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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May 08. 2019

그림자가 지는 날들이 있다.

회사가 망했다. 나는 어둑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아침 출근길에 햇빛을 영롱하게 받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보았다. 햇살이 참 이쁘게 떨어지네라는 생각과 함께 살짝 그림자가 진 모습이 보기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들었던 생각은 '왜 혼자 서있는 아파트에도 그림자가 지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햇빛에 그림자가 지는 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인생도 이와 비슷했다. 삶에 종종 그림자가 질 때가 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그림자가 어두룩하게 날 가리는 순간들 말이다.


내게도 최근 삶에 하나의 그림자가 생겼던 순간이 있었다. 호기롭게 이직한 스타트업은 내 기대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변변치 않은 사무실과 개인 노트북을 들고 다녀야 했고, 가끔은 카페에서 근무를 진행하기도 했다. 스타트업의 근무 자유로움은 업무의 불편함으로 해석되었다. 여름에 백팩을 등에 지고 다니면서 땀을 흘려야 했고, '이 사업이 잘 될까?' 에 대한 의문을 수백 번도 넘게 했다. 불안함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익혀온 업무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고, 모든 것을 하나씩 새롭게 부딪히면서 익혀야 했다.



조금씩 업무가 손에 잡힐 때쯤,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사업의 잘되고 안되고는 내 의지와 노력과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내 회사처럼 열심히 해보자고 했지만, 내 이름을 달지 않은 회사는 내 회사가 아니었다. 효율적이고 올바른 방향이 보이는데도 회사는 그 방향으로 가지 않았고, 외부의 상황을 컨트롤하기에 스타트업은 나무젓가락보다 힘이 없었다. 즉, 업무를 열심히 익히고 전략적인 방향을 찾고 제안해도 운영자들의 귓등에 얹히는 것은 없었다. 그들은 직진만 하는 차선에 있는 자동차처럼 주변을 둘러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입사한 지 3개월이 지나고 난 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소통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정보가 차단되기 시작했다. 사업의 진행방향, 투자의 진행상황 등 아무것도 들리지도 않았고 업무를 하지 않아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불안감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내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입으로 꺼내게 되면 불안이 사실이 될까 두려웠던 것일까.


설날 연휴를 하루 앞둔 날 전체 회의가 소집되었다. 내용은 둘 중 하나라 생각했다. 막혀있던 사업에 활로가 뚫렸거나, 망했거나. 참담한 표정의 이사진들을 바라보면서 망했구나라는 예감이 들었다. 대표는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 잠정적 중단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사업은 곧 죽어도 하는 사업이라고 선언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그 회의실 안에는 없었다. 사업이 다시 진행되기 전에 우리 입에 거미줄이 쳐져서 죽을 것 같았다. 한 여직원은 눈물을 흘렸다. 터질게 터졌듯이 그녀의 눈물은 소리없이 회의실을 잠식했다. 약 8개월간 스타트업의 근무 결과는 3~4개월의 밀린 월급과 망했다는 통지였다. 나는 힘없이 그저 통지를 받아들여야 했다.



사건이 발생되면 해결책을 찾도록 훈련(?) 받았기에 나는 빠르게 움직였다. 낙담하고 있을 시간에 뭐라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중간에 생각했던 나만의 사업을 진행하거나 아니면 다시 재취업을 하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이 있었다. 나만의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특히, 돈이 없었다. 과거 회사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급하게 자격증을 신청하면서 재취업을 준비했다. 매일 새벽마다 잡코리아, 사람인을 뒤적거리면서 어제 본 공고를 오늘 또 보고, 내일 또 보고, 일주일 내내 보고 또 보다가 자주 눈물을 흘렸다.


나이 서른 초반에 회사가 망하고 백수가 된 내 모습이 처량해서 울었다. 내가 원하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지만, 나는 루저처럼 밤에 잠도 못 자고 직업 공고나 보고 있는 게 처량하고 비참했다. 내가 못해서 회사가 망한 것은 아니었지만, 회사가 망했다는 말은 곧 '넌 능력이 없어'처럼 해석되었다. 좋은 회사를 선택하지 못하는 눈을 가진 능력, 회사를 기똥차게 살릴 수 있는 능력들이 내게는 없었다. 나는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렁텅이에 빠진 기분으로 조건에 맞는 회사들을 찾고 또 찾았다.


제일 비참했던 것은 집에도 알리지 못하고 아침마다 출근하는 것이었다. 가족한테 말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말해서 위로받는 게 가장 두렵기도 했고, 약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실망시킬까 봐 가장 두려웠다. 오전에 카페에 앉아서 저녁까지 아메리카노 하나로 버텼다. 점심시간에 우르르 카페로 몰려왔던 사람들은 점심시간이 끝나자 우르르 회사로 몰려갔다. 나는 여전히 카페 구석진 자리에서 까르르 웃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앉아있었다. 퇴근시간에 맞춰 지하철을 타는데, 수많은 퇴근자들은 어디서 오는 건지 궁금했다. 이들 중 나 같은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보통사람처럼 행동하려는 내 모습이 어두운 지하철 창문 너머로 비칠 때마다 주저앉고 쓰러지고 싶었다.


두 번째 비참했던 것은 통장에 돈이 없는 것이었다. 한 달쯤이 지났을 때 통장에는 12,000이 남아있었다. 점심을 위해서 계란을 싸들고 다녔고, 컵라면을 먹는 일이 많아졌다. 카페에 갈 돈이 없어서 국회도서관으로 갔다. 한 달짜리 벼락치기 시험공부를 하면서 이력서를 작성하고, 배가 고파서 물을 마셨다. 물을 꽤 많이 마셨다. 물을 마시는 순간에는 허기짐이 사라졌다. 많이 배가 고파서였는지 국회도서관 안에서 빈 빨대소리가 자주 울려퍼졌다. 또한, 아무에게도 전화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전화가 와서 괜찮냐고 물어보면 끓어오르는 눈물을 참기가 너무나 힘들었기에, 그냥 부재중 인생으로 남고 싶었다. 스타트업 회사 동생이 연락이 왔다. 돈이 없어서 자기는 저축을 깼다고 했다. 나는 손해보고 있던 주식을 더욱 손해보고 팔았다. 보험은 정지를 시켰고, 나가는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은 Zero였다.



낙오자가 된 기분이었다.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정말 쓸모가 없었다. 장난처럼 마포대교에 가야겠다고 했지만, 그래서 마포대교 근처에서 머물렀지만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절벽 끝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지 포기하지 않고 이를 악 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이 조급해졌고, 주변을 잘 살피지 못했다. 될 거라는 생각보다 안될 거야라는 생각이 더 자주 들었다. 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가뭄에 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입술이 바짝 마르는 희망 고문이었기에, 차라리 비가 내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게 편했다.


모든 것이 어둑하고 암울했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주변에 햇살같이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근처 회사 선배들은 종종 내가 있는 카페로 와서 커피를 사주고 들어갔다. 말동무가 되어주고 말없이 커피를 보충해주고 갔다.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났다. 그리고 계속 응원의 말을 해주었다. 같이 일해봤기에, 학교를 같이 다녔기에 그들은 나를 많이 알고 있었고, 내가 외면했던 내 가능성을 계속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친한 지인들이 많이 용기를 주었다. 세상이 끝난 게 아니라는 말과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고 앞으로 신중하게 선택하면 다 잘 될 것이라는 말로 내 등을 밀어주었다. 아닌척했지만 그 말들은 단단하게 낭떠러지 끝에 있는 날 붙들어 주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마음으로 말로 응원해주었다. 날 믿어주었고, 그것만으로도 힘이 되어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 내가 외면하고 애써 바라보지 않으려고 했던 믿음을 주었다. 주변에 있던 감사한 사람들 때문에도 자주 눈물이 났다. 낙오자가 된 기분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삶을 못나게 살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주변에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는 여러 번 감사했다.


운이 좋게 원하는 포지션으로 재취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짧은 이력들 천지인 내 이력서를 보고도 뽑아준 회사에 감사했다. 그리고 날 뒤에서 계속 응원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지만, 그러기에 아직 첫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서 눈치만 보고 있는 중이다.




삶에 원하지 않는 그림자가 지는 날들이 있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태풍이 몰아치듯이,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내 머리 위에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있다. 어두운 날이 계속되면 마음은 두려워지고, 이 어둠이 계속될 것 같아서 불안해진다. 그러나 해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서 드리우진 그림자도 짧아지고 다시 햇빛을 받는 순간들이 있다.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분명 드리워진 그림자는 다시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한평생 그림자 없는 삶을 살 수도 있지만, 햇빛만 받다가는 수분이 부족해서 메말라진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림자가 드리워진 날이 오면 열심히 살았으니 잠시 쉬었다 가라는 신호로 받아들여보자. 그러면 그림자 진 인생에도 살랑거리는 바람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분명 다시 웃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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