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제야 말해보는 그날의 기억
핫바사건이라고 부르자.
이 뒷담화 매거진에 뭐라도 써야겠다 했는데 방어기제인 건지 막상 쓰기가 싫어졌었다.
그렇지만 인생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트라우마일까. 어묵핫바를 튀기고 있는 어떤 남성 상인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굉장히 자극적인 기억이 있다.
오늘 시장에서 그 기억이 떠올랐고 그 이야기를 써보자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 나이는 초등학교 1~2학년쯤 됐을 나이인데 그런 것들을 봤다니... 싶어 지다가도... 뭐 요즘 얘들이 넷플릭스 시리즈인 오징어 게임도 본다던데 또 그럴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한 사건이었다.
어릴 때 아빠는 늘 술에 취해 있었는데 엄마가 집에 없는 날은 어디선가 낯선 사람을 데려와서 조그마한 단칸방에서 그 낯선 사람과 술을 마시고는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아빠가 알콜중독이 된 이유가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하는데 새 친구 사귀기 실력으로 치자면 과연 그것이 맞는 말인가 싶어 진다.
내가 살던 동네는 어묵공장이 있어서 어묵이 굉장히 쌌는데 그 어묵으로 핫바를 만들어 파는 상인도 시장에 많았다. 아빠는 그 상인과 대화를 하다가 어찌어찌 마음이 맞아 그 아저씨를 초대한 것이다.
둘은 술을 마시고 나는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홀로 놀았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자 갑자기 둘은 싸우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그 아저씨가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아냐며 뭘 보여줄 듯 바지를 벗으려다 나를 의식하고 이거 보여줄 수도 없고.. 하면서 다시 주섬주섬 벨트를 매는 것이다.
그러다가 또 몇 차례 크게 몸싸움이 그 방에서 벌어지고 나는 무서워서 옆집 대문을 열고 집주인할아버지 집 마당에 있었다. 그 마당을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냐면 그 당시 우리 집은 집안에 화장실조차 마련되기 어려운 단칸방이라 화장실은 옆집 마당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을 써야 했고 그래서 우리는 그 집 마당을 드나들 수 있었다.
새벽이라 다 잠들어 있었던 시간 나는 혼자 마당으로 싸움을 피해 나와 있는데 그 핫바아저씨가 술에 취한 채로 마당으로 들어와 화장실로 갔다.
그러더니 화장실 문을 활짝 열고 볼 일을 봤는데 그 사람의 성기에 쇠구슬이 박혀있는 것을 보았다. 너무 어릴 때니까 도대체 저게 뭐지? 란 생각이 들었는데 아저씨는 너무 만취해 있어서 날 의식조차 못했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여러 정보들을 듣고 이것저것 알게 되면서 그 쇠구슬의 용도를 알았지만 그래도 그것을 왜 아빠에게 보여주려 했는지는 미스터리이다.
추측해 보자면 그 시술이 고통스럽고 그것을 참아낸 나는 무서운 사람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근데 한편으로는 아빠는 몸에 쇠구슬 같은 것을 박지는 않았지만 유리를 입으로 씹고 뱉는 기술이 있었는데 만약 둘이 위협? 배틀을 벌였으면 정말 끔찍했겠구나 생각이 든다. 그냥 끼리끼리 어울려 논건가 생각도 든다.
암튼 그러고선 그 아저씨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는데 뭔가 큰 소리가 났고 내가 놀라 나가보니 아빠가 골목에 피투성이가 되어서 쓰러져 있었다.
나는 골목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는데 그제야 출근준비하려던 이웃집 언니부터 아침밥을 차리시던 아주머니까지 나와서 우는 나와 피투성이 아빠를 쳐다보고 다들 놀라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경찰이 왔고 그 핫바아저씨는 도망친 뒤였으므로 아빠만 경찰차에 태웠다.
방에 일단 들어갔는데 방에도 뚝뚝 떨어진 핏자국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경찰아저씨는 다 말라비틀어진 걸레로 피를 닦아보면서 나에게 여자니까 이런 바닥은 잘 좀 닦아야지라는 뉘앙스로 잔소리를 했는데 그것도 지금 돌이켜보면 무슨 아동인권, 여성인권 밥 말아먹는 소리인가요 싶어 진다.
내가 그 상황에서 '바닥이 더럽네 여자아이인 내가 이걸 지켜볼 수만은 없지' 하고 방청소를 시작해야 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이상했던 시대인 것 같다.
안타깝게도 나는 저학년 때 좀 모자랐는데 그것도 크니까 알 수 있게 되는 일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 비로소 알게 되었을 때 그때 나는 좀 저능했구나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무래도 방치돼서 크다 보니 표현이나 위기상황 대처능력 같은 것들이 더 떨어진 게 아닌가 싶은데 그래서 그때 경찰아저씨들이 내게 대화를 시도해 보고 그 핫바아저씨의 인상착의를 물었지만 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날의 일을 또렷이 기억할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게시하게 되는 날도 오는구나 싶다.
그런 생각도 해 본다. 내게 조금이나마 신체적 학대가 있었다면 아마 더 다른 기억이 되었겠지... 이런 기억 속에도 다행이라는 안도가 드는 감정이 있는데 그 이유는 그런 사건 속에도 나는 신체가 다치지 않고 무사히 그 밤을 넘겼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 종종 "삼신 할매가 널 보호했다보다" 그런 얘기를 자주 들었는데 만약 내가 그 설화를 믿는다 치자면 그날 삼신할매가 그들의 눈을 가려 나는 무사히 목격자로만 남아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