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리뷰
화자인 패트릭 브링리는 대학 졸업 후 《뉴요커》에서 커리어를 쌓아갔으나, 무수한 기사 취소, 건의, 거절, 강제, 무너짐이 반복되는 직장 생활을 겪으며 전에 없던 게으른 사람이 되어갔다. 설상가상 형 톰 브링리의 암 투병 생활에 이어 형의 죽음을 경험한 그는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다.
“세상을 살아갈 힘을 잃어버렸을 때 나는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곳에 숨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 하지만 실상 그가 그 공간에서 경험한 것들은 무척이나 다채롭고 선명하여 단순화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미술관에는 예술 작품들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패트릭 브링리는 이 광활하고 아름다운 세계에 출입한 손님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는 경비원으로 일하는 동안 작품을 구경하는 만큼 그러한 작품을 관람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 세계 안에서 화자는 철학적이고 흥미로운 사유를 이어간다.
바랐던 것과는 다른 무감각한 ‘현실 세계’. 화자는 ‘현실 세계’를 ‘허클베리의 세계와 그 우아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로 표현한다. “정작 나에게 아름다움, 우아함, 상실, 그리고 어쩌면 예술의 의미를 가르쳐준 것은 그런 조용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미술관의 작품들은 ‘현실’을 일깨워 주었고 감각하게 했다. 화자는 예술 작품에 대한 고마움을 반복해서 드러낸다. 그가 말하는 예술 작품은 우리가 살아가며 잊어가는 것들에 대한 환기이자 기억의 장치인 셈이다.
문학적인 문체와 생명력 넘치는 표현으로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도서. 문장이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것 또한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은 생생하고 경이로운 경험을 들려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어진다. 이처럼 화자는 자신이 느낀 감정을 솔직하고 자세하게 풀어낸다.
그림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과거 우리가 겪은 것, 경험한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그러한 화자의 이야기를 통해 미술작품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함께 벅차오르고 또 경이로움을 느낀다. 이처럼 오랜 기간 미술관 경비원 일을 한 이의 내밀한 목소리를 듣는 것 또한 그 세계를 맛볼 수 있는 길이 된다.
위대한 거장들도, 예술가도, 유식한 사람들도 ‘메트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길은 누구나 잃을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현실’을 우리는 계속해서 ‘감각’하며 이 광활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걸어야 한다. 그것이 큐레이터가 의도한 방향이든 이집트의 세기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향이든 그런 건 상관없을 테다. 우리가 잊어가는 것을 일깨워줄 테니.
삶의 슬픔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어루만진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마음 또한 어루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이 경이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보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879)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