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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오니 Jul 10. 2024

체질개선, 걷는 길부터 바꿨다.

체질개선이 간절했다. 

'계획형' 내 손길을 더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잘해내고 싶은 마음. 

이를테면 성정 같은 것. 하지만 오래 굳어진 모습을 개선하기란 쉽지 않았다. 


완벽주의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근래 들어 일상, 업무, 인간관계든 강약조절이 참 어려웠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불안이를 보며, 요즘 내 모습이 자꾸 떠올라 마음 한켠이 콕콕 아팠다.

결국 모든 것은 '진심' 하나에서 비롯된 것뿐인데 말이다.


게다가 올여름 더위는 참으로 혹독하다. 여름에 태어났다며 더위도 잘 이겨낸다고 자부했는데

올해는 너무 금방, 쉽게 지친다. 그리고 여유가 없다.

몸과 마음 모두 충전이 필요한 요즘, 하루 아침에 체질을 바꾸기보다는 일상을 이루는 작은 조각부터 변화를 줘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첫발을 떼었다. 바로 걷는 길부터 바꿨다.

매일 출퇴근길 오고가는 지하철 출구부터 변화를 줬다.

이곳으로 회사를 다니기 전부터, 종종 놀러오며 걸었던 길이란 이유로 익숙한 출구 하나만을 고집했다. 

이른 아침에는 인적이 드물어 골목골목에서 차가 쌩쌩 달리는 바람에 위험한 순간도 몇번 있었지만 

그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퇴근할 때는 이어폰을 꽂고, 황급히 앞만 보고 걸었다.


새로 걷게된 길은 인도 하나만 쭉 따라가면 된다. 차가 급정거할 위험도, 마치 내가 이방인이 된듯한 소음 속 낯설은 풍경도 없다. 출근하는 아침에도, 퇴근길 오후에도 그 모습은 비슷하다. 

너무나 도시 모습을 하고 있는 서울 한복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작은 평온함을 주기도 한다. 

이전 길과 비교하면 말이다. 앞을 가로막는 높은 빌딩이 없어서 그런지 바람도 더 시원하게 불어오는 것 같고, 날씨가 맑은 날이면 저멀리 한강 넘어 남산타워도 빼꼼 보인다.


오늘은 이전의 길에서는 좀처럼, 아니 한번도 마주할 수 없었던 ‘뭉클함’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지하철 출구를 나오는 길에서부터 회사로 향하는 중간 지점까지, 안내견을 만났다.


반려견을 키워오며 안내견에 대해서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관련 책과 정보들을 접하며, 안내견을 대하는 태도 등을 배웠고 중간중간 주변에도 알렸다. 

특히, 허락없이 함부로 사진을 찍거나 만져서는 안될 것. 보행 중에는 이런 행동을 하면 더더욱 위험할 수 있어서 주의해야한다.


종종 안내견을 마주치면 너무 기특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지만 행여 다정한 눈빛마저 방해가 될까 침묵하곤 했다. 오늘도 역시 마음 속으로 조용히 응원을 보내며, 평소보다는 조금 천천히, 간격을 두고 걸었다. 그렇게 시작한 오늘의 아침은 나에게 충분한 에너지가 됐다. 따뜻한 생명체가 누군가의 밝은 빛이 되어주며, 최선을 다해 힘차게 걷는 모습에 절로 힘이 났다.


삭막했던 나의 출퇴근 길이 경로 하나 바꿨을뿐인데, 이렇게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수도 없이 걷고 또 걸으며 왜 전혀 다른 길로 갈 생각을 못했을까. 심지어 시간도 단축되는데 말이다.


당장 타고난 기질을 바꿀 순 없다. 그치만 이렇게 일상 조각조각에 변화를 주며, 환기하려는 노력을 더한다면 조금씩 달라질 거라고 믿는다. 


뭐든 바꾸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도해야할지 막막하다면, 매일 걷는 길부터 바꿔보면 어떨까. 

골목 한구역만 달라져도 선물 같은 풍경, 혹은 뜻밖의 감정을 겪으며 조금 다른 일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렇게 차곡차곡 하루 이틀 쌓이면, 내 마음에도 빈 공간이 생길거라고 믿는다. 

그 공간 곳곳에 바람이 불어 마음 속 여유가 생기길 바라본다. 나의 태도가 조금 더 유연해지길 소망한다.


이른 아침 내게 따뜻한 힘이 되어준 따뜻한 존재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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