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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움 May 27. 2020

화려한 색채와 장식의 극치
빈 상류층 여성들 초상화

여성들을 매료시킨 클림트 회화기법,클림트에게 초상화를 의뢰할 수만 있다면

구스타프 클림트는 금은 세공인의 아들답게 자신의 후기 작품을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 같은 눈부심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클림트는 산 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를 보기 위해 1903년 이탈리아의 라벤나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빈의 링슈트라세(Ringstrasse) 개발기 동안 부르크극장과 빈 미술사박물관에서 건축 장식가로 일하며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빈 대학 강당에 벽화를 제작할 당시 그는 비평가들의 심한 비난에 부딪혔다. 비평가들은 클림트의 <철학, 의학, 그리고 법학>을 불온하고도 부도덕한 작품이라 혹평했다. 이러한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으로, 클림트는 1904-1906년 여인들을 그린 일련의 초상화 제작에 착수하게 된다.


그림의 주인공 프리차 폰 리들러는 독일인이지만 특히 오스트리아 미술을 사랑했다고 한다. 클림트는 그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후광 같은 효과를 내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그녀의 머리 주변에 그려 넣었다. 이 작품은 빈 미술사 박물관에 소장된 벨라스케스의 <마리아 테레지아 공주>의 자세와 머리 모양을 기본 형태로 차용했다. 클림트 역시 고야, 마네 등 다른 화가들처럼 벨라스케스야말로 진정한 화가라고 생각했다. 


<프리차 폰 리들러의 초상>

폰 리들러 부인의 초상화에서는 다른 여성 초상화에서 느낄 수 없는 위엄이 돋보이는데 클림트가 부인을 매우 정중하게 대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클림트는  하얀 레이스와 잿빛 얼룩 리본을 전면에 내세웠다. 화려한 드레스와 대비되게 배경으로는 잔잔한 장식 패턴이 있는 붉은 색 벽을 배치했고 왼편에는 황금빛 스탠드램프를 그려 넣었다. 

그녀가 앉아있는 의자는 기하학적 패턴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소니아 닙스의 초상>에서 보이는 의자와는 달리 화면의 평면화를 뚜렷이 느낄 수 있다. 납작하게 평면화된 의자 역시 앉아 있는 모델을 실내 공간의 3차원적 대상으로 존재할 수 있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우아함과 권위를 부각시키고자 했던 화가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구성이다. 언뜻 장식 요소에 묻혀버릴 수도 있는 위험을 막아주는 것은 여인의 귀족적 자태와 피라미드 같은 구성의 위풍당당함이다.


<소니아 닙스의 초상>

물론 클림트는 앞서 <에밀 플로게>(1902)와 <마가렛 스톤보로우 비트겐슈타인>(1905)에서도 이러한 장치를 사용한 바 있지만 말이다. 

일견 클림트의 회화는 당시 젊은 작가들이 표방한 표현주의 회화에 대한 안티테제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클림트가 그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당시 빈의 상류층에 속하는 많은 여인들은 유행처럼 클림트에게 초상화를 의뢰했다. 클림트의 초상화에서 보이는 화려한 색채와 현란한 장식성이 상류층 여성들을 매료시킨 것이다. 그중에서 <소니아 닙스의 초상>을 보면 어두운 정원 한쪽에 한 여인이 다소곳이 의자에 앉아 있다. 앞서 본 그의 대표작들과는 달리 이 그림은 정원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이 배경이다. 하지만 한쪽을 시커멓게 칠한 어둠으로 인해 어딘지 비현실적인 느낌이 느껴진다. 여인의 핑크빛 드레스를 칠한 방식도 사실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질감을 표현적으로 묘사했을 뿐이다. 모델의 오른손에는 붉은색의 조그만 책자가 쥐어져 있는데 책자의 상징성보다는 아마도 작품 어딘가에 붉은색으로 포인트를 주고 싶어서 들게 한 듯하다. 클림트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던 시기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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