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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내댁 Feb 17. 2019

전공에 대한 단상

"전공이 뭐예요?"

"아... 저는 3가지를 배웠는데요..." 


첫 번째 전공은 호텔리어를 꿈꾸며 진학한 관광학부였다. 1학년 1학기가 끝나자마자 이민을 가게 되어서 세부 전공은 선택하지 못한 채 끝냈다. 1학년 수업은 교양 과목과 개론 수업이 전부였던 관계로, 전공과 관련된 수업은 외식경영학이 전부였다. 사춘기 시절 꿈꾸던 호텔리어가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나름 재미있게 공부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던 스무 살이었다. 


사실 고등학생 때 내 꿈은 2가지였다. 방송과 관련된 전공, 그리고 호텔리어. '호텔리어'라는 드라마를 보고 호텔 매니저를 꿈꾼 것은 맞지만, 그런 드라마를 만든 드라마 PD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연기, 연출 학원을 다니고 싶었지만 일단 대학에 들어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늦지 않다는 말로 부모님께 설득당해버렸다. 이때부터 내 안의 나는 계속 두 가지 직업 사이에서 고민했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부모님도 무서웠지만 반항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던 나도 참 바보였구나 싶다. 


두 번째 전공은 미국에서 전공한 사회학이다. 입학할 때는 여러 가지 전공을 놓고 고민했지만, 이미 이민 1년 차에 부모님 레스토랑은 매물로 내놓은 상태였고 내 영어실력도 수업을 따라가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매년 전공과 수업 설명이 자세히 적힌 카탈로그가 나오는데 내 눈길을 항상 연극 영화 전공에 있었다. 세상에나. 입학을 하고 보니 우리 학교는 연극 전공으로 매우 유명한 학교였고 모교에 전용 극장까지 있었다. 이 점을 적극 활용했어야 했는데 영어가 두려웠던 나는 연극 수업을 수강할 용기 조차 내지 못하고 결국 졸업하게 되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장면 하나, 네가 원한다면 4년제에 진학해서 더 공부해도 좋다고 부모님은 말씀하셨지만 지금의 영어실력으로는 오히려 여기서 내가 원하는 방송, 공연 관련 일을 할 수는 없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편입해서 회사나 다니지 뭐~"라고 내뱉어 버렸고, 한국에 가서 무늬만 대학생으로 이제는 내가 원하는 걸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야심 찬 속내였다. 


먼 길을 돌아 마지막 전공 러시아어로 편입학을 했다. 러시아어를 택한 이유는, 영문학은 경쟁률이 너무 높고 영어 외에 제2외국어까지 할 줄 알면 어디 가서 굶고 살진 않을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그때는 내가 언어에 소질이 없다는 건 미처 알지 못했다. 편입학 후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공연에 관심이 있었기에 러시아어를 배워서 연출 관련된 유학을 가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얼떨결에 노어학과 3학년생이 되었다. 


역시나 러시아어를 열심히 배우기는커녕 공연 아카데미와 공연장을 내 집 드나들듯 돌아다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무조건 공연장에서 일할 거야. 그 특유의 나무 냄새와 생동감 있는 공연만이 날 살아있게 하지! 라며 꿈 많은 소녀였지만 지금은 IT 업계에 발을 디딘 지 7년이 넘어가고 있다. 참 사람 일은 알 수 없다지. 


가끔 전공이 뭐예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이 긴긴 얘기를 해주다 보면 점심시간이 끝나버리기 일쑤다. 모두들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지만 나는 유독 짧은 시간에 이것저것 발을 담갔다 뺐다 했던 것 같다. 지금도 이렇게 회사를 열심히 다니고 있는 내가 가끔은 신기하기도 하다. 혹자는 이런 경험들이 있으니 오히려 지금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지 않냐고들 하지만 난 아직도 꿈을 꾼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더 많은 30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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