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쓰는 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있던 시간, 나는 우리 집에 눌러앉다시피 한 길고양이와 집 뒤의 좁은 길을 걷는다. 산책길 뒤 작은 언덕에는 요양병원 건설이 한창이라 공사 소리가 많이 들린다. 내 머리 위에는 공항을 향해 점점 육지와 가까워지는 비행기들이 몇십 분 단위로 지나간다. 귀로 파고들어 머리까지 울리게 만드는 소음들은 고양이와 걷다 보면 어느새 잊힌다. 내 멋대로 시월이라 이름 붙인 고양이는 어디 하나 쉽게 지나치는 곳이 없다. 지나가며 스치는 풀냄새를 맡고 나는 알아채지 못하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뒷집 개가 흥분해 짖는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슬아슬한 난간 위를 걷는 걸 즐긴다. 목줄 없이 자유로운 고양이는 나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온다. 내가 멈춰 사진을 찍으면 그 앞에 풀썩 누워 애교를 부리다가도 어디론가 사라져 자기 시간을 보낸다.
그사이 나는 지난주와 달라진 집 주변의 풍경을 본다. 가냘픈 나무에 매달려 있는 붉은 단풍잎들은 바람에 흔들거리며 햇빛을 받고 있다. 비바람이 오고 난 다음날 나무 주변에 가득 쌓여 있던 풋풋한 낙엽들은 모두 말라비틀어져 양이 확 줄어 보인다. 나무 주변 설악초들만 아직 푸르르다. 좀 더 걸어가면 작은 성당 옆에 은행나무가 하나 있다. 노란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들은 이미 형체를 알 수 없게 짓밟혀있다. 그것들은 더 이상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돌담길을 따라 이름 모를 열매가 달려있는 나무가 줄이어 있다. 어떤 열매인지 궁금해 향을 맡아보고자 코를 갖다 대니 익다 못해 썩은 내가 나고 있다. 썩은 열매 주변에 연푸른 잎이 돋아있다. 길 아래쪽 고추밭에는 남은 고추들을 붉게 만들기 위해 고춧대를 잘라놓아 마른 고추와 줄기들이 쓰러져있다. 봄, 여름 내내 포도밭에 깔려있었던 비닐들은 다 걷어졌고 포도나무의 가지들은 어느 정도 전지가 끝나고 사람 팔뚝 길이의 가지들만 남겨둔 채 앙상하게 남아있다. 텃밭의 배추들은 김장에 불필요한 잎만이 배추가 자라나던 자리에 축 널브러져 있다. 나는 푸른 하늘과 상반된 붉고 축축한 짙은 대지를 걷는다. 열매 옆에 붙어있는 푸른 잎들이 다음날 갑자기 안 보인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시간이다.
가을이 끝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