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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하바 Mar 10. 2022

그 집 냄새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사진은 글 속 장소와 전혀 관계 없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박사장 가족은 기택 가족의 냄새에 대해서 은근한 혐오와 멸시를 드러낸다. 반지하 냄새, 빈곤의 냄새. 기택이 충동적으로 박사장을 죽인 것도 목숨이 위협을 받는 순간에서조차 계급은 뚜렷이 존재한다는 듯 코를 틀어막는 박사장의 행동 때문이었다. 냄새로 기억되는 나의 서울역 집. 숨기고 싶은 빈곤의 냄새가 아직도 나에게 묻어있을 것만 같아 나는 그 집을 그렇게도 잊고 싶었던 것 같다. 평생을 그리워할 나의 마당집에 관한 글을 쓰고 난 후 두 번째 글은 꼭 서울역의 그 집에 대해 쓰고 싶어졌다. 나를 사랑하려면 지나간 나의 빈곤을 바로 보고 그 시절 또한 나의 역사로 품어줘야 하니까. 




서울역 11번 출구로 나와 이어지는 길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남산 올라가는 길' 정도로 인식될 테다. 오르막길의 왼편에는 높은 빌딩들이 오른편에는 낡은 음식점들과 상가들이 있는데, 언덕을 반 정도 올라 마주한 삼거리부터는 또 다른 세상이다.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힐튼 호텔과 남산 공원이, 오른편으로 난 길로는 요즘 핫한 후암동 거리가 이어진다. 낡은 음식점과 상가들의 뒤편이자 후암동 거리와 서울역의 중간에 나의 서울역 집이 있었다. 가보지는 않았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서울역 쪽방촌'. 스물셋. 서울에 올라온 지 4년 차. 서울에서 익숙한 곳은 학교 근처 동네뿐 지지리도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나는 그곳이 쪽방촌이라는 것도 모른 채 방 구하기 카페에 올라온 글만 보고, 다소 고압적이던 집주인의 위세에 밀리듯이 덜컥 계약을 해버렸다. 


스물셋의 가을, 졸업을 앞두고 있던 난 거의 매일 울었다. 취업 준비가 힘들었던 것도 있었으나, 다른 친구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집 고민이 더해진 때문이었다. 낮에는 친구들과 수업을 듣고, 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저녁이면 혼자서 서울 사방을 집 구하러 돌아다니던 날들. 해 잘 들고 번듯한 오피스텔이나 원룸을 구할 돈이 있었더라면 무슨 고민이 있었을까. 부동산에 들어가 액수를 이야기하면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피식 웃으며 '그 돈으로는 방 못 구해요' 하는 보증금을 들고서도 월세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공중에서 사라질 그 돈들이 너무나 아까워서. 


결국 직접 발품 팔아 피터팬의 방 구하기 사이트를 뒤져 찾아낸 집들을 매일 한 곳 씩 돌아다녔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렇게 찾아간 집들은 엄청난 오르막에 있거나, 반지하거나, 옥탑방이거나, 화장실이 바깥에 있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혹시나 기대하고 찾았다 역시나 실망하고 돌아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때는 늘 배가 고팠다. 집 구할 돈도 없는데, 먹는 데 돈이 쉬이 내밀어 질리 없었다. 2천 원짜리 떡볶이 혹은 시장 골목의 천 원짜리 만두를 늦은 저녁으로 사서 걸었다. 돌아갈 집 역시 집의 모양새를 온전히 갖추지 못한 곳이었지만 내 몸 하나 먹고, 씻고, 누일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위안이 되었다. 비닐봉지 밖으로 풍겨 나오는 떡볶이 냄새 덕분에 그 시간들을 버텼다. 




서울역 집은 새꿈어린이 공원이라 이름 붙은 작은 공터 위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름과는 달리 공원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는 2년 내내 한 번도 볼 수 없었지만. 어린이들 대신 공원은 노숙인들, 쪽방촌 거주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쓰였다. 가끔은 무료급식도 하고, 의료 돌봄도 나오고, 행사도 하는. 공원에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오후에는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부러 늦췄다. 쪽방촌 주위 빌딩들에 회사가 많아 저녁에는 의외로 유동인구도 많은 곳이었다. 집을 보러 간 때도 저녁 시간. 회식하는 직장인들이 거주민들보다 거리에 더 많았던 터라 그곳이 쪽방촌이라는 의심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2년 내내 나는 오히려 낮 시간이 더 불안했다. 광합성을 하기 위해, 밥을 먹기 위해, 소일거리를 찾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앉은 거주민들 시선을 그대로 받으며 언덕을 올라 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5분이 세상에서 가장 길게 느껴졌다. 내 집은, 아니 현관문을 열자마자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하나 놓인 작은 부엌이 딸린 내 방은 언덕 아래에서 훤히 올려다 보이는 반지층이라 그곳의 모두가 내가 사는 곳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아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급히 현관문을 닫고도 한참을 불도 켜지 않고 숨죽이고 있다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고는 했다. 


반지하여도 창문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았을 걸. 창문 하나 없는 집을 그때는 무슨 정신으로 계약을 한 걸까 사는 내내 후회했다. 한 달 넘게 집 같지 않은 집들을 보러 다니며 지쳐 있었어서, 면접을 보고 구두 신은 피곤한 다리가 너무 무거워서, 지금까지 봤던 중 방과 욕실이 가장 넓은 집이어서, 역과 가까워서. 창문이나 주위에 신경 쓰지 못했을 만한 이유는 많았다. 환기를 걱정하는 나에게 주인아저씨는 현관문 열어두면 충분하다 했고, 그 돈으로 이런 집 못 구한다며 이미 흔들리고 있는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벽에는 희한하게 약간의 곰팡이도 피어있지 않았었다. 정말 괜찮을 것만 같았다. 젊은 여자 혼자 살면서 현관문 덜렁 열어두고 환기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그때는 미처 몰랐을 뿐. 


곰팡이는 피지 않았지만 낡아서 누레진 벽은 페인트칠을 하기로 했다. 남자 친구와 둘이서 열심히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흰색으로 네 벽을 칠했다. 창문 하나 없이 새하얀 방. 뒤늦게 페인트칠을 도와주러 온 친구는 정신병원 같다는 농을 던졌다. 아, 두 사람은 서울역 집의 유일한 방문객들이었다. 가족이 아닌 이들에게 나는 최대한 그 집을 숨기고 싶었으니까.




이사를 하고 얼마 후 2주간 신입사원 교육을 다녀왔다. 구두굽 또각또각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낑낑거리며 언덕을 오르는 나를 공원에 앉은 수많은 눈동자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현관 앞에 서서 바로 들어가야 하나, 다른 집으로 들어가는 척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출입문을 잇대고 있는 이웃집에서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갈 만큼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프라이팬 위 고기가 지글거리는 소리,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 그리고 아이의 웃음소리. 지금 와 생각하면 그들의 삶이라고 딱히 나보다 나을 것 없었겠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조차도 나를 둘러싼 결핍을 온몸의 모든 감각으로 자극하는 행복함의 상징 같았다. 


반겨주는 이 하나 없다는 외로움, 당장 오늘 저녁 먹을거리부터 해결해야 하는 배고픔, 2주간 쌓인 빨래들과 짐 정리, 집 정리 같은 산적한 일들로부터 오는 피로함. 성적우수생으로 조기 졸업하고 졸업 전에 대기업에 입사하고, 신입사원 교육에서 우수상까지 받아왔는데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화려한 세상에서 가면 쓰고 신입사원 연기를 하다 현실로 뚝 떨어진 내가 거기 서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응축해 두었다가 밭은 숨을 몰아쉬듯 우르르 몰려나오는 페인트 냄새. 밤에 자는 동안 질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현관문을 열어 두어야만 했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현관문 앞 부엌 참에 쭈그리고 앉아 한 손에는 언제든 통화 버튼만 누르면 되도록 핸드폰을 들고서, 나는 냄새들 사이로 부유했다. 페인트 냄새와 섞여 버린 고기 굽는 냄새는 더 이상 맛있지 않았다. 




가난한 여주인공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주를 이루는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감이 없기 때문이다. 부자에 잘생기고, 착한 데다가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남자 주인공이라는 설정도 물론 드라마의 현실성을 떨어뜨리는 이유 중 하나지만, 내가 더 거부감을 느끼는 부분은 여주인공의 '가난한 방' 때문일 때가 많다. 위치만 산동네고, 옥탑방이지 사실 그들의 방은 감성 사진으로 SNS에 올려도 좋을 만큼 아기자기 예쁘게도 꾸며져 있다. 


가난한 사람은 대게 취향도 궁색하다. 변변한 집 구할 돈도 없는 사람이 취향을 담은 물건들을 구색 맞춰 들여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중고로 산 침대와 책상, 티브이와 세탁기, 툭하면 쓰러져 낑낑거리며 세워야 했던 핑크색 행거까지. 색도 모양도, 재질도 어울리지 않는 생계에 필요한 가구와 가전들만이 사방이 하얀 벽을 배경으로 놓여 있던 나의 서울역 집. 주위에 미국인들은 하나도 살지 않는데, 미군기지 때문이라며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바퀴벌레가 날아다니던 집. 싸구려 페인트 냄새와 반지하의 습기가 섞여 항상 묘한 냄새가 나던 집. 골목에 들어서면서부터 풍기는 쪽방촌의 쿰쿰한 냄새와 몽롱한 눈빛으로 비틀거리는 노숙인들, 예측할 수 없는 소음에 늘 긴장을 놓지 못하고 지내야 했던 집.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의 집과 서울역 집은 꿈과 현실처럼 거리가 아득했고, 내 인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마도 서울역 집과 평생 제대로 화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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