랑을 잘 모르던 시기에 우리가 공통적으로 겪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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