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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Aug 01. 2018

선을 넘지 않을 자유

   나이가 들어가면 많이 알게되고 많이 보게 되면서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지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의 자유가 넘쳐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쉽지 않았다. 자유보다는 책임이 많았고, 자유를 위해서는 포기해야하는 대가가 커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 중 가장 어려워지는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세상 모든 것은 왠만해서는 답이 정해져 있었지만, 사람은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A일것 같은 사람이 B였고, B를 행하던 사람은 다음날 갑자기 A를 추구하기도 했다. 분명 올바른 정답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사람들은 언제나 예측을 벗어났고 사람을 대하는 것에 갈수록 혼돈만 가득해졌다.


 또한, 서로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조금씩 각 사람들에게 선을 그어놓았다. 너는 여기까지만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선이 발 앞에 놓이게 되면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굳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어려움이 가장 많았던 것은 아무래도 연애관계에서였다. 어릴때의 겁없는 사랑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로 부딪히고 안맞는 모서리들을 맞춰가면서 낄낄거리던 나이는 눈 깜짝할사이에 사라졌다. 어느새 나는 그리고 상대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으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전의 연인들과 못볼꼴 볼꼴 다 보았고, 연애의 달콤함도 씁쓸함도 그리고 아픈 상처도 알아버렸기에 적극적인 돌격대장은 우리 나이대에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마치 내용은 비슷하지만 주인공만 다른 연애 영화를 찍는 기분이랄까. 그래서인지 연애의 관계에서 그어지는 선은 더욱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어놓은 선을 쉽게 열어주지도 않았고, 그어진 선을 넘어가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상대에게 Allin하지 않는 나이대라는 것이 어떤건지 귀에 못이 박히게 듣게 되었다.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관계를 유지하면서 적당히 헤어지는 것. 20대의 어린나이에 심장이 찢어질 듯한 아픈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집단 현상과 같은 기분이었다.

   최근에 헤어진 연인은 내게 이런말을 했다. "내가 이기적인 것은 알지만 난 사람관계에 선을 긋게된다. 그리고 내가 관계가 오래 유지된 사람은 그 선을 넘어온 사람들이다." 나는 그 말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그리고 얼마나 상대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없는지에 대해서 퍼붓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질문을 했다. "네가 그어놓은 선을 다른 사람이 넘어올 수 있게 문을 열어줄 마음은 있는거니?" 상대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날 저녁 나는 '그만하자'라는 문자를 받았고 꽤나 예의있어보이지만 예의없는 이별을 선고받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선을 넘어가고, 어떤 사람은 선을 넘어가지 못한다. 흔히들 선을 넘는다는 것을 한계를 넘어선다는 이야기로 말을 하기도 한다. 한계를 넘어선 사람들만이 성공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역시 잘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꼭 나 혼자 선을 넘어야 하는걸까? 인간관계는 상호작용이 기본이 된 관계이다.


 Give and Take, tit for tat. 굉장히 정이 없어보이지만 이런 행동은 침팬치들이나 원숭이들도 하는 행동이면서 고유의 영장류만이 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음식을 서로 공유하면서 상호작용을 한다. 혹시나 내가 음식을 구하지 못하는 날에 다른 누군가에게 음식을 받기 위해서. 연애관계는 이와 다른것이 무엇일까? 상대의 선이 있으면 내 선도 있는 법이다. 관계란 주고 받는 것이 필요한데 한쪽에서만 넘어와 달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이기적이고도 오만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내 사람이고 싶고, 그 사람이 나한테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자신의 선 따위는 무시하고 넘어가길 원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선 안에 있는 사람의 손 내밈이 필요하다. 선을 넘어가지 않는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를 바라니까 말이다.

   인간은 참 모순적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하지 않지만 상대가 해주기를 원하는 행동들. 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 규칙에 따라야한다는 이기적인 생각들. 우리는 사회적인 사람이고 내 연인이 될 사람과의 관계에서 굳이 이 모든 규칙들로 올가미를 조일 필요가 있을까? 어떤 사람은 선을 넘어가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선을 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선을 넘어오길 원하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선을 넘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모두가 같을 수 없기에 우리는 대화를 한다. 내가 잘 못하겠어라고 말할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 모두가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물론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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