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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KPI설정

일년에 3개 과제 정하기

by 카리스마회사선배

일년에 한번, 매년 12월 31일 21시가 되면 우리 가족은 한 자리에 모여 KPI 리뷰를 한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심지어 여행을 갔어도 영상통화로라도 참석을 해야 한다. 지난 해의 결과를 돌아가며 리뷰하고, 과제 달성율별 시상을 한 뒤. 다음 해의 KPI를 정한다. 항목은 자유지만 인당 필수적으로 3개씩 정해야 한다. 건강 지표는 반드시 하나 들어가야 하고, 나머지는 구성원들의 동의만 있으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개별 항목의 난이도도 왈가왈부 애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슷해진다. 가족 간이라 약간은 쑥스러워해도 진지하게 결과를 발표한다.


2025년 딸의 KPI는 골격근량 1.6kg늘리기, AI관련 자격증 따기, 취업하기이고, 아들은 골격근량 2kg늘리기, 지게차 자격증따기, 한국능력시험 2급이상 취득하기다. 나는 공복 몸무게 53kg달성, 월1권 책읽고 독후감쓰기, 유산소 250일이다. 과제 1개를 달성하면 25만원, 2개는 50만원, 3개 모두 달성했을 때는 100만원을 시상금으로 준다. 각 과제에 대해 증빙도 철저히 제출한다. 자격증 따기라면 실물 자격증을 제시해야 하고, 몸무게 53kg이 목표였으면 시계 풀고, 양말 벗고, 속옷만 입고 직접 체중계에 올라가서 눈으로 확인시켜야 한다. 그러다 보니 리뷰할 때 제법 긴장감이 돈다. 시상금 재원은 각자 각출한 돈이다. 직업이 없으면 인당 10만원씩 내고, 나머지 80만원은 부모가 낸다. 가족 KPI제도를 운영한지 10여년이 넘다보니, 한 해를 보내는 집안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가족 KP를 운영하면 모호한 목표가 숫자로 명확해진다. 가족끼리 흔히 서로 집안일 좀 나눠하자는 말은 기준이 모호해 흐지부지되기 쉽지만, 주3회 분리수거 등의 지표를 선정하면 내가 할 일이 명확해진다. 또 강력한 동기부여와 성취감도 생긴다. 단순한 잔소리 대신, 달성시 확실한 보상을 연동하면 가족 구성원들의 행동 변화를 끌어내기 쉽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공통의 결속력이 다져진다는 점이다. 가족이 올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서로 이해하고 일년 후 조금씩 발전해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물론 가정의 조직화로 인한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집이 휴식공간이 아닌, 성과를 증명해야하는 압박감을 주기 때문이다. 또는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하게 되어 목표 달성을 위해 편법을 쓰거나 실제 내용면에서는 부실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독서 1시간을 채우기 위해 책만 펴놓고 딴 생각을 하는 경우다. 이런 단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가족여행, 소원 들어주기 등의 비금전적 가치를 넣어서 유연성을 발휘하면 된다. 가족 구성원의 동의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하다.


모두가 T(Thinking)성향인 우리 가족에게 KPI 제도는 최고의 솔루션이었다. T성향은 논리, 객관적 사실, 원인과 결과, 공정함을 중시하기 때문에, 숫자로 딱 떨어지는 KPI시스템과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보통 F(Feeling) 성향은 가족간에 점수를 매기는 것을 정이 없다, 삭막하다라고 느껴 거부감을 갖기 쉽지만, T가족은 말로만 잘하자고 하는 것보다 기준을 정하는 것을 휠씬 더 효율적이라고 느낀다. 설득과정이 필요없는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가족끼리 KP가 웬말이냐며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그래도10여년이 지나고 보니 구성원 모두가 열심히 사는 작은 동기가 되고, 그 결과 매년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도 나중에 가정을 꾸리면 똑같이 가족 KP제도를 운영하겠다고 한다. 물론 가족 구성원들의 성향에 따라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일단 도입해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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