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어.

*나날이로그*

by 나날이로그

학생시절 시간이 날 때마다 서점에 가곤 했다.

그땐 내가 갈 수 있는 대형서점이 광화문에 유일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딱 한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이 좋았다.

버스 창가자리에서 mp3에 담긴 음악을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창밖을 구경하다

광화문에 도착하면

책 속에 파묻혔다.

숨이 쉬어졌다.

안전하게 느껴졌다.

물건에 쌓여 있으면 숨이 막히는데

이상하게 책은 많을수록 좋았다.

여기 세상의 모든 지식이 있고

이미 다 내 것인 것 같았다.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서점을 차리고 나는

전보다 더 많은 책들에 둘러싸여 있게 되었다.

그 공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다.

출근하면 서점 끄트머리에 의자를 놓고

책장에 꽂힌 책들.

책 제목들.

배치.

하나하나.

할 일이 많은데도 손님처럼 책을 들여다본다.

몇 장을 들춰 읽고 한 권을 들고 내려온다.

일주일에서 한 달을 걸려

가지고 다니다가 다 읽든 못 읽었든 서점 스티커를 붙인 후

다시 책장에 올려놓는다.


팔리는 책 보다

사는 책이 많다.


들어오는 책을

거의 다 읽지 못한다.


평생 남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만들면서 살았다.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결국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다시 음식을 만들었다.

한 번에 방향을 트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조금씩

겹쳐지게

음식과 책을 한 공간에 두게 되었다.

1층에서는 스콘을 만들고

2층에서는 책을 판다.


바쁘게 1층과 2층을 오가다 보면

나는 서점주인이란 사실만 남는다.

그냥 책을 파는 사람.

책은 자주 읽지 않는 사람.

그럼에도 책에 대한 갈증은 채워지고 있다.

책이 있으니까.

2층에는 책이 있고 나는 얼마든지 저 책장을

더 그득그득 채울 수 있다.

그런 사실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나는 책을 읽기보다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그냥 책들 속에 가만히 둘러싸여 있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요즘 이런 것들을 깨닫고 있다.

나는 나에 대해 점점 더 알아가고 있다.

이미 나는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지금 30대 후반에는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겠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이가 들수록 뚜렷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흐려진다.

심지어 좋아하는 음식조차 확신 있게 말하기가 꺼려진다.

점점 확신의 목록이 지워지고 있다.

그리고 하나씩

조금씩

천천히

다시 쓰이고 있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그보다는 책이 있는 공간을 좋아한다.


이 문장에 밑줄을 긋고 오늘도 나는 나의 책방을 둘러본다.

매일 보면서도 새로운 나의 책방을.


읽지 않을 책들을 가방 안에 넣어놓고 다닌다.

혹시 몰라서.

언제라도 꺼내 읽을 수 있는 책이 수중에 있어야 안심이 된다.

마치 그것만으로도 문장이 내 피부에 가깝게 스며드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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