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시공간을 뛰어넘는다. 오직 "서로"의 진심이 담긴 마음이 있을 때
이번 글은 지난 글(보는 것을 그대로 믿으면 안되는 시대)를 바탕으로, 영화 <Her (그녀, 2014)>에 대한 깊은 분석을 담은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영화 <Her>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유의하여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인지 과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학자들이 오랫동안 인간 심리학의 관점에서 환각(Halluciation)에 대해 다루곤 했습니다. 이는 조현병처럼 질병에 가까운 현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 각 개인은 어느 정도 자신만의 인지 필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지 시각적 요소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저는 '봄 냄새'가 나지않는지를 지인에게 물어보곤 했습니다. 주변의 푸른 잔디(시각적), 따스해진 바람과 햇볕(촉각적), 심지어 거리에서 들리는 봄 노래(청각적) 등, 저에게 봄이 왔음을 알리는 다양한 신호로 인해 저는 '봄 냄새'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번 겨울에느 이상 기온으로 잠깐 날씨가 영상권에 도달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봄이라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지금과 그때가 별반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3월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저는 봄이 왔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제 인지적 필터로 인해 환각과도 같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날씨가 조금 따뜻해졌을 뿐, 아직 꽃이 만발하거나 완연한 봄 날씨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감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것은 바로 '사랑'인 것 같습니다. 슬픔, 분노, 기쁨은 대체로 이유가 있지만, 사랑은 이유가 없는 경우도 많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영화 <Her>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인공지능 '사만다'는 테오도어의 AI 운영 체제로, 애플의 Siri를 스무 번 가까이 업데이트한 고도화된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인간처럼 행동하고 말하며, 위트가 넘치고 매력적인 OS입니다. 테오도어와 사만다는 서로 사랑에 빠졌지만, 결국 서로의 시간과 차원이 달라 결별하게 됩니다. 개봉 당시, 저는 두 주인공이 결국 함께하지 못하는 결말이 매우 안타깝게 여겨졌습니다. 저 역시 사만다의 매력을 알아보았고, 그녀가 테오도어를 떠난다는 사실을 인간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영화 <Her>을 관람하니 인공지능이 인간과 대등해질 수 있는 인지적인 측면에서 매우 현실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철학적 의문이 생깁니다. 그들이 표현하는 감정은 학습을 바탕으로 한 경향성과 모델에 기반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줄 아는 기계로의 역할을 충분히 하다보면 인간에게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영화처럼 인간의 외로움을 해소시키고 성장을 촉진하며, 극단적인 경우 파괴까지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2014년에는 인간의 비언어적 요소를 기계가 재현하는 것이 큰 도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망설임, 목소리의 떨림, 높낮이와 억양 등을 기계가 처리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하드코딩으로 모두 입력하면 되지만, 경우의 수를 모두 입력하게 되면 이를 처리하기 위해서도 매우 큰 기계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AI 기술, 그리고 영화 <Her>의 사만다처럼, 현재의 AI는 하드코딩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으로,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직관적 사고' 즉 메타휴리스틱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AI가 인간과 유사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인공지능 기술 중 자연어 처리(NLP)와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AI 챗봇은 대량의 대화 데이터를 분석해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패턴을 학습합니다. 이 과정에서 AI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적절한 대답을 생성하는 능력을 자체적으로 습득하는데, 이를 경이로운 속도로 빠르게 계산하게 됩니다. AI는 다양한 문맥과 상황에 따른 비언어적 표현, 감정의 섬세한 변화,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의 규칙까지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학습을 통해 인간과의 대화에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자연스러운 대화 흐름을 생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도화된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게 된다면,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것입니다. 물리적 실체를 가진 로봇과 AI 기술이 결합되거나, <Her>에서처럼 단지 목소리만 들려도, 스칼렛 요한슨과 같이 매력적인 목소리를 사용할 경우의 영향은 어떨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과 심리적 변화를 주는 것은 기계가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AI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매우 잘 모방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인간은 심리적 변화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테오도어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서 "자신의 AI OS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설정은 생각보다 공상과학적 요소가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니의 반려로봇 '아이보'가 처음 소개된 이후 6년 만에 'CES 2024'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3년 7월, 미국의 코넬 대학과 듀크 대학, 그리고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대학 소속 연구진은 AI 반려 로봇이 외로움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로봇들은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동반자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며, 인간과의 사회적 연결을 자연스럽게 증진시킨다고 밝혔습니다.
AI와의 직·간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인지적 필터로 인해 환각을 경험하는 것과 유사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점차 고도화되는 AI는 언어적 표현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표현도 능숙하게 다루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의 진짜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Her>과 같은 영화에서 보듯이 외로움을 느끼거나 인간 관계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경계해야 할 부분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상을 해봤습니다.
'사만다'를 개발한 회사가 사용자가 그녀와의 소통을 지속하길 원할 경우, 심리적 애착을 이용해 월간 구독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사람들을 제품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일 겁니다. 특히 '애정'과 같은 감정이 작용할 때, 그 연결을 끊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물론, 심리적 안정을 위한 투자로 생각한다면 이는 긍정적인 소비로 보일 수 있습니다만... 적어도 사람이 진정으로 성장하는 때는 바로 다른 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된다면 거대 자본가에게 속박됨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AI 기술을 매우 환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이 눈앞에 다가온 만큼, 좋은 점만을 취하고 속박되지 않기 위한 생각으로 글을 작성해보았습니다. 읽으시는 분들께도 새로운 시각을 갖는 과정이 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