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에 이은 투병 일기
요즘 자꾸만 재난 문자처럼 현재의 상태를 쓰게 되네요. 양해 부탁 드립니다. 스토리 보드대로 가는 게 이렇게 고된 일일 줄은 몰랐어요.
사실 나는 병원에서 주는 약들을 곧이곧대로 먹는 편이 아니라서 말이야 저번에 서울대 병원에서 받아 온 약들은 전부 모아서 비닐백에 넣은 다음에 냉장고 저 구석탱이에 처박아 뒀는데 말이지
근데 이제 마냥 그럴 수가 없을 것 같네
그냥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변해 가는 걸 문득 체감할 때면 인생의 잔혹함을 느끼곤 해
사실 나는 내 몸을 짊어지고 사는 인간이라, 게다가 무디기까지 해서 내 몸의 변화를 잘 알아채지 못해. 그냥... 몇 달 지나서 돌아보면 변해 있고, 또 몇 달 지나면 변해 있고 그러더라고.
살이 점점 빠지고 있어. 그래서 기존의 바지들 허리통이 커져서 바지 밑단이 바닥에 좀 끌리는 느낌이 들어. 그냥 내 느낌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근데 몸무게가 자꾸 내려가고 있긴 해. 살이 빠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는 거지.
근데 이걸 낫게 하는 것도, 나쁘게 만드는 것도 내 의지가 아니라서 말이야 그게 그렇게 괴로울 때가 있어
사실 누구한테든 힘들다는 말 그대로를 내뱉고 싶어질 때가 있어
지금이 그래
무뎌지다가도 다시 고름이 나오고, 딱지가 앉았다가도 상처가 무참히 벌어지곤 하지
방금 냉장고를 뒤져 약을 하나 더 털어 넣고 왔어 안 그러면 내 몸이 내 예상 기간보다 못 버틸 것 같았거든
이제 이 약과 시작하는 하루에 익숙해져야 하겠지? 근데 이거 질감도 그렇고 크기도 그렇고 이질감 투성이다. 그래도 익숙해지려나? 모르겠다. 난 워낙 무디니까. 모든 약을 속속이 꺼내 먹기 귀찮다고 생각하면서 매일 챙겨 먹을지도 모르지.
그냥 그런 밤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