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뒷담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재영 Aug 31. 2024

5. 아빠는 여혐이었을까?

그럼에도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인생

이번주에 여러 뉴스들을 보고 우리나라는 여성 인권이 정말 낮구나 생각하다가 브런치생각이 났고, 아빠 생각이 났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본 바로는 아빠는 여성의 어떤 모습을 참으로 싫어했었다.


화려하게 꾸미는 여자를 싫어했는데 엄마가 화장하는 것을 뺑끼칠(페인트칠하다의 일본표현)한다며 뭐라 했었는데 의처증 때문일까 싶었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느 날 내가 귀를 뚫고 집에 오니 귀에 접시를 달아서 찢어지게 하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던 것을 보면 꾸미는 것을 싫어했던 게 맞는 것 같다.


근데 실 나도 꾸미는 것에 별 관심이 없어서 그렇게 아빠와 부딪히지는 않았다. 귀도 결국 귀찮아서 막혀버리고 오히려 너무 이목을 신경 쓰지 않는 옷차림 때문에 엄마가 창피해서 같이 다니기 싫다고 할 정도였다.


엄마가 어릴 때 무슨 예쁘게 꾸미는 소녀가 되자는 내용의 청소년 책을 선물해 주어서 그 책 집에 있었는데 그걸 내 책장에서 보고 아빠가 출판사에 전화를 해서 항의한 적이 있었다. 사실, 이것도 맨 정신에 했어야지 술 취해서 전화하면 시비터는 주정뱅이밖에 더 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책은 좀 이상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ㅋㅋㅋ)


사실 내 이름은 아들을 낳으면 아들에게 주려했던 이름이다. 딸을 낳으면 다음 아이는 아들이길 바라는(아들 자  자가 들어있는) 성차별적인 이름을 주려했었는데 어째서인지 나는 아들의 이름을 받았다. (사람은 예감이란 것이 다 있는 것인지 정말 그 후로 아빠는 후손을 보지 못했다.) 


아빠는 요즘 소위말하는 남미새를 싫어했다.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를 싫어한다고 느꼈던 적이 많았는데 이건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추측이지만 할아버지의 외도가 아빠의 성장과정에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근데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냥 어떤 편력을 싫어했던 것일지 모른다. 여성편력이든 남성편력이든 자유분방한 연애를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여미새를 같이 목격했다면 그 남자에게도 걸레라며 욕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빠는 신성모독도 서슴지 않았다. 성모마리아가 창녀라며 우리 모녀한테 자꾸 주장했는데 엄마는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에 그 말에 자주 자극되고 분노하며 슬퍼했다.


나도 종교성을 띤 인간으로서 그냥 어떤 찝찝스런 느낌을 받았는데.. 가끔씩 아빠의 삶에서 어떤 부분은 신성모독으로 인해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들기도 했다. 자세한 원리나 교리를 알아서 그런 것은 아닌데 뭔가 어렴풋이 저건 좀 신성모독인 것 같고 그럼 뭔가 재앙 같은 것이 있지 않나.. 하는 막연한 믿음었다.


그렇지만 사람이 참 다면적이라고 느낀 것은 아빠가 이렇게 뭔가 여성차별적인 부분이 있음에도 교육에서 만큼은 또 엄마와 반대였다는 것이다. 엄마는 여자는 대학 안 가도 된다며 내게 무리하지 말라 했는데 아빠는 어쩐지 "대학은 가야지." 하며 교육열을 갑자기 보여 의외성을 띄기도 했다.


아빠는 또 내게 장기를 가르쳤는데 그것도 사실 여자보다는 남자가 많이 한다고 알려져 있는 게임이어서 그랬나 싶어 진다. 내가 장기 두는 걸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놀이터에서 놀 때도 내가 무서워하지 않고 뭔가 대범하게 무언가를 할 때 좋아하는 기색을 보였던 것이 생각이 난다. (이쯤 되면 그냥 아들로 여겼나 싶기도 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아빠는 6남매 중 혼자만 남자인 외동아들이었고 또한 원치 않는 결혼을 해(근데 진짜 원치 않았다면 끝까지 안 했을 것 같다.) 결국 또 자식 하나를 얻었는데 그 마저도 딸인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는데 생각해 보면 아빠의 주변은 여자로 가득한 삶이었다. 안에 할머니, 고모들, 엄마, 나, 생각해 보면 다른 성별들이 가득했다.


가끔씩은 내가 아들로 태어났다면 또 아빠의 인생은 조금 바뀌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근데 언젠가 우연히 술, 담배를 많이 하는 남성은 딸을 낳을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기사로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알콜중독일때부터 아빠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즉 내가 딸로 태어난 것은 술 담배를 많이 하는 아빠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아빠는 진짜 여혐이 있었을까? 아빠는 맞선을 강제로 여러 번 봤는데 늘 자신에게 시집오지 말라고 했다는데, 그것이 여혐의 증거였을까?


혼자 살면 좋았을걸.. 그렇다면 알코올중독에 피를 토해가며 죽었어도 말리는 사람도 없었을 거고 엄마도 그 사실을 몰랐을 거고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브런치 계정도 없었을 것이다.


전에 외국에 어떤 작가가 비혼을 결심하며 만약 자신이 결혼했다면 있었을지도 모를 어떤 아이에게 사과의 말을 썼던 것이 생각이 난다.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어떤 존재에게 연민을 느끼거나 그리움을 느끼거나 한 적이 다들 있을까? 나는 있다. 내 뒤에 태어났을지도 모를 동생에게 연민을 느낀 적이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아이는 남자일 거라고 늘 여긴다.


만약 태어났다면 너의 한국에서의 삶은 나보다 쉬웠을까? 많은 것이 달라졌을까? 그런 이상한 생각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어쨌는 없는 일을 가지고 이렇게 길게 늘여 쓰다니 나는 정말 N형이 맞나 보다.


다시 아빠 얘기로 돌아가서 써놓고 보니 여혐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 점이 있는 것 같다. 그 시대에 다 그런 보수적인 면이 있는 건가 싶다.


아무튼 시대는 변하고 있고 좀 좋은 쪽으로 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4. 핑곗거리의 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