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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내댁 Jun 18. 2020

허전함에 대한 단상

마음이 너무나 말랑말랑해졌다. 


새벽 6시에 숨죽여 드라마를 보면서 혼자 훌쩍이고 있다니. 육아를 해서 그런가 혹은 십여 년 가까이 반복됐던 회사생활을 잠시 멈추고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요즘 무척이나 감성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아니면 힘들고 기대고 싶어져서 몸과 마음이 약해진 걸까.  


드라마광이었던 내가 요 근래는 일주일에 한 시간짜리 드라마 한 편은커녕 한 달에 많아봐야 짧게 짧게 한 두 편을 겨우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드라마를 보면서 웃는 웃음보다는 아기가 예쁜 짓을 했을 때 웃는 웃음이 더 행복하지만 마음속 한구석은 왜 자꾸 씁쓸해지는 걸까.  


이제야 주부들이 멜로드라마에 감정이입을 하고 드라마가 삶의 낙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간다. 아직 아기가 자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우리 부부는 전투를 하는 자세로 육아에 임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의 사랑이나 마음이 식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신혼 때처럼 말랑말랑한 느낌은 조금 지나간 것도 같다.  


드라마를 볼 수록 주인공들이 애틋해 보이는 동시에 내 삶도 애틋해 보이는 건 왜일까. 드라마 한 편에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다니. 정말로 출산과 육아가 인생을 깊어지게 만든다는 게 이런 느낌인 건가. 이 알 수 없는 감정은 말로 설명하기도 힘들고 타자로 글로 써 내려가기에도 벅찬 감정이다. 대체 무엇일까.  


우리 부부는 어느 뜨거운 7월의 여름에 소개팅을 했다. 남편은 내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나도 어느 정도는 마음이 많이 갔다. 세 번째 만남에 남편은 "남자 여자가 만나서 세 번이나 밥을 먹었으면 어떤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니?"라는 급진적인 멘트로 사귀자는 언급을 했다. 나는 천천히 만나면서 생각을 해볼 참이었기에 생각해본다고 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나도 오빠가 좋아요"라는 다소 오글거리는 대답으로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둘 다 서른이 넘어 만난 소중한 인연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몇 달만에 "우리 같이 살까?"라는 남편의 제안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이듬해 4월 식을 올렸다.  


연애기간이 길지 않았고 결혼의 불문율인 연애 1년이라는 공식도 깨고 후다닥 결혼을 하고 다음 달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신혼 기간에는 연애하던 시절과는 다른 삶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었지만 그래도 꽁냥꽁냥함이 있었더랬다. 삶의 99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육아를 하는 지금은 솔직히 그때가 그립다. 연애를 조금 더 길게 하고 추억을 조금 더 많이 쌓았다면 덜 아쉬웠을까. 


아쉽고 그리운 것이 맞다고 다 괜찮다고 애써 위로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나는 지금 너무나 행복한데. 내가 원하던 데로 자체 안식년을 가지면서 회사생활도 잠시 쉬고 있고 다정한 남편과 아주 예쁜 딸이 있는데 말이지. 내 삶은 한층 깊어지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이 허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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