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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 개인과 세계를 넘나드는 비행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5'에 다녀왔다.

by 유랑

9월 18일부터 9월 23일까지 CGV 연남에서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5’가 열렸고, 나는 그중 20일 토요일에 영화제를 즐기고 왔다. 이전부터 인디애니 영화제에 관한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관심 있게 살펴보았으나 정작 경험해보진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이번 기회를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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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에 상영되었던 ‘아시아로3(ASIA ROAD3)’와 ‘새벽비행2(First Flight2)’, 총 두 섹션을 감상하였다. ‘아시아로3(ASIA ROAD3)’ 섹션은 일본, 중국, 아르메니아 국가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해당 섹션은 작가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일상 혹은 비일상의 사건을 통해 무게감 있는 주제를 다룬다는 게 특징이었다. ‘새벽비행2(First Flight2)’의 경우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을 모아둔 섹션으로, 개인적인 경험으로 느낄 수 있는 정서적 경험을 통해 몰입할 수 있게 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 흥미롭고 새롭게 다가왔고, 나는 그중 기억에 남는 몇 작품에 대한 소개를 해볼까 한다.



* 아시아로3


<시골 행성(The Countryside Planet)>

오헤이도 Oh Hey Do | Japan


은하계 끝자락에 위치한 한 시골 행성에는 두 소녀가 살고있다. 아주 평범한 일상과 평범한 두 소녀, 그리고 그다지 평범하지는 않은 세계. 이곳은 외계인과 행성, 독특한 집 구조 등이 눈에 띄는 세계이다. 소녀들은 각자만의 고민이 있다. 자신들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다는 무력함에 빠져있던 두 소녀 앞에 특별한 보석 하나가 나타난다. 그 보석 안에는 반짝이는 물고기가 들어있다. 결과적으로 이 물고기를 통해 다이자모리 건설이 세운 상류층만의 공간이 파괴되고, 모두를 위한 작은 공원이 마련된다. 이처럼 <시골 행성>은 평범한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작은 파괴력, 그래서 ‘참 이상한 하루였어.’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만남이 인상 깊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은 세계의 종말(The End of the Small World)>

하나 다쿠보 Hana TAKUBO | Japan


꽃을 꺾지 말라는 일상적 경고로부터 시작하는 이 작품은 첫 장면부터 어떠한 위기, 불안함을 조성한다. 평범한 일상과 그 사이사이 종말의 과정이 드러나는 게 인상 깊다. 개의 모습을 한 시민들의 투표 상황, 개와 고양이가 정치적 무대에서 대립하고 갈등하는 모습, 폭동, 테러, 군인의 출몰 등 점점 고조되는 멸망의 순간 과정을 몇 초가량의 쇼트로 짧게 짧게 이어 보여주는 것이 마치 가독성 높은 단편소설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어 연출적으로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침몰(IN THE MIST)>

런밍 리우 Renming LIU | China


안개가 자욱한 한 호수에 기이한 소문이 하나 떠돈다. 바로 호수에 유령이 산다는 것. 소문에 대해 수군대던 두 명의 낚시꾼 주위로 어느새 수십 명의 사람이 모이게 된다. 그때 찌 주위로 검은 그림자가 보이고, 사람들은 정말 물귀신이 있는 게 맞았다며 두려움과 관심의 눈초리로 그림자를 구경한다. 그러다 하나둘 재수 없다며 귀신을 내쫓기 위해 호수 위로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낚싯줄에 걸린 건 유령이 아닌 익사한 시체였다. 마치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그린 것만 같은 작품. 이 작품은 안개를 통해 사람들을 유령처럼 보이도록 하여 집단이 유령과 같은 공포의 존재인 것 양 그려내고, 불확실한 정보로 사실이 왜곡되는 현상을 뿌연 그림체로 상징한 것이 인상 깊다. 이처럼 <침몰>은 비이성적으로 진행되는 집단적 왜곡과 판단, 몰매의 과정을 ‘낚시’로 비유한 작품이다.



<큐(Q)>

마사타카 키하라 Masataka KIHARA | Japan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죽어 영혼이 된 주인공, 죽은 줄 알았던 주인공의 몸은 갑작스럽게 일어나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유령이 된 주인공은 몸을 잃어버린 채 도시를 떠돈다. 자신과 같은 다른 유령을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던 주인공. 그러던 어느 날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를 따라가다 한 아주머니 유령을 발견하게 된다. 유령이라 말을 할 수 없는 것인지 서로 대화는 없다. 그저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힘겹게 바람을 불어 소리를 낼 뿐이다. 그러다 아주머니 유령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주인공은 그 모습을 보다 다시 휘파람을 불기 시작한다. 그렇게 화면은 개인에서 도시의 모습으로 확장된다. 그렇게 도시의 소음 속에서 미세하게 들려오는 유령의 휘파람 소리가 쓸쓸하고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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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비행2


<안녕, 나의 오래된 악몽(To My Old Nightmare)>

신수연 SHIN Sooyeon


오래된 악몽은 오래된 죄책감으로부터 나온다. 악몽에 시달리는 주인공. 곧이어 어린 시절 키웠던 고슴도치를 잘 돌봐주지 못하고 보낸 게 악몽의 원인이었음이 드러난다. 이는 오래전부터 나에게도 내재되어 있던 악몽이다. 나 또한 고슴도치를 키운 적이 있었으며, 고슴도치뿐만 아니라 무수한 작은 생명을 떠나보내야 했던 어린 시절을 짊어지며 살아가고 있다. 펫로스와 죄책감. 아마 현재의 현대인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정서이기에 작가와 관객 서로가 보듬어줄 수 있었던 악몽이지 않을까. 이 작품을 통해 조금이나마 악몽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내게 닿는다.

안녕, ‘우리’의 오래된 악몽.



<식사(Eat With)>

박선영 PARK Seonyeong


이 작품은 어린 바퀴벌레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한 할머니의 허름한 집에서 어린 바퀴벌레는 살아가기 위해 매일매일 콩을 훔쳐 먹으며 살아간다. 그러다 바퀴벌레는 할머니에게서 자신과 닮은 외로움을 마주하게 된다. 자식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다는 안내음, 적막한 방 안을 채우는 TV 소리. 그렇게 바퀴벌레는 할머니 몰래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며 홀로 교감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불에 타기 직전인 냄비를 발견한 바퀴벌레는 낮잠을 자는 할머니를 깨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잠에서 깬 할머니는 그 순간 바퀴벌레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럼 바퀴벌레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책자를 돌돌 말고 다가오는 할머니를 열심히 냄비로 유인한다. 자기희생적 사랑. 이는 어린 바퀴벌레와 늙은 어머니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이 아닐까. 이 작품은 ‘내가 이렇게까지 바퀴벌레에게 애연함을 느낄 줄이야.’ 하는 황당함과 동시에 유일하게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작품이 아닐까 싶다.



커다란 의미를 상상력과 평범한 일상을 통해 다채로운 그림 스타일로 선보인 압축의 서울인디애니페스타. 다음의 인디애니페스타가 무척 기대되는 시점이다.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618)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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