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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 나를 지켜주는 조용한 기술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것을 먼저 하는 삶의 지혜

오늘 문득 절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좋은 삶이라 믿고 살아간다.


그래서 일도,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소비하는 것조차 마음껏 하는 삶을 꿈꾼다.

욕망을 따르는 것이 자유롭고 진정한 삶인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믿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누리고, 원하는 대로 살아봤지만

그 끝에 남는 건 종종 무거운 몸과 조급한 마음, 그리고 가벼워진 통장이었다.


분명 자유롭게 살고 있는데, 왜 허전할까?


그러다 어느 순간, 삶에는 또 다른 원리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을 우선하는 삶이 아니라,

해야 할 것을 먼저 하는 삶이 진짜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한다는 역설.


절제야말로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라는 사실이 점점 선명해졌다.


절제를 예전에는 단순히 ‘참는 것’이라 여겼다.

무언가를 억누르고 포기하며 사는, 재미없고 답답한 방식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절제는 나를 돌보는 기술이고, 내가 나를 존중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음식을 과하지 않게 챙기고, 운동을 꾸준히 하고, 수면 시간을 지키는 일.

그건 단지 건강 습관을 넘어서, 내 몸과 삶에 대한 책임감의 표현이었다.


지출을 줄이고 소비를 멈춘 것도

욕망을 억제하는 일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에게 묻는 과정이었다.


절제는 어떤 분야에서든 통한다.

공부든 운동이든, 무리하면 부작용이 따랐고,

적절함 속에서 조금씩 꾸준히 해냈을 때 더 오래 지속되었다.


절제는 단순히 무언가를 덜 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쌓아두는 저축의 원리처럼

삶의 여지를 만들어 주는 행위였다.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하고 싶은 일부터 하다 보면 늘 쫓기고 허덕였지만,

해야 할 일을 먼저 해내고 나면 하루가 훨씬 길어졌다.

절제는 시간마저도 불어나게 했다.


절제를 삶에 들이기 시작하면서 성취가 따라왔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정해진 루틴을 지켜내면서

작은 성과들이 하나씩 쌓였고, 나는 그 결과를 통해 나 자신을 더 믿게 되었다.


성공은 단지 재능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절제를 반복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절제는 결코 쉽지 않다.


세상은 끊임없이 유혹하고, 비교와 조급함은 늘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럴수록 환경을 정돈하고, 나만의 루틴을 지키고,

하루의 작은 절제를 칭찬하며 중심을 다시 잡는다.


절제는 나에게서 무언가를 빼앗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건강, 시간, 돈, 집중력, 그리고 나 자신을 지켜주는 보호막이었다.


절제는 나를 억제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진짜 자유를 주는 삶의 방식이었다.

하고 싶은 걸 참을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나의 주인임을 느낀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나는 나를 절제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 하나가 내 삶을 다시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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