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대화

by 채진아

일주일 중 하루 우리가 시간을 내어하는 것은 집을 돌보는 일이다. 일요일은 집을 돌보기에 가장 좋은 하루다. 분갈이를 위해 상토와 삽을 다이소에서 사 와 흙을 갈아주고 맥없이 위태롭게 서 있던 스투키를 단단히 일으켜 세운다. 화분에 물을 준다. 스투키 말고 우리 집엔 네 개의 화분이 더 있다. 모두 엄마가 주거나 사 준 화분이다. 엄마는 놀랍도록 집 안의 조경을 아름답게 꾸밀 줄 안다. 혼자 살 때 내가 돌보던 식물이 자꾸 죽어버리는 탓에 식물을 돌보는 일은 자연스레 구름이가 맡았다.

"이것 봐, 여기에 새싹이 나고 있어."

나뭇가지로 지지대를 받쳐놓은 가랑코 맨 꼭대기 줄기에 아주 자세히 보아야 볼 수 있는 작은 잎들이 총총 모습을 드러냈다. 귀엽고 경이로운 새싹을 함께 감탄해 주길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그는 나를 부른다. 화분에 물을 주는 날은 일요일로 정했다. 분갈이를 해주는 그의 옆에서 나는 토마토를 슬라이스 하고 로메인을 씻으며 내일 아침에 먹을 샌드위치를 미리 준비해 둔다. 규칙적이고 평범한 일은 단정함이 된다. 다음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을 맞이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다.

생활이란 작은 것들을 반복적으로 돌보는 일이다. 그와 내가 돌보고 지켜내야 하는 것이 결혼과 동시에 생겼다. 이벤트 없는 작은 일들이 촘촘히 쌓인다. 생생하고 소란했던 계절을 지나 조금은 고요해진 정적인 상태에 머문 지금. 시끄러운 대화가 필요 없는 곳에서 나는 안온한 감정을 느낀다.


밤늦도록 사투를 벌이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구름이를 본다. 배고플 그를 위해 야식으로 육개장 컵라면을 해주고 나도 같은 것을 먹으며 거실에서 책을 낭독한다. 각자의 일을 돌보며 하루가 깊어간다. 밤 열한 시,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간다. 말없이 우리는 공원을 걷는다. 대화가 아닌 것들로 침묵의 시간을 채운다. 이제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말로 내뱉었던 일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었고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준 적도 있었으니까. 그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일 때면 때로는 참는 것이 기다려주는 것이 사랑을 뜻하는 것임을 알았다. 장자끄 쌍페가 말했던가. '사랑의 말은 존재하지 않아요. 사랑의 행위만 있을 뿐이죠.' 침묵은 말보다는 행위에 가깝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것. 들어주는 일은 충고하는 이의 마음보다 힘든 일이며 내 말을 들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나 다름없다. 아프다고 말할 때 칭얼거림을 받아주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아무 말 없이 함께 비를 맞아주는 일. 오늘 하루를 들어주고 격려해 주는 일. 사랑을 할 때는 굳이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혼자였다면 무서워서 하지 못했을 일. 공원에는 불이 다 꺼져버렸지만 그의 손을 잡고 있으면 나는 안심이 든다. 많은 사람이 그래서 결혼을 하는 걸까. 지독하게 안정적인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것. 오랫동안 침묵이 이어져도 편안한 사람. 서로 의무를 다해야 하는 사랑임에도 나는 이 포근하고 따뜻한 온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 언제고 이모부가 내게 했던 말 '사람은 순리대로 살아야 돼.' 그 순리라는 건 뭘까. 가족을 이룬다는 걸 뭘까. 형언할 수 없는 중요하고 거대한 것.

손을 잡고 아주 천천히 그와 나는 공원을 산책한다. 아주 느린 모양으로 그가 내게 스며든다. 그와 함께한 헐겁고 나른한 날들은 나의 가장 내밀한 기억을 만들 것이다. 쓰이지 않은 우리의 날은 이런 순간들로 이어질 것이다. 분명하고 선명하지만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비밀은.

이전 13화치킨은 아침에 먹어도 맛있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