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만으로는 치매를 예방할 수 없다?

쓰는 삶에 관하여

by 가리느까

어릴 때부터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는 편이었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던 시절에도 유별하게 전화번호를 잘 외웠다.


누군가 대화하다 "거, 왜, 있잖아. 예전에 OO하던 그 친구" 하며 상대가 어떤 사람의 얼굴은 떠오르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때, '아무개.'라고 대신 떠올리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심지어 어머니가 "그 노래 제목 뭐더라? 흥흥흥흥~ 흥흥~ 흥흥흥~ 하던 거" 할 때도 "카펜터즈의 TOP OF THE WORLD요?"라며 잽싸게 알아맞힐 정도로 기억력이라면 기억력이 좋았었다.


그러던 나였는데, 최근에 충격적인 기억력 상실을 경험했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어릴 때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라는 말을 벤치마킹하여 '바닥에 뒹굴어도 책밭'이라고, 아이들로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구해 와 거실에 뿌렸었다.


중3 후반, 약속했던 전교 등수와 상관없이 얼떨결에 휴대전화가 생기자 그때부터 책과는 담을 쌓았던 큰아이가 최근에 『돈의 속성』 (김승호 저)을 찾았다. 웬일인가 싶어 마침 소장용으로 보관하던 책을 얼른 내밀고 며칠간 지켜보았으나 도통 페이지 수의 진전이 보이지 않았다.


실로 오래간만에 아이가 책을 찾은지라 흡족한 마음에 끝을 보는 끝을 보고 싶었지만, 기대는 날로 무너져만 갔다. 그래서! 작열하는 태양을 뚫고 평일 점심시간에 무려 도서관에까지 가서 《청소년을 위한 돈의 속성》을 빌렸다.


아이가 책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그러나 보다 하고 빌린 건데 아이는 "오늘부터 기말고산데…"라며 관심을 일축했다. 두 주가 지난 지금, 빌린 책은 다시 작열 태양 아래 도서관에 반납했고, 『돈의 속성』 원판은 아직 아이의 책상 밑에서 5페이지에 책끈이 걸린 그대로 잠들어 있다.


어제 피서 겸 병행 독서하기 위해 아파트 작은 도서관에 가려던 차에 문득 북타워에 비스듬히 놓인 책 한 권을 발견했는데 작열하는 태양과 반드시 관계가 있는 바로 그 책이었다.


- 대체 이 책이 왜?


왜 우리 집에 버젓이 번듯이 있는가 말이다.


불과 이틀 전에도 없던 책이 짠! 하고 나타났는데 식구 중 누구도 책을 그곳에 놓아둔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귀신이 곡하기도 전에 나의 멘탈이 먼저 나가는 순간이었다. 내 기억력을 의심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으나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내블로그' 하단에 있는 블로그 내 검색창에 책 제목을 쳐보았다.


- 아니, 이럴 수가.


포스팅한 글이 있었다. 충격이었다. 집에 책이 있는 것도 모르고 그 무더위에 책을 빌리고 반납하러 다녔다니. 기억력에 심각한 손상이 온 게 틀림없다.


2024. 2.경부터 매일 글쓰기하는 중이다. 매일 고스톱을 치거나 글을 쓰면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매일 고스톱을 칠 수는 없고 매일 글은 쓰는데 기억력이 떨어졌다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매일 고스톱도 쳐야 하나.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니 상당하게 품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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