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가 보는 글
정년을 사 년가량 남겨두고 있을 때 신규직원 두 명을 접했다.
사회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과 완전 초짜가 그들이었는데 수습 기간 행동거지 하나하나 눈여겨보니 전자의 사람이 조금 더 나아 보였다.
사람 보는 눈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했던가. 내가 속한 과의 팀장보다 더 힘 있는 과의 팀장이 앞서 말한 전자(前者)를 픽업해 갔고, 완전 초짜인 그가 우리 과에 배치되어 왔다.
완초남은 이른바 MZ 세대로 입성과 얼굴 피부가 우선 달랐는데, 전자처럼 양복에 준하는 캐주얼 차림이 아니라 자유복 그 자체였고 호기심 어린 눈동자와 더불에 주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내가 늙어서일까? 전자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조심성이 보이고 돈에 민감해 보이지 않았으며, 말하지 않아도 자기가 있어야 할 위치에 정확하게 자리 잡는 모습을 보였으나 완초남은 그러지 않아 보였다.
이주일 후 정년을 일 년 앞둔 선배의 마지막 야간 근무 날, 완초남은 첫 야간 근무를 마쳤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인 야간 근무를 어떻게 행하였는지 알 길은 없었으나 다음날 아침 직원들 반응을 보니 그럭저럭 무난하게 해낸 것 같았다. 이튿날은 선배의 환송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회식날, 과장을 필두로 술을 '안 하는' 선배도 소맥 혼합주를 한 잔씩 받는데 완초남이 자기는 음료수를 마시겠다고 했다. 일순간 자리에 있던 모든 직원의 눈이 동그라지는 걸 놓치지 않았으나, 달라진 직장 회식 문화와 갑질을 의식한 듯 다들 '응?!, 그래 그래' 하는 분위기였다. 완초남은 "약을 먹고 있어서요"라고 했다.
한 순배, 두 순배 술자리가 무르익을 즈음 완초남이 눈에 초점 풀린 선배들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는데 먼 자리에 있던 나의 눈에 그의 모습이 들어왔다. 나서지 않으려다 주의가 환기되는 어느 시점을 틈타 남이 들고 있는 잔에 술을 따를 때는 병목을 잔에 턱 하니 걸치지 말라고 조언했으나, 양반다리할 때 발바닥을 상사 쪽으로 들어 발냄새를 풍기지 않는다고까지는 읊지 않았다. 겁도 없이 감히 MZ 한테 주도(酒道)를...
그날 만취해서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는지 필름이 끊겼다. 다음날 연차를 냈기 때문에 마음 놓고 마신 탓도 있겠지만 이제는 예전의 싱긋 풋풋 말랑말랑하기만 한 간이 아님을 간과했다. 정오가 될 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난생처음 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뭐야 이 번호는? 검색해 보니 스팸 확률이 87%다.
최근에 내가 쓰는 통신사, 카드사에서 개인정보가 털리고도 모자라 생활필수품이라고 일컬을 만한 전자상거래 회사에서도 '내 정보'가 유출되었는데, 평소와 다르게 적잖이 신경이 쓰였다. 도대체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가 올 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업무 중이니 문자 남겨 달라'는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답답하면 다시 연락하겠지.
진짜 연락이 왔다, 문자로. 답답했는지는 모르지만 연락의 주인공은 완초남이었다. '어제 술 많이 드셨는데 집에는 잘 들어가셨는지 궁금했다'라는 것이 전의였다. 감동보다 '얘가 왜?'라는 궁금증이 앞섰다. 나와는 세 계급이나 차이가 나고 술자리에서 주도를 읊는 꼰대질을 한, 거리감 넘치는 상사임에도 완초남은 친근한 동네형 한테나 보냄직한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전자(前者)의 태도에 넋이 빠져 나는 완초남을 경계하고 비교했었다. 전자 직원도 자기 과에서 첫 회식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완초남은 나의 경계심을 허물고 먼저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고도의 직장생활 기술을 어딘가에서 마스터했을 수도 있지만 고마운 마음에 다음날 고위(?)들만 초대한 해장 자리에 완초남을 데려갔다.
그 자리에서 '어제 집에서 기절해 있는데 완초남이 안부 문자를 보냈더라'라고 자랑하지는 않았다. 그도 티를 내지 않았는데 자기가 술 마시지 않은 사실이 미안해서 나뿐만 아니라 회식날 참석한 전 선배에게 문자를 보냈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나는 선입견을 가지고 대했던 그에게 두 번 다시 미안하지 않도록 자신을 채찍질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