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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움 May 28. 2020

클림트, 황금빛 회화에서
고요하고 신비로운 풍경화로

반 고흐의 <해바라기>와 클림트의 해바라기는 무엇이 다를까?

클림트 회화에서 빠질 수 없는 분야는 200여 점이 넘는 그의 작품 중 4분의 1가량이 풍경화다. 황금빛 에로시티즘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에 풍경화가 가려지긴 했지만 클림트의 풍경화야말로 미술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만큼 독특하고 신비로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세기가 시작되는 1900년부터 였다. 그의 회화가 보여준 노골적인 에로티시즘과 금박을 사용한 혁신적인 회화 기법이 빈의 화단에서 잦은 논쟁꺼리가 되자 사회에서 쌓인 피로를 자연에서 회복하려 했던것 같다. 클림트는 그당시의 생활을 "나는 보통 6시쯤 일어난다. 날씨가 좋고 햇빛이 비칠 때면 근처의 숲으로 가서 전나무가 몇 그루 있는 해변의 작은 숲을 그린다. 8시가 되면 아침을 먹고 호수에서 조심스럽게 수영을 한다. 그리고는 좀 더 그림을 그린다. 햇빛이 비치면 호수를 그리고 흐릴 때는 창밖 풍경을 그린다."라고 표현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풍경은 고요하면서도 명상적이다. 그의 풍경에는 인물도 없고 특별한 주제도 없다. 이런 특징은 모네의 풍경도 마찬가지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모네에겐 빛과 공간이 필수적이었다면 클림트의 풍경에는 이마저도 없다. 공간은커녕 화면 가득 꽃과 집과 나무만 있을 뿐이다. 그의 풍경은 대부분 정사각형 틀에 그려졌는데 직사각형 틀에 그려진 보통의 풍경화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준다.


그의 풍경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구도상의 요소는 수평선이다. 호수와 들, 하늘, 심지어 산도 수평선으로 그려져 있다. 그 수평선들은 물과 만나는 경우에는 화면 중심 아래에 하늘과 만나는 경우에는 화면 중심 위에 배치되는데 특히 하늘의 경우 대부분 화면 맨 위쪽에 가까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정도로만 그려져 있다. 그만큼 화면안의 공간감이나 원근감이 상당히 제한되어 보인다.


그가 하늘을 피한 이유는 아마도 하늘을 그릴 경우 자연히 현실적인 공간 질서가 중시되고 그만큼 그림의 사실성이 부각될 것을 의식한데 있다. 그의 풍경은 평면적인 화면 전개를 선호했다. 이런 평면성은 풍경 안에 특별한 구심력을 갖는 중심 소재를 배제하는 경향을 보인다. 나무는 나무대로 집은 집대로 꽃은 꽃대로 호수는 호수대로 모든 것들이 필요에 따라 분산 배치되어 각각 부분으로서 나름의 공간을 채워 각각이 모여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풍경화를 그린 것이다.


표현 방식은 점묘법처럼 색채의 병치 혼합을 중요시해 전반적으로 화사한 벽지 같은 느낌을 준다. 끝없이 퍼지는 패턴 형태의 장식적인 표현들이 그의 풍경화에서도 상당히 중요시했다. 이와 관련해서 평한 사람들에 말에의하면 그의 풍경화가 근본적으로 실내 풍경을 지향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야외를 그렸지만 닫힌 형식이나 평면적인 느낌과 패턴화한 색채 적용이 실내의 정경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풍경화를 그리게 된 데엔 그가 풍경을 보기 위해 사용한 도구가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풍경화를 그리러 갈 때 꼭 가져간 물건이 있는데 그것은 오페라를 볼때 사용하는 오페라글라스다. 가끔은 뷰파인더와 카메라를 이용하기도 했다. 풍경을 그릴 때 오페라글라스로 클로즈업해서 보면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평면성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는 말이다. 망원경을 사용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멀리 있는 사물을 앞으로 당기어보면 색채의 선명도도 떨어지고 빛과 그림자의 치이도 줄어들게 되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사물들 사이의 원근감도 실제보다 떨어지고 평면성이 두드려져 보이는데 그는 그 효과를 화면 위에 표현했던 것이다.

<카머 성 공원의 가로수 길>을 보면 정면에 있는 주택으로 가는 길에 울창한 가로수가 늘어서 있다. 보통의 화가라면 집을 중심 소재로 성정한 후 가로수를 멋들어지게 그렸을 것이다. 하지만 클림트는 가로수 그 자체를 화면 가득 강조하는 특이한 구도를 사용했다. 그의 풍경화에서는 공간이 끼어들 틈이 없다. 이 작품에서도 공간이라고는 지붕과 가로수 사이에 난 간신히 표현된 공간뿐이다. 여기에서 관람자의 시선은 자연스레 원근의 소실점 역할을 하는 정면의 주택을 향하지만 마치 가로수 길 사이로 난 작은 틈을 통해서 보는 것 처럼 답답한 느낌이 든다. 반면 길 양편으로 가지런히 늘어선 가로수의 기둥과 가지가 수직선처럼 쭉쭉 뻗어 강한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클림트의 풍경을 보고있으면 이 화가가 너무 많은 풍경화를 본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그림에는 고갱의 장식성과 앙리 루소의 소박함과 쇠라의 색채 분할, 모네의 화사함까지 녹아있는듯 하다.

이 작품은 반 고흐의 <해바라기>와 비교해 감상하면 더욱 재미있다. 이 작품을 완성하기 한 해 전에 반 고흐 특별전이 개최되었는데 이 전시를 본 클림트는 고흐의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한치의 공간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흰색, 붉은색, 푸른색, 보라색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화면을 가득 메운 가운데에 해바라기가 한 그루 크게 차지하고 있다. 중심 주제가 강조되지 않는 클림트의 풍경화중에서 이례적인 작품이다. 반 고흐가 해바라기의 잎사귀나 줄기보다 해바라기 꽃 자체에 태양 같은 에너지에 주목했다면 클림트는 해바라기가 주는 전체적인 형태와 색채가 주는 아름다움에 주목했다. 군데군데 매달려 있는 노란 해바라기는 고흐의 해바라기에 비해 너무나 고요하고 평범하다. 그저 편안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이 작품에서 클림트는 잎사귀를 유난히 집중적으로 그렸다. 이것은 아마도 클림트식 풍경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녹색의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무수히 많은 작은 꽃들의 반짝거림 속에 서있는 해바라기는 그자체로 자연 속에 녹아 있는 것 같다.


벨베데레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에는 이밖에도 클림트의 걸작 풍경화가 다수 전시되어 있다. 만일 미술관에 방문했다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길 바란다. 이 작품들은 자주 기획 전시에 차출되는 작품들이기때문에 미술관을 방문했다가 보고 싶어 했던 작품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야말로 운이 좋은것일 뿐이다.


클림트는 제 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한 해 앞둔 1918년 전 유럽과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스페인 독감에 걸린다. 루마니아 여행후 뇌졸중과 독감 합병증으로 56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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