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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내댁 Feb 24. 2019

피아노에 대한 단상

지친 퇴근길에 무료함을 달래고자 유튜브를 켰다.


무료함이라는 단어는 사실 이 상황에서는 우아한 단어고, 만원 지하철에서 휴대폰이라도 보지 않으면 기절하기 일보 직전인 상황이었다. 재밌는 영상들을 찾다가, 영재 발굴단에 나온 9살 피아노 영재가 연주를 하는 영상을 보았다. 태어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아이가, 신들린 것처럼 건반을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울컥하기까지 했다.


종종 이 프로그램을 보기도 하고, 여러 분야에 재능이 있는 다양한 아이들이 출연하는데 특이하게도 이 아이는 클래식 음악은 전공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난번에 나왔던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도 미술학원에 가고 싶지 않다고 인터뷰했던 적도 있었다.


나도 어렸을 때 피아노를 수년간 배웠고, 초등학생 때는 하나뿐인 이모의 결혼식에 연주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거의 20년 이상 가까이 치지 않았으니 이제는 악보 보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피아노가 이렇게 공을 들여야 하는 악기인 줄 알았다면 조금씩이라도 연습을 해둘걸 그랬나.


취미 음악이나 취미 미술을 알아본 적은 있지만 선뜻 한 달에 15만 원 가까이되는 금액을 지불하고 등록한 적은 아직 없다. 매달 월급 받는 직장인에게 자기 계발을 위한 그 정도 금액은 어떻게 보면 쉽게 낼 수 있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감은 없진 않다.


가끔 어떤 취미생활에 꽂혀 정말로 발을 담가본 것도 있고, 어떤 악기에 꽂혀 주야장천 유튜브에서 연주 영상을 보던 적은 많았지만 통장잔고를 생각하면 선뜻 계속 유지할 수는 없었다. 비전공자가 취미를 유지한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어렸을 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하면 되지 않냐는 어른들의 말도 결국 여유로운 사람들에게나 주어지는 삶의 쉼표였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지레 겁을 먹고 취미생활에 들이는 비용조차 아까워하는 것일까. 이 시대는 취미생활을 하기에는 사는게 팍팍하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물론 한 달에 15만 원을 아낀다고 집을 당장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취미생활 조차 계산기를 두들겨 봐야 하는 이런 현실이 너무나도 서글프다.


그래서 돈이 들지 않는 유튜브 시청이 요즘 대세인 것 같다. 나도 유튜브 속에서 마음껏 취미생활을 하는 영상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스마트폰 화면을 켜야만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불행한 것 같아 새로운 운동이나 취미를 찾아볼까 이리저리 기웃거리지만 취미 방랑자인 내게 딱 안성맞춤인 취미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한 가지를 진득하게 할 성격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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