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 운명의 길을 함께 걷다

선택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성찰

여러분,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운명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선택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운명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태어남, 죽음, 그리고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느 나라, 어느 부모에게 태어날지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어떤 영성가 들은 우리가 천상에서 이미 선택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그 선택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은 논외로 두기로 합니다. 죽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건강하게 살기를 희망해도, 죽음은 우리 뜻대로 조정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백세가 넘는 삶을 살며 교훈을 주고 떠납니다. 이렇게 죽음은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운명입니다.

가족도 그렇습니다. 부부의 만남과 자녀의 탄생 역시 선택할 수 없는 운명 중 하나입니다. 부부의 만남은 때로는 선택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저는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성격과 특성을 지닌 사람들과 만나면서 서로를 보완하고 성장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상형을 가지고 있지만, 종종 이상형과는 전혀 다른 사람과 운명적인 인연을 맺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의 인연 속에서 태어난 자녀 또한 운명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아이가 남자일지 여자일지를 결정할 수 없으며, 그들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태어날지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태어남과 죽음, 그리고 가족은 절대적인 운명이라 믿습니다.


이 운명적인 관계 속에서, 저는 부모로서 자녀에게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들은 각자의 삶과 목적을 지닌 독립적인 존재이며, 부모가 그들의 인생을 통제하려 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각자 태어난 목적과 재능이 있는 자녀들을 부모의 뜻에 맞추려는 시도는 피해야 합니다.


어제는 막내가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던 아내가 걱정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가 호기심을 가지고 무엇인가에 몰두하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호기심이 충분히 해소되도록 놔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언가를 억제하려 할수록 오히려 더 큰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저는 어릴 적 경험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경험한 뒤에야 절제를 배울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는 것보다, 오히려 질릴 정도로 경험해 본 뒤 스스로 멈출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놀아본 사람이 결혼생활을 더 잘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이는 삶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고 나면, 오히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자녀는 각자의 운명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들의 인생에 관여하기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삶을 주도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사회적 기준이나 기대에 맞추어 자녀가 성장하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그 기대가 누구의 것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나 사회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인생을 주도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존중받아야 하는 것처럼, 자녀들도 그들의 삶에서 존중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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