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기 편
자꾸 이런 걸로 멤버십 걸어 놓고 돈 땡기는 이들이 괘씸해서라도 이 글을 써 본다. 이런 거에 돈 쓰지 마세요들. 이걸 왜 돈 주고 배워...
그냥 절 따라오세요.
(바쁘신 분들은 본론이라고 표시된 부분으로 스킵하는 것을 권장 드립니다.)
서론.
글 잘 쓰는 법
이딴 이론적인 제목의 글과 책, 뭐 기타 등등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 대부분은 정말 영양가 없는 소리만 늘어 놓은 경우가 많다. 이런 글을 쓰는 작자들의 레퍼토리는 뻔하고 뻔하고 뻔뻔하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1. 다독
2. 다상 (多想)
3. 다필.
물론 글을 쓰며 필요한 소양이다. 나 또한 반박할 수 없기에. 아니 근데 누가 이걸 몰라서 못 쓰는 거냐고 인간들아
나아가, 일단 글을 느껴 보세요... 하는 변태 인간들도 있다.
따라서 대부분이 뜬구름 잡는 소리이거나, 너무 형식적인 잔소리 조언이거나, 당최 그래서 어쩌라고 싶은 방법론만이 주를 이룬다.
글 잘 쓰는 법.
이런 글을 쓰려면 자기 PR이라는 지겹고도 고루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치 서울대를 까는 인간이 서울대 출신이어야 하듯, 나는 이 글을 쓸 자격이 된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태어날 때부터 글을 써야 할 팔자, 글과 말로 먹고 살 팔자라는 운명을 짊어져야 했다. 그러니까, 어디서 사주를 보든, 이름 풀이를 보든 뭘 하든, 안녕하세요 저는,이 끝나기도 전에 응 넌 글. 다음~ 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는 뜻이다.
물론, 이렇게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나를 검증하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정말 태생부터 팔자에 '글쓰기'를 개빡세게 새기고 태어난 인간이라는 점을 어필하고 싶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 여기에 나의 외조부가 출판사 대표이자 작가였다는 설정을 더하면 이 글의 신빙성이 조금은 오르지 않을까.
자, 이제 태초의 것들을 까발렸으니, 결과로 입증해야 한다.
나는 사실 글쓰기가 제일 쉬웠던 인간이다. 그냥 하고 보니 최고가 되어 있던 게 글쓰기 분야였다. 슥슥 써내려지는 대로 썼을 뿐인데 수상을 하고 각광을 받고 인정을 받고 있었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하는 서울대생의 재수 없음이 느껴지지만 사실이다. 정말 글쓰기가 재미있었고, 글이 잘 써졌고, 그 결과로 보상이 따르는 삶을 살아냈을 뿐이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책 읽는 것을 안 좋아하는 보통 인간 1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달라진 건, 내가 사색을 할 줄 알게 되고, 내 글을 쓸 줄 알게 되고, 그걸 매개로 작은 사회 안에서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편독이 심하고, 공부는 그저 중상위권에 머물던 내게 글쓰기란 흥밋거리 정도였다. 그럼에도 교내와 몇몇 동창들에게 내 글은 수요가 있었다.
임원 투표를 앞두고 내게 선거 공약문을 써달라던 친구가 임원이 되던 순간, 동아리에서 진행한 PPT 발표가 동아리원들에게 신입생이었던 내 이름을 각인시키던 순간, 치열한 학생 기자단 경쟁률을 제치고 내 이름 석 자 박힌 기사가 발간되던 순간, 대회인지도 모르고 제출한 보고서가 최우수상을 받던 순간, 전교 에세이 공모전에서 헤드 라이너를 장식하던 내 글이 선생들의 연수 자료로 요긴하게 쓰였다던 사실을 교무실까지 끌려가 듣던 순간, 간절한 마음 없이 늦게 제출한 작사 수행평가가 수상의 대상이 되어 버려서 해당 과목 선생님께서 '이건 곧 죽어도 수상작이니, 제발 그날 늦게 제출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말해 달라'고 수상 날짜까지 끈질기게 나를 설득하던 순간 (어차피 수상 욕심도 없었고, 내가 그닥 좋아하지도 않는 과목이었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므로 끈질기게 거절했다), 흥밋거리에 재미를 붙여 참가하기 시작한 글쓰기 대회들에서 우수상 이하로는 받지 않던 순간, 그렇게 글쓰기로 받은 상장과 보상 뱃지들이 서랍을 메우기 시작한 순간, 마지막으로 논술과 문예 창작(이때 배운 베이스와, 좋아하는 작가들의 문체를 갈고닦아 계속 나의 문학 세계를 쓸고 닦는 중이다) 으로 입시를 준비하던 순간. 그리고 전국에서 글 좀 쓴다는 놈들 720명과 겨뤄 5등을 한 기억까지. 돌이켜 보면 나는 글쓰기를 놓지 않고 살아 온 것 같다.
게다가, 입시 글쓰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발을 들인 대치동에서 나는 논설문계의 최종 병기가 되어 대치동 강사들과 내 글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지경까지 이르기도 했다. 그런 학원에서 유명해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렇게 내가 쓴 논설문이 인문반 인원수에 맞게 카피되어 퍼날되길 몇 번.
브런치에서 글을 쓰게 된 것도 그냥 브런치가 글쓰기로 유명하길래, 라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아무것도 몰라서 블로그처럼 회원가입을 하고, 그냥 글을 쓰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작가 신청이라는 시스템을 보고 조금 놀랐다. 그럼에도 그냥 웬만하면 다 통과시켜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신청서를 적었다. 그랬더니 한방에 통과했다. 며칠 기다리는 게, 여기서 글쓸 자격을 누군가가 부여한다는 게 불편하고 건방지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래서 이게 형식적인 절차이며, 다들 한방에 통과했을 거라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그런데 몇 번이나 탈락했다는 몇몇 글들을 보고 충격을 먹었더랬다. 재수없는 게 아니라 정말 무지해서 그랬다.. 건방져서 죄송합니다
사실 내 글로 인정을 받으면서도 별 생각을 안 했다. 오히려, 내가 왜 칭찬을 받는 거지? 싶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그렇듯, 나는 내 세상의 기준이 나이기 때문에 이 정도는 다 하는 거 아니야? 내가 하면 남들도 다 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했던 말이었는데,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쓰진 못한다. 그래서 글쓰기의 왕도를 찾아 헤매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자, 서론을 장황하게 마쳤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자.
글을 잘 쓰려면, 타고나야 한다. 물론 이렇게 글을 쓰면 뭇매를 맞을 것이다.
그럼, 글쓰기에서 가장 우선시돼야 할 것은?
간단하다. 간결함이다. 나머지는 간결함을 갈고닦은 후에 챙기는 것이다. 문장력이고 필체고 나발이고... 일단 글쓰기 걸음마를 떼려면 글을 간결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간결함이란, 글의 요지를 글의 맨 앞으로 배치할 줄 아는 힘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예문을 준비했다.
예) 나는 오늘 마트에 갔는데, 거기에 어묵이 있었다. 내가 찾던 어묵은 아니었지만 나름 괜찮은 브랜드의 제품이라 흡족하게 장을 보았다.
-> 예-1) 오늘 나는 어묵을 사기 위해 마트로 향했다.
이렇듯 예시를 예시-1로 고치는 연습을 해 보는 것이다. 그 뒤 문장은 이 과정을 거친 후에 생각해야 한다. 시작부터 과욕을 부리기 시작하면 다 엉켜 버린다.
너무 친절한 글은 매력이 없다.
내가 여태껏 글을 쓰며 느낀 점이다. 속되게 말해, 조금은 싸가지 없는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예문을 보면 알 수 있듯, 첫 번째 문장을 읽으면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두 번째 문장을 읽으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하게 된다. 이렇듯 응축된 문장은 힘이 세다.
심화 과정으로 들어가 보자.
글을 잘 쓰려면, ~했는데, ~해서, ~해 가지고, ~하니까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니까, 이 연결의 늪에서 빠져나와 문장과 문장을 끊어낼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또 예문. 보통 이런 연결의 연결의 연결 고리는 일상 생활에서 많이 쓰인다.
예) 제가 일어나자마자 연락을 확인했는데, 서연 씨한테서는 연락이 안 와 있길래 다시 한 번 문자 넣었는데요, 9시까지 답이 안 오면 전화할게요.
-> 예-1) 아직 서연 씨한테서는 연락이 안 왔어요. 그래서 다시 한 번 문자 넣었습니다. 만약 9시까지 회신이 없으면 제가 서연 씨께 전화하겠습니다.
당신이라면 해당 예문 중 어떤 문장으로 업무 브리핑을 받고 싶은가? 당연히 후자 아닌가?
이렇듯, 깔끔한 문장 하나로 글 전체가 정리되기도 한다.
질질 끌지 말 것. 이걸 명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건 내가 쓰는 방법이다.
글에도 추구미가 있으면 좋다. (좋다는 거지, 무조건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일단! 기초부터 잘 갈고닦아야지! 무턱대고 따라한다고 우리가 한강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추구미란 무엇인가?
대충 이런 뜻이다.
이건 내가 마음에 드는 필체를 찾아야 해! 하고 쌍심지를 켠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냥 이런저런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내 마음에 쏙 드는 필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대충 이런 글을 좋아한다. 쉽게 쓰이진 않았으나 쉽게 읽혀서 가슴에서 얹혀 버리는 문장들.
흔히들 천박하다고 하는 글도 사랑한다.
그냥.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런 글을 쓰던 사람이 있었다.(1번 글쓴 사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다. 진심으로. 그런데 그 사람이 남기고 떠난 게 별로 없어서, 그거라도 붙들고 달달 외울 지경으로 읽어대는 중이다.
그러면 언젠가 그 사람이 돌아올까 봐.
그러면 그 사람의 문장을 조금이나마 흉내낼 수 있을까 봐.
아무튼, 이렇게 글쓰기 추구미를 설정하고, 그런 글들을 연구해 보고, 문장을 해부해 보고, 다시 내 식대로 꿰맞춰 보고, 다시 보고 또 보다 보면 어느 정도는 흉내를 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나의 최종 보스, 정신적 지주는 아르튀르 랭보이기 때문에 나는 내 글에 자만을 가질 수 없다. 그냥... 그렇다. 넘사벽을 동경하고, 모방하며 살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모두가 겸손해지라는 뜻이 아니다. 그냥 내 얘기이다.)
누군가는 필사를 해 보라고 하는데, 나는 차라리 추구미를 설정한 후 본인의 글을 써 보는 걸 추천한다. 읽는 것과 쓰는 건 너무도 다른 분야이니까.
물론, 이건 기본기가 다 닦였을 때의 얘기이다. 노베이스라면 앞에서 설명한 기본기부터 닦아야 한다. 만약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이 난다면, 좋아하는 글을 필사하는 것도 좋다. 그런데 난 추천하지 않는다. 딱히... 효율적이지 않은 방법 같기 때문이다.
나는 필사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냥 필사는 지루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용어를 지리멸렬하게 펼쳐가며 쓰는 글이라고 좋은 글이 아니다.
최근에 큰 관심을 받았던 헌법 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사건 판결문이 그 예시이다. 정치 색을 떠나, 헌재의 판결문은 간결했고, 해석하기 쉬웠으며, 전체적인 흐름이 매끄러워 기승전결이 완벽했고, 설득력까지 갖춰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까, 읽을수록 졸린 글 말고, 읽을수록 쫄리는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논문처럼 전문적인 지식을 다루는 글이라면 어려운 용어와 문장 구조가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지금 우리는 글쓰기의 기본기를 닦고 있으므로 최대한 쉽게 끌고 갈 줄 알아야 한다.
사자성어, 어려운 한자어, 지나치게 관념적인 문장만 피하면 이 문제는 쉬이 해결된다.
그러니 최대한 쉽게, 깔끔하게, 담백한 글을 쓰면 된다.
이게 어떤 말인지는 헌재 판결문 풀 버전 영상으로 대신 설명하겠다.
이제 결론.
글쓰기의 핵심은 간결함이다. 그 간결함을 완성하는 건 문장 쳐내기.
요즘엔 장문을 읽기 힘들다며 세 줄 요약을 해달라는 인간들이 많은 추세이다. 글을 잘 쓰려면, 여기서 요약을 해달라고 하는 인간이 아닌, 요약을 해내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내가 수능 국어와 입시 논술을 하며 배운 요지 파악하기가 이에 해당한다.
정 어려우면 ‘마르고 닳도록’이라는 홈페이지에 들아가, 비문학 요약하기 연습이라도 해 보길 권하는 바이다. 그걸로 기본기를 갈고닦아 일상생활에 적용하면 되니 말이다. (진짜 광고 아님 전 수능 국어를 마닳로만 공부했습니다...이찬희쌤 짱)
대충 이렇게 생긴 과제물이다.
음... 오늘은 글쓰기의 기본기에 대해 다뤄 봤다. 부디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
글의 본질에 대해 다뤄 봤으니, 후엔 반박 불가한 논설문 쓰기, 서울 예대 출신 과외 선생에게서 배운 콩트 소설 쓰기 등으로 돌아오도록 하겠다.
P.S. 모두모두 글을 잘 써서 내 가슴에 얹혀 버리는 문장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