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인식론, 데이터 온톨로지, 그리고 HR의 미래
세상을 이해하는 틀을 뜻하는 철학 용어 온톨로지(ontology)가 현대 데이터 과학의 핵심 개념이자 기업 경영의 새로운 도구로 부상하고 있다. 이 글은 온톨로지가 철학에서 정보과학으로, 다시 인사 관리(HR)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온 궤적을 추적하되, 그 여정의 중심에 이마누엘 칸트를 놓는다.
칸트는 흔히 순수이성비판의 인식론이나 정언명령의 윤리학으로 분리되어 소개되지만, 그의 철학은 하나의 체계이다. 인간이 세계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존재라는 인식론적 통찰은, 판단력비판에서 공통감(sensus communis)-보편적으로 공유된 판단 능력-으로 확장되고, 이 능동적 구성 능력을 가진 존재이기에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윤리학적 결론에 도달한다.
이 글의 논제는 다음과 같다. 칸트의 세 비판을 관통하는 핵심 원리-인간은 세계를 능동적으로 구성하고, 이 구성 능력을 타인과 공유하며, 바로 이 때문에 목적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는 데이터에 구조를 부여하는 현대 온톨로지의 철학적 원형일 뿐 아니라, 인간 중심 HR 기술이 따라야 할 설계 원칙이기도 하다.
1. 온톨로지의 기원과 칸트 제1비판: 인식의 능동적 구성
온톨로지라는 용어는 1606년 독일의 학자 야코프 로르하르트(Jacob Lorhard)가 저서 Ogdoas Scholastica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Øhrstrøm et al., 2008). 초기 온톨로지는 존재하는 것들의 본질과 범주를 탐구하는 형이상학의 한 분과였다. 이 전통은 18세기 이마누엘 칸트를 만나며 결정적 전환을 맞이한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1781/1998)에서 사물 자체가 무엇인가를 묻는 대신, 인간이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외부 자극으로 유입된 무질서한 감각 자료(manifold of intuition)는 지성이 보유한 12가지 범주(categories)-양, 질, 관계, 양상의 네 묶음-라는 선험적(a priori) 틀을 통과해야 비로소 경험적 인식이 된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인식의 주체인 인간이 수동적 수신자가 아니라 능동적 구성자라는 점이다. 세계가 인간에게 의미를 건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 원리는 현대 정보과학에서 비정형 데이터에 스키마(schema)를 부여하여 의미 있는 정보로 전환하는 작업과 구조적 유사성을 지닌다. 다만 유비의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칸트의 범주는 인간 지성에 선험적으로 내재된 보편적 형식인 반면, 데이터 스키마는 설계자가 특정 목적에 따라 구성하는 인공적 구조물이다(Smith, 2003). 전자가 인식 일반의 가능 조건이라면, 후자는 특정 영역의 지식을 조직하기 위한 합의된 규약이다. 이 차이를 인식한 위에서 양자의 공통 원리-무질서한 입력에 구조를 부여하여 의미를 산출하는 능동적 행위-에 주목하는 것이 더 정확한 비교가 된다.
2. 현대 데이터 온톨로지: 그루버의 정의와 팔란티어의 구현
철학적 논의에 머물던 온톨로지는 1990년대 컴퓨터 과학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톰 그루버(Tom Gruber)는 온톨로지를 “개념화에 대한 명시적인 명세(an explicit specification of a conceptualization)”로 정의하며(Gruber, 1993), 기계가 지식을 공유하고 처리할 수 있는 형식적 구조를 확립했다. 이로써 온톨로지는 철학적 탐구 대상에서 공학적 설계 도구로 전환되었다.
이 개념을 대규모로 구현한 대표적 사례가 팔란티어(Palantir Technologies)이다. 철학 박사 출신의 CEO 알렉스 카프(Alex Karp)가 이끄는 팔란티어는 파편화된 데이터를 객체(object)와 관계(relationship)로 재구성하는 운영 온톨로지(Operational Ontology)를 구축했다(Karp, 2023). 이 시스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전술적 의사결정 지원이나 COVID-19 백신 보급 최적화와 같은 복잡한 위기 상황에서, 인간 의사결정자가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환경을 제공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Palantir Technologies, 2024).
팔란티어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온톨로지 기반 시스템의 핵심 가치는 데이터를 자동으로 분석하여 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정보를 의미 있는 구조로 재구성하여 인간이 맥락 속에서 판단할 수 있게 돕는 데 있다. 이것은 칸트 제1비판의 원리-인간이 능동적으로 의미를 구성한다-를 기술적으로 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스템이 판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 능력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3. 공통감(sensus communis): 인식론에서 윤리학으로의 다리
그런데 칸트의 제1비판만으로는 HR이라는 인간적 영역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인식론은 개별 주체가 세계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설명하지만, 왜 그 구성 능력이 타인에 의해 존중받아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칸트의 제3비판, 판단력비판(1790/2000)이 결정적인 다리 역할을 한다.
칸트는 판단력비판에서 공통감(sensus communis)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것은 일상적 의미의 상식(common sense)과는 다르다. 공통감이란, 인간이 자신의 판단을 내릴 때 타인의 관점을 고려하여 사고할 수 있는 보편적 능력을 뜻한다(Kant, 1790/2000, §40). 칸트는 이를 세 가지 준칙으로 정리했다. 첫째, 스스로 사고할 것(편견 없는 사고). 둘째, 타인의 입장에서 사고할 것(확장된 사고). 셋째, 일관되게 사고할 것(일관된 사고)이다.
공통감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칸트 철학 체계 안에서 인식론과 윤리학을 잇는 고리이기 때문이다. 제1비판이 보여준 것이 ‘개별 인간은 능동적 인식 구성자’라는 사실이라면, 제3비판의 공통감은 ‘이 구성 능력이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공유되어 있으며, 인간은 타인의 관점을 내면화하여 판단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세계를 홀로 구성하는 고립된 주체가 아니라, 공유된 인지 구조 위에서 서로의 판단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 통찰에서 윤리학으로의 이행은 자연스럽다. 세계를 능동적으로 구성하고, 타인의 관점을 취하여 보편적 판단에 도달할 수 있는 존재-이러한 존재는 단순한 자원이나 수단으로 환원될 수 없다. 칸트가 도덕형이상학 정초(1785/1997)에서 “인간을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만 대우하지 말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라”고 명한 정언명령은 이 인식론적·미학적 토대 위에서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갖는다. 인간이 존엄한 것은 어떤 외적 속성 때문이 아니라, 세계를 능동적으로 구성하고 그 구성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4. HR 온톨로지로의 전이: 왜 잠재력을 재정의해야 하는가
이제 이 철학적 틀을 HR의 영역으로 가져와 보자. 팔란티어의 운영 온톨로지가 다루는 객체는 전투 자산, 공급망 노드, 물류 경로 등 비교적 명확히 정의할 수 있는 실체들이다. 반면 HR이 다루는 핵심 객체-역량, 잠재력, 조직 적합성, 학습 의지-는 본질적으로 추상적이며 맥락 의존적이다. SAP SuccessFactors의 역량 프레임워크나 Workday의 Skills Cloud와 같은 HR 기술 플랫폼이 직무·역량·학습 경험 간의 관계를 객체와 연결로 모델링하고 있지만, 이들이 포착하는 것은 주로 측정 가능한 행동 지표이다.
문제는 기존 HR 시스템에서 잠재력(potential)이 정의되는 방식에 있다. 전통적으로 잠재력은 ‘더 높은 직급이나 더 복잡한 역할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정의되어 왔다(Silzer & Church, 2009). 이 정의는 본질적으로 조직의 필요를 기준으로 인간을 측정하는 것이며, 칸트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을 조직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환원하는 구조와 다르지 않다. 공통감이 보여준 인간의 본질-능동적 구성자이자 보편적 판단의 주체-은 이 정의 안에서 포착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 중심 HR 온톨로지가 포착해야 할 잠재력 개념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이 제안하는 재정의는 다음과 같다. 잠재력이란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인지적 전제와 행동 패턴을 스스로 인식하고 수정해 나가는 역량-즉, 칸트가 공통감의 첫째 준칙으로 제시한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는 능력이다.
5. 더블 루프 학습과 메타인지: 잠재력의 실증적 토대
이 재정의는 조직학습 이론에서 실증적 뒷받침을 얻는다. 크리스 아지리스(Chris Argyris)와 도널드 쇤(Donald Schön)이 제안한 더블 루프 학습(double-loop learning) 이론이 그것이다. 싱글 루프 학습이 결과의 오류를 기존 전략 안에서 수정하는 것이라면, 더블 루프 학습은 행동을 지배하는 기본 전제(governing variables)와 사고방식 자체를 의심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다(Argyris & Schön, 1978). 이는 칸트의 공통감이 요구하는 ‘편견 없는 사고’와 ‘확장된 사고’의 조직적 번역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전제를 의심하는 것(편견 없는 사고)과 타인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확장된 사고)이 결합될 때, 진정한 학습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롬바르도와 아이칭어(Lombardo & Eichinger, 2000)가 체계화한 학습 민첩성(learning agility) 개념은 이 논의에 측정 가능한 틀을 제공한다. 그들은 고잠재력 인재의 핵심 특성이 기존 지식의 양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서 과거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추출하고 적용하는 능력에 있음을 밝혔다. 학습 민첩성은 더블 루프 학습이 요구하는 전제 수정 능력을 HR이 다룰 수 있는 형태로 조작화(operationalize)한 것이며, 칸트의 공통감이 제시한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실증적으로 포착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6. 인간 중심 HR 온톨로지의 설계 원칙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칸트의 세 비판에서 도출되는 HR 온톨로지의 설계 원칙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능동적 구성의 원칙(제1비판). HR 시스템은 알고리즘이 직원을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구조가 아니라, 직원이 자신의 역량 지형과 학습 패턴을 스스로 조망하고 성장 경로를 자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 시스템은 판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는 팔란티어의 운영 온톨로지가 지휘관에게 답이 아닌 맥락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둘째, 공유된 판단의 원칙(제3비판). 알고리즘의 의사결정 과정은 직원에게 인지적으로 이해 가능한 형태로 제시되어야 한다. 이를 인지적 가독성(cognitive legibility)이라 부를 수 있다. 공통감이 전제하는 것처럼, 판단의 근거가 공유될 수 있어야 그 판단은 보편적 정당성을 획득한다. 블랙박스 알고리즘은 공통감의 조건을 파괴하며, 따라서 칸트적 의미에서 정당한 판단이 될 수 없다.
셋째, 목적 존중의 원칙(윤리학). 데이터가 직원을 평가하고 분류하여 조직 효율성의 수단으로 환원하는 도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HR 온톨로지의 핵심 객체는 직무 수행 결과가 아니라 학습 민첩성과 메타인지 능력이어야 하며, 시스템의 궁극적 목적은 직원이 자신의 인지적 전제를 성찰하고 잠재력을 실현하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조화로운 적합성(Person-AI Fit)은 기술이 인간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이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나가며
17세기 로르하르트의 존재론적 탐구에서 출발하여, 칸트의 세 비판을 경유하고, 그루버의 공학적 재정의와 팔란티어의 실무적 구현을 지나, 마침내 인간의 잠재력이라는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가장 절실한 영역에 도달했다.
이 여정에서 칸트가 보여준 것은 세 가지이다. 인간은 세계를 능동적으로 구성한다. 이 구성 능력은 보편적으로 공유되어 있어 소통과 판단의 토대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는 결코 수단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이 세 가지 통찰은 서로 분리된 명제가 아니라 하나의 체계이며, 이 체계가 바로 인간 중심 HR 기술의 철학적 토대가 된다.
온톨로지의 본질은 결국 무질서에 구조를 부여하여 의미를 찾는 행위이다. HR의 맥락에서 이 의미 찾기의 주체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어야 한다. 기술은 그 과정의 조력자일 뿐이다. 올바르게 설계된 HR 온톨로지는 직원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타인의 관점을 내면화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자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줄 것이다-마치 칸트의 범주가 인식의 조건을 만들어주듯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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