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아 유어 프렌즈>를 보고
영화 <위아 유어 프렌즈>는 과거 내 우상 중 하나였던 잭 애프론이 출현했다. 잭 애프론은 영화 <17 Again>부터 늘 변함없는 동안 외모와 끝내주는 몸을 유지하고 있기에 내 선망의 대상 중 한 명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그의 영화는 조금 유치하면서도 약간의 교훈이 존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보기에 참 편하기에 나는 종종 잭 애프론의 영화를 찾아보곤 했다.
영화 <위아 유어 프렌즈>는 맥스 조셉 감독이 2015년에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다. 맥스 조셉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촬영한 작품이 2개뿐이기에 초짜 감독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영화 <위아 유어 프렌즈>에서의 감독의 촬영 방법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신선한 면이 있어서 내겐 꽤나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영화는 유명한 Dj가 되고 싶은 콜(잭 애프론)의 늦은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다. 굉장히 뻔한 DJ 음악이 나오는 뮤직 음악일 듯 하지만 그냥 늦은 성장통에 대한 영화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데 이상하게 여운이 길었다.
#친구와 함께여서 행복하다
한국의 도시 이름도 잘 모르는 나는, 미국 영화에서 들어보지 못한 도시 이름이 나오면 죄다 시골로 치부했다. 물론, 사실에 입각한 판단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는 순간에는 단순한 판단이 이해하기에 편했다. 그러니까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도시는 내게 한적한 시골 혹은 경기도의 느낌을 주었다. 물론 그러했다. 사람들이 많이 살지도 않고 도심의 바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각자의 꿈이 존재한다. 이루고 싶은 것이 있고, 행복하고 싶다. 콜의 친구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지낸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괜찮고, 같이 있기에 두려울 것이 없다. 친구는 항상 의지가 되는 존재이기에, 그들에게는 끈끈한 우정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있었다. 각자의 꿈이 있지만, 그들은 콜의 목요일 DJ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기 위해서 함께 움직인다. 각자의 역할이 존재하고 서로를 신뢰하기에 크게 터치하지도 않는다. 이상적인 친구 관계이기에 조금 엉망이 된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들은 함께여서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
#사랑 때문이라면 친구들도 이해해줄 거야
콜은 DJ를 마친 후 담배(라고 하자)를 피다가 잘 나가던 DJ 제임스와 담소를 나눈다. 제임스는 자신에게 말을 건 콜을 데리고 다른 파티로 움직인다. 신종 담배를 피우고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이 부분이 굉장히 신선했다. 약에 취한 것과 EDM을 적절하게 만화적으로 표현했는데 음악과도 잘 맞고 신선했다. 젊음은 언제나 기존의 것에 새로운 발상을 추가하기 때문에 신선한 재미가 존재한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아침에 눈을 뜬 콜은 제임스의 집에서 제임스의 여자 친구면서 비서인 소피를 만나게 된다. 이미 클럽에서 한번 마주쳤던 소피에게 콜은 자연스럽게 끌렸다. 아마 영화 <위아 유어 프렌즈>의 가장 큰 득실은 소피를 연기했던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일지도 모른다. 감독은 소피를 굉장히 매력적으로 드러날 수 있게 촬영을 했는데, 감독의 사심이 들어갔나 싶을 정도였다.
제임스에게 DJ를 배우면서 소피에게 계속 마음이 끌렸던 콜은 라스베이거스의 행사에서 친구들을 버리고 소피와 즐거운 밤을 보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어나는 둘의 풋풋한 사랑 연기가 너무나 잘 어울려서 보는 내내 흐뭇했다. 콜은 소피와 함께 데이트를 하고 뛰어다니느라 걱정하는 친구들의 모든 전화를 무시했다. 친구들은 밤새 기다리며 걱정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사랑 때문이라면 친구들은 언제든지 이해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꿈을 꾼 친구들이 각자의 길을 떠난다.
꿈은 꾸고 있지만, 적당한 돈벌이가 없던 콜과 친구들은 동네에서 부동산업으로 돈을 만지는 페이지의 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페이지는 굉장히 얼굴이 익숙했는데,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에서 사랑꾼으로 나왔던 아저씨다. 분위기가 굉장히 야비해져서 어색했지만, 이는 그분의 연기력이 출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동산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면서도 콜과 친구들은 꿈에 대한 고민을 한다. 같이 있지만, 마음속에 둔 꿈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다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노력을 한다. 무언가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던 파티 날에 무리 중 가장 연약했던 스쿼럴이 죽었다.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고, 네 개의 기둥으로 버티고 있던 친구들은 무너졌다. 이제는 각자의 길을 걸어갈 시간이다. 함께 많은 꿈을 꾸었지만,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지막까지 함께 갈 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살아오면서 깨달았던 것과 같은 것들이 생각났을 것이다.
함께 가고 싶고, 먼저 떠나면 배신 같지만 끝까지 함께 같은 꿈을 꿀 수는 없다. 친구들도 각자의 삶이 존재하고 꿈이 있기 때문이다. 스쿼럴의 죽음을 계기로 이들은 조금 더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것에 집중한다. 약간의 다툼이 있었지만, 괜찮을 것이다. 이들은 친구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모일 것이다.
#Are we ever gonna be better than this?
제임스에게 DJ를 배우는 콜은 주변의 진짜 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EDM이 컴퓨터 사운드로 만드는 소리이지만 사람들은 진짜 소리에 반응한다. 우리가 진짜 귀로 듣는 소리를 전자 음악으로 녹여낼 수 있어야지 나만의 비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콜의 녹음파일 중에는 스쿼럴의 마지막 고민이 담겨있다. "Are we ever gonna be better than this?" 과연 스쿼럴만의 고민이었을까? 어쩌면 누구나 가장 궁금한 질문이지만, 돌아올 답의 냉혹함 때문에 애써 외면하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과연 지금보다 더 나아지는 상황이 올까? 아니면 오지 않을까?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은 나의 삶은 엉망이다. 엉망처럼 계속 넘어지고 다치고 상처도 나지만 계속해서 살아간다. 영화의 주인공들 대부분은 엉망인 삶을 살고 있다. 잘 나가던 DJ 제임스는 퇴물이 되었다. 여기저기 공연은 다니지만 과거와 같은 영광은 없다. 소피를 두고도 다른 여자들과 잠을 자고, 술에 빠져 살면서도 제임스는 계속 살아간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소피 역시 엉망이다. 좋은 대학을 갔지만, 등록금이 없어서 학교를 계속해서 다닐 수가 없다. 동기들은 이미 졸업을 해서 번듯한 직장을 잡았지만, 소피는 한물간 DJ의 비서를 하고 있다. 친구들에게 쉬운 여자라는 오명을 들어도 해명할 수도 없다. 해결하고 싶지만, 해결할 방법도 잘 보이지 않는다. 엉망이지만 계속 살아간다. 살아가다 보면 분명 해결책이 보일지도 모른다.
콜 역시 엉망이다. 부모님이 어딨는지도 모르기에 메이슨의 집에서 얻어 산다. 잘 나가는 DJ가 되고 싶지만 기회가 보이지 않는다. 우연한 기회로 제임스를 만나서 DJ 기술을 갈고닦지만, 스승의 여자 친구에게 마음이 끌린다. 결국 관계를 들킨 콜은 규모가 큰 DJ 공연의 오프닝 기회를 박탈당한다. 잠시나마 희망찬 꿈을 꾸었지만 다시 평범한 일상의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야 했다. 과연 이것보다 더 좋아지는 날이 올까? 싶다. 하늘에 신이 존재한다면 육성으로 그 대답을 듣고 싶다. 과연 좋아질까?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믿을 뿐이다. 그리고 계속할 뿐이다.
#극적인 것은 없지만, 삶은 늘 극적이다.
영화는 극적인 것이 없다. DJ 음악을 다루는 영화치고 음악이 적다. 그리고 신난다 보다는 잔잔하다가 더 잘 어울린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운이 길다. 오래간다. 스스로 박탈당한 오프닝 DJ를 뻔뻔하게 다시 얻어낸 콜은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어서 관객들 앞에 섰다. 자연의 소리, 친구의 목소리를 통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건넨다. 조금 짠하긴 하지만, 그걸로 스타가 되지도 못한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친구가 DJ 공연을 하지만 친구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것들을 하고 있다. 늘 함께 할 것 같았지만, 이젠 마음으로만 함께이다.
공연 중 잭 애프론이 울먹이면서 외친다. "Are we ever gonna be better than this?" 신이 나는 게 아니고 정말 짠하다. 짠해진다. 그래서 더 와 닿는다. 모든 청춘들이, 청춘이 저무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하지만 들리지 않는 대답이기 때문이다. 극적인 것은 없었다. 유명한 DJ를 꿈꾸는 콜이 유명한 DJ가 되었는지는 모른다. 스승의 여자를 좋아했던 콜이 소피와 좋은 관계가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극적인 해피엔딩도 아닌데 이상하게 해피엔딩처럼 느껴진다. 이상하게 마음이 그쪽으로 기운다.
영화를 봤는데, 삶을 본 기분이다. 삶에선 극적인 것이 없다. 영화처럼 극적으로 이뤄지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좋아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게 해 주니까. 하지만, 삶은 늘 극적이다. 단지 보지 못했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날 아껴주는 친구를 만나는 것도, 누군가에게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것도 모든 것이 다 극적이다. 삶이 늘 극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삶이 극적인 것을 모른다. 그러나 엉망인 삶이 계속해서 지속되는 것이 얼마나 극적인지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그런 영화였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짠하고 아픈 성장통에 관한 영화.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