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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에게도 유효기간이 있다

좋은 관계를 위해, 멀어져야 할 때

엊그제부터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고객도 유효기간이 있지 않을까?”


8년 전, 전원주택을 분양받은 한 고객이 있다.

그분은 유독 나에게 많이 의지했다.

사실, 본인이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일들조차도 나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엔 그 의지를 믿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점점 '의존'이라는 단어에 가까워졌다.


신축 건물에는 애프터서비스, 이른바 AS가 존재한다.

보통 처음 2년 정도는 정성을 다해 문제를 해결해 드린다.

그 이후에는 건축주가 스스로 해결하거나, 필요할 경우 비용을 지불하고 도움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가끔,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당연한 듯 도움을 요청하는 고객들이 있다.

그건 단순히 무지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이 관계가 오래 지속될수록 점점 더 ‘왜 이걸 안 해주냐’는 기대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기대는 실망을 낳고, 실망은 오해를 만든다.

결국, 서로를 위한 관계였던 것이 어느새 서로를 갉아먹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번 고객은 분양한 지 벌써 8년이 다 되어가는 집에, 아주 사소한 문제로 다시 연락을 해왔다.

나는 그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생각했다.

‘아, 이 관계는 이제 유효기간을 지난 걸까?’


나는 고객과 평생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그 마음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마음이 오히려 독이 되는 순간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관계에는 건강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도움이 지나치면 당연함이 되고, 당연함은 결국 더 큰 요구를 만든다.


물론 모든 고객이 그런 건 아니다.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그 몇몇을 위해 모든 기준을 무너뜨리는 건, 나 자신에게 무리이자 불공정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다짐한다.

서운하더라도, 아프더라도.

고객과의 관계에도 ‘기준’과 ‘유효기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내가 빠진 자리에 오히려 더 나은 해결책이 생기기도 한다.

계속 내가 중심에 있으면, 그 사람은 끝내 ‘나 없이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


오늘 하루는 그렇게 시작한다.

건축업자인 내가, 고객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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