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쓰는 글
요리에 재미를 붙이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요리하는 방법을 검색해보면 생각보다 아주 어려워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간 조절도 어렵고 재료를 써는 방법도 다 다르며 맞는 굵기로 써는 것도 쉽지 않다. 오늘 나는 양파 캐러멜 라이징을 한 번 실패했다.
맞벌이 부모님 밑에 언니 한 명을 둔 막내딸인 나는 딱히 요리를 즐기지 않았다. 아기 때부터 어머니는 일을 다니면서도 밥을 잘 챙겨주셨고 어머니가 안 계실 땐 한 살 많은 언니가 고사리 손으로 음식을 해줬다. 평소에 집에서 먹기 힘든 요리 하는 걸 좋아했던 언니는 초등학생 때 감자튀김을 하다가 눈 밑에 기름이 튀어 평생 남을 상처가 생기기도 했다. 그토록 고생하며 음식을 만드는 가족들에게는 통 관심 없이 나는 안경을 쓰고 코끝을 찡그린 채 TV보기에 열중했다. 청소년이 돼서도 가족들이 다 같이 월남쌈에 들어갈 재료를 준비할 때에 나 홀로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성인이 돼서까지도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라면뿐이었다. 언니와 내가 대학생이 되고서 가족들이 밥을 모여 먹는 일은 일주일에 한 번도 쉽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 받은 용돈으로 친구들과 신나게 밖에서 사 먹기만 했다.
사 먹는 음식만 좋아한다고 집에서 핀잔을 받던 내가 요리를 해야겠다고 처음 생각한 건 휴학했을 때였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매번 식사를 하기 위해 나갈 수도 없으니 혼자서 밥을 해 먹어야 했다.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밑반찬에는 관심이 없었고 주로 덮밥이나 파스타 같은 한 그릇짜리를 만들어 먹었다. 한창 패밀리 레스토랑의 필라프와 파스타가 인기 있을 때라 집에서도 먹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직접 해보니 스파게티 면의 간을 맞추는 것도 어려웠고 올리브 오일의 적당량도 몰랐다. TV에서 셰프들이 나와 요리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음에도 마늘과 양파를 어느 정도의 얇기로 썰어야 하는지 헷갈렸다. 꾸역꾸역 만들었지만 맛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고 특히 가족과 먹으려고 2인분 이상을 하면 항상 망해서 가족들에게 내보이기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레스토랑 요리와 비슷하게 해 보겠다는 욕심이 생겨서 다 먹지도 못할 치즈를 덩어리 째 사서 뿌리고 먹기 전에 때깔이라도 고와보자고 파슬리도 뿌렸다. 나중에 어머니와 언니가 해외여행을 한 달 가까이 떠나게 되어 그 음식들과 라면으로 낮 동안 버텼다. 저녁은 아버지가 해주시거나 외식을 했었다. 그게 내가 한 요리의 전부였고 복학을 하고선 요리가 귀찮아져서 또다시 사 먹기만 했다.
지금은 시골에서 아버지와 나, 도시에서 언니와 어머니 둘로 나뉘어 지내다시피 하고 있다. 여전히 나는 아버지가 해주는 음식만 먹고 내가 음식은 잘하지 않는다. 도시 집 같은 경우는 언니가 요리를 다 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 아버지와 언니가 같이 살게 된다면 언니가 많이 하지 않을까 짐작한다. 언니는 요리를 여전히 좋아하고 해외에서 지낸 경험으로 한국에서 잘해 먹지 않는 브런치나 라따뚜이 같은 음식도 곧 잘 만든다. 매일 가족 단톡 방에는 언니가 엄마에게 저녁을 뭐 드시고 싶냐 는 질문이 항상 올라와 있다. 반면에 아버지와 나는 보통 4가지 종류의 김치를 꺼내서 밥을 때운다. 아버지는 한 번 국에 꽂히면 오래도록 해 드시는데 최근 3주는 청국장을 먹었고 그다음 3주는 배춧국을 먹었다. 어쩌다 내가 파스타를 한 적이 있었는데 역시 맛은 썩 좋지 않았다. 반숙 계란장도 만들어 봤으나 참기름이 과해 실패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받는 대로 다 드셨다. 맛있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아버지도 내게 딱히 맛있는 음식을 기대하지 않아서 본인이 하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주간의 청국장과 3주간의 배춧국에 지친 나는 참치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졌다. 제일 좋아하는 찌개였는데 성인이 되고서는 소주와 함께 먹는 돼지김치찌개에 익숙해져서 한동안 먹지 않았었다. 몇 달 전 어머니께 먹고 싶다 하니 어머니는 본인이 좋아해서 너 어릴 때 해줬지만 이제는 돼지 넣은 게 더 맛있어서 안 한다고 하셔 얻어먹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주 어떤 유튜버의 영상에서 참치김치찌개를 만들어 먹는 모습을 보았다. 직접 요리하는 것은 안 좋아하지만 요리하는 동영상은 매일 여러 개를 볼 정도로 좋아해서 보고 있었는데 만드는 방법을 보니 생각보다 간단해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날 바로 첫 찌개 끓이기에 도전했다. 재료도 집에 전부 있어서 준비도 간단했다. 김치와 양파를 볶다가 물을 넣고 참치를 넣고 파를 넣고… 그렇게 나의 첫 참치김치찌개가 만들어졌다. 입가에 침이 고인 채 맛보았으나 기대보다 맛이 약해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했다. 아버지는 한 입 맛보시더니 찌개에 액젓을 넣으셨다. 이 상태로 더 오래 끓이라고 하셨다. 팔팔 끓인 뒤 다시 맛보는데 아까보다 확 좋아졌다. 입맛이 돈 나는 순식간에 찌개에 밥 두 그릇을 말아먹었다. 이 나이 먹도록 요리를 안 하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처음 만들어 본 찌개에 신이 나서 주변에 자랑하까지 했다.
오늘도 무얼 해 먹을까 고민했다. 처음엔 참치김치찌개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왜 여러 번 같은 걸 하는지 알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찌개 생각은 접어두고 사놓고 쓰지 않던 카레를 떠올렸다. 카레 재료는 집에 대충 있을 것 같아 카레 만드는 방법을 검색했다. 그중 ‘새우크림카레’ 만들기가 눈에 띄었다. 재료도 간단했고 마침 남은 냉동 새우를 처리하면 딱 이겠다 싶었다. 카레의 시작은 양파 캐러멜 라이징이었다. 열심히 볶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설명에 보이는 색과 내가 볶는 양파 색을 비교하니 너무 달랐다. 내 양파는 캐러멜 색이 아니라 오래된 나무색에 가까웠다. 양파가 타버린 것이었다. 열심히 한 시간과 양파가 아까워 고민했지만 결국 수채통에 프라이팬에 든 모든 걸 버렸다. 새로 양파를 꺼내어 씻고 채를 썰어 버터와 함께 불에 볶았다. 쉬지 않고 계속 주걱으로 양파를 뒤섞었다. 30분이 지나자 처음 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색이 나왔다. 순서에 맞춰 남은 재료를 다 넣어 한 시간 만에 카레를 완성했다. 맛은 카레가루와 우유가 다 해줘서 괜찮았다. 나중에 오신 아버지께도 드렸더니 맛있다며 싹싹 비워 드셨다. 처음 해 본 두 가지 음식들의 성공에 자신감이 살짝 올라왔다.
나이를 먹으면서 직접 하는 요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그렇게 좋아하던 라면도 점점 질리고 바깥 음식을 먹는 날이 길어지면 이내 집에서 먹는 음식이 그리워진다. 아는 요리도 몇 없는 갈 길이 먼 왕초보지만 앞으로 할 줄 아는 요리가 늘도록 더 시도해보려 한다. 한식을, 특히 밑반찬 같은 것들을 해 보고 싶다. 어릴 때 편식이 심하고 과자 먹느라 밥을 안 먹던 꼬마였는데 이제는 집 밥을 그리워해서 직접 해 먹으려는 성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