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Message from the King>을 보고
한동안 공부한다고 넷플릭스를 멀리했다가, 주말에 운동을 갔다 오면서 이것저것 밀린 넷플릭스를 챙겨보았다. 조금 멀리했다고 이렇게 새로운 작품들이 많이 나오다니, 넷플릭스를 이길 플랫폼은 무엇일까 진지하고도 쓸모없는 고민을 하면서 이 영화, 저 영화 뒤적거렸다.
영화 <번 아웃> 다음으로 선택한 영화는 바로 영화 <지옥에서 온 전언>이다. 이 무슨 중이병스러운 제목인가 싶어서 슬쩍 눌러봤는데, 주인공 얼굴이 꽤나 익숙하다. 어라? 아저씨는... "와칸다 포뤠버!" 거기다 루크 에반스 역시 출연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으니, 이거 뭔가 냄새가 나는 작품이다. 무슨 냄새냐구요? 맛있는 냄새입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IMDb에서 영화 <지옥에서 온 전언>의 영어 제목인 <Message From the king>을 찾아보았다. 평점은 10점 만점에 6.4점, 나름 괜찮았다는 평가였기에 빠르게 시청하기를 눌러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오빠는 과묵하다.
여동생 비앙카의 도움이 필요한 메시지를 받고 남아공에서 LA로 날아온 제이콥의 미국 입국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머물 곳도 적지 않았고, 여동생을 만나러 왔다고도 하지 않았기에 미국 입국심사대에서 제이콥을 따로 불러서 이것저것 심각하게 물었다. 남아공에서 택시기사를 하는 제이콥은 현찰 600달러 만들고 LA로 넘어왔고, 입국심사대에서는 제이콥을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는 흑인 노동자로 보기 충분했다.
무사히 입국 수속을 마친 제이콥은 모텔에 숙소를 잡고 여동생 비앙카를 찾아간다. 비앙카의 집으로 갔지만 비앙카는 없고 옆집 여자가 비앙카랑 친했다고 말을 건넨다. 비앙카의 이웃사촌 트리쉬는 비앙카가 꽤 연락이 안 된다는 소식을 전해주면서 어느 날 사라진 남편 알렉스와 남편의 아들 알만드(?)의 소식을 전해준다. 또한 비앙카가 남겨두었다는 가방을 제이콥에게 건넨다.
영화는 수수께끼를 하나씩 푸는 것처럼 진행된다. 비앙카의 소식을 아는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면서 연결고리를 이어가는 식이다. 제이콥의 대사는 많지는 않고, 그저 확신이 들면 두들겨 팰 뿐이었다. 아랫것들을 하나씩 잡아가면서 최종 보스를 확인하려는 제이콥, 과연 성공할 것인가?!
#나쁜 놈들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역시나 비앙카는 나쁜 일에 연루되어 있었다. 이웃사촌 트리쉬는 약쟁이었고, 비앙카 역시 트리쉬 때문에 약을 하게 되었다. 사라진 비앙카를 찾던 제이콥은 슈퍼마켓 아들의 조언을 듣고 영안실로 발걸음을 향한다. 심하게 얼굴이 훼손당해있고, 고문이 당한 흔적을 발견한 제이콥은 여동생의 복수를 꿈꾼다.
그러나 누가 제일 나쁜 놈인가? 치과 의사로 나오는 루크 에반스는 정치인과 나쁜 놈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면서 돈을 벌었고, 정치인인 리리는 꽤나 더러운 돈을 많이 받은 듯하다. 또한 듀크라고 호칭되는 약을 파는 조직과 뭔가 대부호의 느낌이 나는 프레스톤까지 나쁜 놈들은 다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쁜 놈들의 전매특허는 뒤통수 치기 아니겠는가? 서로는 서로의 사업상의 이유로 엮여 있지만, 서로는 서로를 믿지 못한다. 그래서 나쁜 놈들은 친구이면서도 친구가 되지 못하나 보다. 제이콥의 적들은 조사를 하면 할수록 많아질 뿐이었다. 나쁜 놈들 참 많다.
#나쁜 놈 위에 더 나쁜 놈
왜 영화 이름이 <지옥에서 온 전언>이었을까 심각하게 고민을 해봤다. 영어 제목도 <Message From the king>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B 급스러운 제목을 지었을까 의문을 가졌다. 일단, 영화 자체가 B급용으로 만들어진 것은 맞는 것 같다. 흥행을 바라고 만들었기보다는 뭐랄까 누아르 느낌을 살리기 위한 느낌적인 느낌?
아무튼, 나쁜 놈들 위에 더 나쁜 놈이 있다면 나쁜 놈들을 뚜까패는 놈이 아닐까? 나쁜 놈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 신뢰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사이 균열이 일어나면 나쁜 놈들끼리는 분열되거나 아니면 더 뭉치거나 할 뿐이다. 왜 영화 이름이 <Message From the KIng>인가 했더니 제이콥의 풀 네임이 제이콥 킹이기 때문이다.
즉, 킹의 메시지가 아래 말단 직원에서부터 보고하듯이 위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근데 그 메시지가 죽음을 전해주는 메시지나 마찬가지이니 <지옥에서 온 전언>이라는 제목도 일리가 있다. 킹은 폭력에는 폭력이라는 정의로 나쁜 놈들에게 더 나쁜 놈이 되었다. No Merci!
#택시기사라면서 왜 이런 거야?
그런데 참 놀랍다. 아니 택시기사인데 너무나 싸움을 잘한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와, 잘 싸우네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제이콥은 택시기사다. 남아공에서 택시만 모는 사람 치고는 주먹을 참 잘 쓴다. 이거 마치 영화 <아저씨>의 고물상 아저씨 같은 느낌인 것일까?
제이콥은 어릴 때 여동생 비앙카와 다른 남동생과 함께 어떤 클럽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클럽이 갱단 같은 것도 아닌데 제이콥이 잘 싸우는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특수부대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용병 출신도 아닌데 싸움도 잘하고, 추적하는 것도 선수급이다. 분명 이 남자에겐 뭔가 있다. 그게 뭔지는 영화가 끝나면 알게 된다. 조금 허무하다. 이런 비밀을 굳이 왜 감추는 거야...
#한국말이 나와서 참 반갑습니다.
초반, 제이콥 킹이 정보를 찾기 위해 찾아간 슈퍼마켓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이다. 이민자들의 삶을 틈틈이 잘 보여준 영화가 아닐까 싶은 게, 너무나 리얼하고도 리얼한 한국말이 흘렀다. 과거 어떤 영화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한국인 이민자들이 트렁크에서 자다가 택시 운전 교대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블랙 팬서에서도 어색한 한국말이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 나온 한국말은 그냥 한국인이다.
보통 이민자들이 미국에 가서 하게 되는 것은 슈퍼마켓이나 세탁소라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슈퍼마켓에는 중국인 아니면 한국인들이 많이 나온다. 영화 <베놈>을 봐도 슈퍼마켓 주인이 아시아인이 아닌가? 그런데 이민자들 삶에서 일본인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이런 영화에서 늘 이민자의 역할로 나오는 아시아인들이 결국 다른 국가의 사람들에게 이민자들의 후예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복수는 했지만, 남는 것은 허무뿐
경찰에게도 두들겨 맞고, 진정한 복수를 계획하는 제이콥은 나쁜 놈들을 다 불러 모아서 혼쭐을 내줬다. 물론 위험한 상황도 존재했지만, 결국 정의는 승리했다. 그러나 제이콥은 아무것도 지킬 수 없었다. 여동생 비앙카는 죽었고, 여동생 비앙카가 지키고 싶었던 전남편의 아들 알만드는 도망쳤다. 그 누구의 평화도 지켜주지 못한 제이콥은 그렇게 여동생의 복수만 완료하고 다시 남아공으로 돌아간다.
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남아공에 도착해서 만난 제이콥의 동료는 제이콥에게 "휴가 어땠냐?"라고 묻는다. 그는 왜 여동생을 찾으러 간다는 것을 숨겼던 것일까? 그가 지키려고 했던 것은 여동생의 이미지였을까? 아니면 스스로의 위안이었을까?
#짧은 러닝 타임에 나쁘지 않았던 영화
영화 <지옥에서 온 전언>은 꽤나 짧은 러닝 타임을 가졌다. 104분짜리 영화는 대사도 많지 않고, 괜히 반전을 위해서 이것저것 많이 꼬아놓지도 않았다. 굉장히 속도감도 있고, 불필요한 모든 것들은 쳐냈기에 많은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밝은 영화는 아니다. 영화 중간에 나오는 "LA는 비도 오지 않는다.(?)"란 뉘앙스의 대사가 있었다. 이민자들이 몰려서 밝지 않은 생활을 견디어 나가는 모습들이 연출되기 때문에 씁쓸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 아줌마의 대사는 미국 이민 사회의 위험을 잘 알려준다. "모른다고 해, 상대하지 말아"와 같이 엮이고 싶지 않아 하는 대사들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다른 국가의 국민들이 정착하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해도 액션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은 영화 <지옥에서 온 전언>을 보기를 추천한다. 짧은 시간에 빠르고 시원하게 볼 수 있기도 하면서, 굉장히 눈에 익숙한 배우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삼삼한 재미를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