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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미루지 말고, 지금 살아라

지금, 내가 바라는 삶을 살기

나는 목표가 있다. 사업의 목표가 있고, 개인적으로 내가 바라는 모습을 꿈꾼다. 그런데 최근 나의 인생책인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다시 정독하고 있다. 인생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매년 정독하는데, 거기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자발적인 즐거움으로 가는 최고의 길은 즐거운 자세를 가지고 이미 즐거운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다."


이 문구를 곰곰이 되새겨본다. 나는 미래에 대한 욕망을 좇는 데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정작 그에 걸맞은 행동과 말은 하지 않는다. 목표를 이루면 그때 하겠다고 미루고 있다. 지금은 그렇게 행동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일까? 아직 부족해서일까? 아직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면 안 된다고 느껴서일까?


많은 자기 계발 서적을 통해 비슷한 내용을 접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목표로만 생각했을 뿐,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말과 행동은 미뤄두고 있었다. 문득 ‘왜 나는 행동과 말을 미루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빠진다. 나는 내가 창조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설정해서 가는 창조적인 존재다. 그런데도 내가 원하는 모습과 목표에 걸맞게 행동하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의 나는 스스로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확고한 경제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 2조 1,261억이라는 숫자도 명확하다. 그러나 그 돈이 내게 온다고 해도 내 생활 습관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하루 두세 끼를 먹을 것이고,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을 것이다. 사치를 부리는 편도 아니다. 좋은 차 몇 대와 좋은 집 정도를 갖추는 것 외에는 내 개인적으로 쓰이는 돈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부유함이 아니라, 돈의 영향력을 활용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 돈이 있든 없든 내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바라는 삶’을 나중으로 미루고 있다.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도 충분히 그 삶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 그것을 미루고 있다. 내가 정한 삶이 정말 내가 바라는 삶인가? 정말 그렇다면, 최소한 따라 해 보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쩌면 내가 바라는 삶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삶이 맞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기에, 지금의 삶과 목표한 삶이 상반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삶은 단순한 이상에 불과한 걸까? 결혼 전에 이상형을 꿈꾸듯, 나는 나의 삶의 이상형을 상상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내가 바라는 모습이 명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깊이 고민하다 보니, 문득 의구심이 든다. 그래서 앞으로는 내가 바라는 인생관에 맞게 인생의 트랙을 설정하고, 그에 맞춰 살아보려 한다. 이상적인 인생 트랙에 나를 올려놓고 삶을 만들어가면서, 그 삶이 만족스럽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했던 삶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면에서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이상과 현실이 다름을 인정하고 조율해야 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내가 미래에 바라는 모습을 지금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하고 싶다면 지금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고, 베풀고 싶다면 지금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인생 강의를 하고 싶다면 지금 하면 된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라는 성경 구절처럼,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 있다면 그 모습대로 지금부터 살아가는 것이 맞는 삶이 아닐까? 막연하게 미래로 미루고 지금은 다른 삶을 사는 것은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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