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을 보고
2013년 후반기였던 것 같다. 대학교 동기 하나가 영화 <퍼시픽 림>을 꼭 보라고 추천하고 다녔다. 그 당시에 본 예고편에서는 크게 끌리지 않았다. 뭐랄까 그 당시 유행하던 영화 <트랜스 포머>에 비교하면 조금 아류의 느낌이 났기에 친구에게 "한번 볼게~"라는 말만 남기고 보지 않았었다.
영화 <퍼시픽 림>을 보게 된 것은 영화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후였다. 후속 편까지 나올 정도면 어느 정도 인기가 있고, 괜찮은가 보다 하는 마음으로 영화 <퍼시픽 림>을 보았고, 이번엔 넷플릭스의 도움을 받아서 영화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을 보게 되었다.
#지구가 망해도 삐뚤어진 놈 하나는 있기 마련이다.
괴물 '카이주'로 인해서 지구는 꽤나 황폐화되었다. 전편에서의 희생으로 괴물 카이주가 나오는 통로 (일명 브리지)가 닫힌 후 지구는 평화로워졌다. 여기저기 복구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지구의 대부분은 카이주의 거대한 시체들과 황폐화된 도시들이 남아있었다. 아무리 깨끗한 동네라도 어딘가는 할렘가가 있듯이 카이주로 인해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도시에도 즐겁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제이크는 카이주로 인해서 황폐화된 도시에서 무법자로 살고 있었다. 부서진 거대 로봇 '예거'의 잔재들을 불법으로 팔아넘기거나. 빈집이 된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파티를 하면서 하루를 낭비했다. 그 누구보다도 삐딱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제이크는 과거 브릿지를 닫은 예거 파일럿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영웅이 되었지만, 아들의 입장에선 가족을 잃은 것뿐이었다. 제이크의 삐딱함은 어찌 보면 합당하다.
#어설픈 대립은 이제 그만
비허가 예거로 인해서 제이크와 아마라는 기지로 이송당한다.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제이크는 신입 파일럿을 가르치는 교관의 업무를 담당해야 했고, 아마라는 신입 파일럿으로 훈련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너무나 뻔한 스토리의 흔한 전개처럼 제이크에게는 전 파트너이자 신경전을 벌이는 네이트가 존재했다.
네이트는 정의감이 넘쳤고 성실했고, 제이크는 자유롭고 삐딱했으나 실력이 있었(?)다. 네이트는 제이크를 회개시켜주고 싶지만, 제이크는 네이트의 훈계를 들을수록 삐딱하게 받아칠 뿐이었다. 아마라 역시 기존에 먼저 교육을 받은 교육생과 대립을 하게 된다. 어찌 보면 특혜처럼 들어온 아마라가 맘에 들리 없다. 그들은 다투고 신경전을 벌이다가 결국 또 서로를 의지한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패턴처럼 나오는 어설픈 대립이 집중력을 잃게 만들었다. 스토리상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보다는 밥에는 국이 필요하니 국을 차려야 하듯이 영웅물에는 주인공과의 대립이 필요하니 첨가하도록 하자의 느낌이랄까?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애매했다. 어설픈 대립으로 인한 다툼도 사랑도 다 어정쩡했다. 그냥 카이주랑 싸우기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원래 주인공은 주목받는 법
어쩔 수 없다. 원래 주인공들은 열심히 하지 않아도 인정받는다. 모두 본업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지만 꼭 갑자기 튀어나온 녀석들은 주목도 받고 괜스레 나보다 더 잘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질투를 하고 누군가는 포용하고, 누군가는 함께 하기를 원한다.
정식으로 교육받지 않았지만 아마라는 스스로 예거 로봇도 만들고 조종할 줄도 알았다. 예거 파일럿은 조종에 특화되도록 배우는데, 조종도 가능하고 조립도 가능한 아마라는 조직에게는 복덩이지만 조직원에게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것과 다름없다.
삐뚤어졌는데도 인정받는 남자가 있다. 자기 스스로 안 하겠다고 뛰쳐나갔지만, 다시 돌아와서 자연스럽게 주류와 어울리는 네이트가 바로 그 남자이다. 그는 자기 스스로 나간 기지를 엉거주춤하게 다시 돌아왔으면 뭔가 눈치라도 봐야 하는데 당당하기 그지없다. 뻔뻔한 건지 대단한 건지 철면피의 얼굴은 본받고 싶긴 했다.
#뭔가 기대한 액션과는 거리가 멀어
사실 <퍼시픽 림>을 보는 것은 고질라를 연상시키는 괴물 카이쥬와 건담을 연상시키는 로봇 예거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기대 이상이었던 <퍼시픽 림> 1편의 추억에 자연스럽게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액션은 많지 않고 조금 지루한 면이 있었다. 카이쥬는 영화 후반까지 나오지도 않았고 중간에 미확인 예거와의 싸움은 글쎄... 흥미가 돋지는 않았다. 뭐랄까 거대한 로봇들끼리 싸우는데 참 안 부서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끼리도 부딪히면 찌그러지는데, 굉장한 금속이 개발되었나 보다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 정도면 흡입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후반에 나오는 카이쥬와의 액션도 기대 이하였다. 갑자기 후지산은 왜 나오고, 왜 갑자기 모든 것들이 다 연결되고... 후... 뭐랄까 초등학교 시절 학교 끝나고 집에서 보던 파워레인저의 느낌이 났다고 할까? 적이 나타났는데 엄청 지다가, 우앗 힘을 내자! 하면서 이겨내는 그런 액션 말이다.
#스토리도 기대 안 해도 괜찮아
억지로 끼워 맞추기 위한 대립들과 스토리들이 런닝 타임에 비해서 너무나 많이 들어가야 했기에, 파편을 맞추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 뺄 수는 없고, 안 넣자니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고 아마 감독도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처럼 엄청난 스토리를 기대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그냥 '아, 오늘 하루도 힘들었고 아무 생각 없이 맥주나 마시면서 영화나 볼까?' 할 때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을 꺼내면 될 듯하다. 그러면 음, 거대 로봇도 멋지고 간간히 나오는 액션도 좋구나 할 것이다. 그러나 디테일하게 오늘은 이 영화로 내 하루를 마무리해야지! 하다가는...
#세상을 구하는 것은 성실한 사람들이 아니야
어쨌건, 영화를 보면서 생각한 것 중 하나는 세상을 구하는 것은 성실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꼭 튀어나온 송곳처럼 어딘가 삐뚤어진 애들이 세상에 임팩트를 주기 마련이다. 세상은 늘 그런 식으로 돌아갔다. 특출 난 몇 명이 세상에 방향을 제시했고, 나머지는 그 흐름이 이끌려서 앞으로 걸어갔다.
<퍼시픽 림 : 업라이징>도 다르지 않다. 모든 히어로 스토리들이 늘 그렇지만, 조금은 특출 난 녀석들이 이런저런 갈등을 겪다가 힘을 모아서 나쁜 괴물을 물리치고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영화!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이었다.
#3편도 찍을 거야?
티저가 나왔는데... 정말 찍을 건가 모르겠다. 중국 자본의 영향과 초기 감독이 영향받은 일본풍의 감성이 잘 섞이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3편이 나온다면 차라리 그냥 화려하게 액션에만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생각보다 <퍼시픽 림>의 마니아들이 많은 것에 놀랐다. 그들에게 3편 제작 소리는 분명 희소식 중에서도 강한 희소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