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을 보고
*스포일러가 이빠이 존재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취업하고 싶어 하면서, 벼락부자를 꿈꿀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바로 금융회사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금융회사가 처음부터 인기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한참 무역을 통해서 외화자금을 끌어모았을 때는 드라마 <미생>에서 나오는 것처럼 무역회사들이 모두가 입사하고 싶은 회사 중 하나였다.
옷의 트렌드가 바뀌듯이, 유망 산업의 트렌드는 바뀌어갔고 엘리트라고 불리는 유능한 인재들의 대부분이 금융회사에 취업하기를 바란다. 아마도 높은 기본급과 능력에 따라 정해지는 성과급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 <돈>은 금융권의 욕망을 영상으로 표현해놨다. 너무나 지나쳐서도 안되고, 너무 현실 기반이 없어서도 안되지만 첫 예고편이 나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기대했다. 나 역시 좀 더 자극적이고 강한 영화를 기대했는데 조금 약하게 수위조절을 한 게 아쉽다.
#특출 났다고 생각했지만 무리 안에 들어가면 평범해진다.
영화의 시작은 류준열의 취업으로 시작된다. 코스닥, 코스피의 종목코드를 다 외우면서 이슈가 되었던 류준열(조일현)은 금융회사에서 자신의 능력을 통해 부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특출 났다고 생각되었던 사람도 무리 안에 포함되게 되면 평범하게 바뀌기 마련이다. 업무에서는 개인적인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 외에 내부적인 관계와 공무 머리 말고 일 머리를 발휘하는 센스도 필요하면서 인맥을 최대한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신참내기 조일현에게는 그런 부분이 부족했고, 거래를 따내지 못하는 트레이더의 수입은 쥐꼬리 수준이었다. 입사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조일현은 자신이 원하던 모습의 근처도 가지 못하고 방황한다. 걷는 놈 위에 뛰는 놈이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했다. 뭐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는 결국 한 번쯤은 벽에 막히는 시점이 오고 만다.
#어디나 꼼수가 존재한다.
자괴감에 회식 자리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진상을 부린 조일현에게 악마의 손 하나가 내밀어진다. 같은 팀의 유민준 과장은 조일현을 슬쩍 불러서 판을 깐다. 최고급 마사지를 받게 하고, 다독거리면서 조일현을 위하는 척한다. 그 이유는 여의도에 유명한 '번호표'라는 사람이 새로운 판을 짜는데 신참 선수가 필요하고 유민준 과장은 그 역할을 조일현에게 '추천'하기 위해서였다.
조일현은 유민준 과장이 내민 손을 잡으면서 '빚'을 지게 되었고, 유민준 과장은 자신의 '편'이 하나 더 늘어났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신세 갚아라"는 잘되면 날 잊지 말라는 백지 수표나 다름없다. 업무 실수로 이미 팀 내에서도 회사에서도 자리를 잃어가던 조일현은 반신반의하면서 유민준 과장의 손을 잡는다. "불법"도 결국 "돈" 앞에서는 힘이 없다. 아니 결정적인 증거가 남지 않으니 "불법"도 아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신의의 원칙이 존재한다. 내 이득이 우선시 되면 그건 불법이다. 그러나 많~~~~~~~은 돈 앞에서 누가 쉽게 자신의 이성을 지킬 것 인가.
#내가 벌면 너는 잃는 세상
원래 세상은 불공평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누군가는 돈을 벌면, 누군가는 돈을 잃기 마련이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듯이, 모두가 승자일 수 없다. 금융 시장의 경우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너무나 명확하다. 누군가의 계산 실수, 주문 실수, 전략 실수가 있다면 다른 누군가는 그 틈을 발견해서 뱀처럼 낚아챈다.
조일현이 만난 번호표(유지태)는 그런 시스템을 이용해서 시장에 장난을 쳤다. 각 회사의 플레이어들을 모집한 후에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배분했다. 그들이 사전에 정의된 '역할'대로 행동한다면 누군가는 돈을 잃지만 본인들은 돈을 번다. 돈을 잃게 되는 사람의 얼굴도 알 수 없고, 금액의 숫자가 크기 때문에 실감이 나지도 않는다. 금융권에서 이뤄지는 돈의 결제는 그저 숫자의 변화일 뿐, 그 무엇도 아니다.
#네 생각은 빼는 게 좋아?
처음 주문을 받은 조일현은 주문 실수를 내고야 만다. 금융권에는 많은 회사들이 연결되어있고, 상식 밖의 일이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주식이 거래되는 장중에는 다들 신경이 예민하기 때문에 전화를 해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고객의 주문 전화를 제대로 못 듣는 순간도 존재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고객이 전화를 했는데 제대로 못 받았다? 다시 전화해야 하는지 아니면 본인의 판단으로 '이렇게 하는 게 맞을 거야'라고 결정을 내린 후 행동할 것인가. 어느 회사나 본인의 생각을 빼라고 강요한다. 회사에 들어가면 조직의 일원일 뿐, 회사의 이익에 맞게 움직여야만 한다. 자신의 판단으로 거래를 한 조일현은 주문 실수로 회사에 손해를 쥐어주게 되고, 팀원들의 질타를 받는다.
거기서 나온다. "네 생각은 빼!" 기계처럼 움직이고, 판단은 버려라. 그러나 번호표와 작전을 하던 조일현은 자주 회사 사람들에게 불림당한다. 비정상적인 거래를 했기 때문인데, 거기다가 조일현은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고객이 시킨 대로 했다." 고객이 그렇게 시켰다면, 회사 입장에서도 막을 방법이 없다. 영화를 보면 알게 된다. 법은 생각보다 빈틈이 많다.
#결국은 권선징악
그. 러. 나. 누구나 이렇게 작전을 세워서 부당하게 돈을 벌면 시스템이 존재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우리나라엔 '금감원'이 존재한다. 누군가 부정한 방법을 이용해서 이득을 챙기려고 하지는 않는지에 대해서 관리하고 감독하는 기관이다. 거기서도 꼴통으로 불리는 한지철(조우진)은 우직하게 번호표를 잡기 위해서 불철주야 뛰어다닌다.
한지철은 번호표를 잡기 위한 조사를 하다가 조일현을 발견한다. 분명 조일현에게 뭔가 냄새가 나는데 증거는 없다. 한지철은 은근히 조일현을 압박하지만 번호표의 지시를 받는 조일현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조일현은 번호표의 신뢰를 받으면서 계속적인 작업을 진행하였고, 큰돈을 만지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조일현이 많은 돈을 벌어다 주기 때문에 '인정'하면서도 감사팀에서는 조일현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까에 대한 '검사'가 시작된다.
번호표를 배신하기 위한 사람들이 하나씩 제거당하고, 정직함에 고민하던 조일현은 결국 한지철과 손을 잡고 번호표를 제거시킬 계획을 세운다. 왜 금융권에서 일하려면 손자병법을 정독하라고 하겠는가. 전략 위에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결국은 권선징악, 정의는 승리하게 되는 영화 <돈>이다.
#조금은 아쉬운 영화
영화 <돈>은 재밌게 봤지만 사실 조금 아쉬웠다. 재미있었던 점은 익숙한 여의도의 풍경들이 나온다는 것과 예전에 일하던 때의 기분을 조일현을 통해서 느꼈다는 것이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작은 회상에 빠질 수 있어서 굉장히 즐거웠다. 또한 촬영하는 구석구석이 어딘지 제대로 알고 있는 점이 영화를 보는 데에 있어서 소소한 재미를 제공했다.
아쉬웠던 점은 조금 수위가 약했다는 점과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모티브가 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없던 쩌리가 몇 십억의 돈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분명 흥청망청하게 쓸 것이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급격하게 늘어난 부를 흥청망청 썼기 때문에 좀 더 현실성이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청소년 관람불가가 되었겠지만...
그러나 영화 <돈>은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 약하게 표현되는 부분이 있지 않았나 싶다. 뭐랄까 주인공이 갑작스러운 돈에 취해서 흥청망청 사용하다가 정신 차리고 개선하는 흐름을 가져간 것도 아니고, 더 많은 돈을 위해서 윗사람을 제끼는 흐름을 가져간 것도 아니었다. 뭐랄까 나쁜 짓으로 돈을 벌었는데 자신은 혼나고 싶지 않은 느낌? 조일현은 왜 번호표를 제꼈을까에 대한 모티브가 굉장히 부족했다.
또한, 번호표가 시장을 조작하는 이유에 대한 모티브나 행동들도 부족했고,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다는 금융권에서 몇 번이나 같은 작전을 시행한다는 펀드 매니저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영화적인 요소를 위해서 넣은 상황이겠지만, 디테일에서 부족함이 있음은 아쉬운 부분이다.
#등장 배우들의 재미
우선 비열한 역할의 유지태는 참 잘 어울렸다. 이 아저씨는 왜 자꾸 비열한 역할만 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표정이 진짜 나빠보여서 한 대 때리고 싶었다. 보면서 비열한 역이 잘 어울리는 신하균이 생각난 것은 나뿐이었던 것 같다.
또한 상승세를 타고 있는 류준열의 연기가 점점 좋아지고 있음도 보기 좋았다. 사실 영화 <독전>이나 영화 <더 킹>에서는 조금 아쉬운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꽤나 보기 좋았다. 배우도 묵은지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나 보다.
그리고 수원 왕갈비 통닭을 만들다가 지적인 펀드매니저로 변신한 진선규도 참 반가웠다. 진선규 아저씨가 나오자마자 웃음이 났는데, 영화관에서 나만 웃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니엘 헤니도 굉장히 의외의 캐스팅이었으며 전우성 역으로 나오는 김재영 배우의 멋진 외모를 보면서 한없이 부러워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