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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별하 Aug 12. 2022

그림책 에세이
'여름의 끝은 어디일까?'

그림책 '이름 짓기를 좋아하는 할머니'

민여사는 뛰어난 살림꾼이다. 음식도 잘하고 바느질 솜씨도 뛰어났지만 특히 식물을 잘 키우는 재주를 가졌다. 덕분에 민여사네 식구들은 사계절 내내 식물들이 꽃을 피우는 걸 볼 수 있어 좋았으나 화분에 물을 줘야 한다든지, 그늘에 옮겨야 한다든지 하는 귀찮음도 있었다. 추운 겨울에는 안으로 들어온 화분과 함께 봄까지 북적북적 한솥밥 식구처럼 지내야 했으니 “화분 좀 줄이면 안 돼?”라는 식구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민여사의 하루는 이른 새벽, 밥을 지으면서 화분에 물 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흥얼흥얼 불경을 외우기도 하고, 애틋함을 담은 타령조로 꽃들에게 기특하고 예쁘고 대견하다는 아침 인사를 건네는 사이 아침이 밝아온다. 가끔 이웃의 화분이 병원처럼 민여사네 집에 몇 달간 머무르다 다시 회복하여 돌아가기도 했다. 이웃들은 그런 민여사를 ‘꽃박사’라 불렀다. 민여사가 이렇게 식물을 잘 키우는 이유는 아마도 살아있는 꽃들과 수시로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짐작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민여사는 바로 나의 어머니다. 
 
 민여사가 떠오른 그림책이 있다.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이 책은 칼데콧 상과 뉴베리 상을 두 번씩 수상한 관록 있는 작가 신시아 라일런트의 작품이다. 상실이 두려워 생명이 있는 것에 마음 주는 일을 시작하지 않으려는 할머니가 어느 날 우연히 찾아 온 강아지 한 마리를 통해 다시 용기를 내어 또 다른 관계를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매일 아침 할머니는 로젠느에서 일어나, 프레드에 앉아 코코아를 마시고는, 

베치를 몰고서 우체국으로 달려갔어요.'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로젠느', '프레드', '베치'는 침대, 의자, 자동차에 할머니가 붙여준 이름이다. 주인공 할머니는 외로운 게 싫다. 나이가 많은 탓에 친구들은 모두 떠나고 매일 누군가로부터 편지가 날아오길 기다리지만 날아오는 건 세금고지서 밖에 없다. 이름을 부를 친구들이 사라지는 것이 싫어서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에만 이름을 붙이고 살겠다고 결심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강아지 한 마리가 매일 찾아온다. 할머니는 강아지 역시 먼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름을 붙여주지 않으려 버틴다. 하지만 늘 찾아오던 강아지가 자취를 감추자 걱정이 되어 유기견 보호소까지 가게 된다. 그곳에서 우리에 갇힌 강아지를 발견하고 ‘러키’라는 이름을 붙여 집으로 데리고 돌아와 함께 살아가는 극적인 이야기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 떠오른다. 모든 사물은 이름을 명명해 주었을 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주인공 할머니가 지어 부르는 ‘이름’도 같은 맥락이다. 옛날에는 영유아 사망률이 높아 출생신고도 몇 년 뒤에 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동안 ‘개똥이’ ‘막순이’ 아무렇게나 불렀다하니 내 이름 하나에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관계’란 길들인 서로의 시간이라고 했다. 7번째 행성인 지구에서 친구가 필요했던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같이 놀자고 하지만 여우는 ‘길들어 있지 않아서 너와 놀 수 없다’고 한다. 지구에서 발견한 수많은 장미를 보고 놀란 어린 왕자에게 ‘너의 장미꽃을 소중하게 만든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고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가르쳐 준다


꽃 키우기를 누구보다 좋아하셨던 민여사에게 꽃 화분들은 식구며 생명의 경이로움을 알려주는 친구였고 서로가 존재의 이유였다화분 하나하나와 서로 길들인 시간이 있었을테고그 시작과 끝이 있었을 것이다큰아들을 따라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그 많은 화분을 다 데리고 갈 수 없어 작별을 했고 병이 찾아 와자기 몸 하나 감당하는 것도 벅찬 날이 되자 민여사의 꽃들은 이래저래 세월속으로 사라졌다이제 민여사 곁에 남은 건 몇 해 전부터 키우기 시작한 어린 고무나무 한 그루뿐이다     


노인들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경제적 빈곤과 외로움이라고 한다. <이름짓기를 좋아하는 할머니>에서 할머니는 다행히 경제적 궁핍은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는 혼자 자신의 주변을 잘 정리하고 꿋꿋하고 마음도 단단해 보이지만 실은 상실의 아픔으로 세상과 어울리지 않으려 한다. 민여사도 그랬다. 살아온 날보다 이 세상에서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을 거란 생각에 생명을 키운다는 것이 싫다고 하셨다. 이사를 거듭하면서 오랫동안 꽃나무 한 그루 없는 생활을 하셨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고무나무 화분 하나를 다시 키우기 시작했다. 사실상 키우고 싶은 것은 그리운 수국이라며 다음 봄에 수국 화분 하나를 사달라고 하셨다. 주인공 할머니에게 ‘러키’와 민여사에게 ‘수국 화분’은 뭘까? 삶의 의지일까? 인생은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   


       

여름의 끝은 어디일까? 장렬히 울어대는 매미 울음이 끝나는 날이 여름의 끝이다. 여름이 끝나서 매미가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지 않아서 여름이 끝나는 것이다. 모든 삶이 끝나는 날까지 매미처럼 세차게 울어댈 수 있기 바란다. 


    


자녀와이렇게 활용해 보세요


 # 내 이름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보세요.

 # 내 이름을 소중하게 불러주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세요.

 # ‘이름짓기 좋아하는 할머니’의 상실감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보세요.

 # 할머니처럼 나의 물건에 이름을 붙여 보세요.

 #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일을 이야기 나눠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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