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은 아침에 먹어도 맛있지 않아?

by 채진아

“언니, 나베에 우동 넣어 먹는 거 좋아해?”

그녀는 나베를 좋아한다. 작년 1월 후쿠오카 여행을 같이 다녀왔을 때도 온종일 나베 노래를 부르고 나베 집을 찾아다녔다. 오늘 그녀는 나를 집으로 초대해 나베와 석화에 연둣빛깔 크림을 입은 ‘오이스터 록펠러’를 해주기로 했다. 내가 우리 집에서 홍합스튜와 스테이크 큐브를 해주곤 삼 주 만에 그녀가 나를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각자 혼자 지내는 우리는 밥을 먹을 때 조촐하기 짝이 없거나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데 이렇게 둘이 만나는 날이면 누가 더 맛있는 음식을 내놓느냐에 대해 경쟁이라도 벌이듯 상을 차리기 위해 욕심을 낸다.

집에 들어서자 고소한 크림 냄새가 났다. 그녀가 석화 위에 얹어질 소스를 만들고 있었다. 미리 손질된 석화는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있다. 얼마나 큰 놈들이 있나 나는 석화를 뒤적거려 본다.

나베를 좋아하는 그녀는 나베를 만드는 것도 잘한다. 요리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다. 앙증맞은 주물 팬에 느타리버섯과 표고버섯을 얇게 썰어 바깥으로 두르고 떡이 치즈처럼 늘어나는 유부 모찌 네 개와 싱싱한 초록 부추를 안쪽으로 보기 좋게 놓는다. 가운데에 얇은 소고기는 화룡점정으로 붉은 자태를 뽐내며 안착한다. 그 모습에 나는 감탄을 내뱉는다. 와우. 음식을 준비하는 그녀의 옆에서 군침이 돌며 슬슬 배가 고파졌다. 모든 요리가 완성되어 갈 때쯤 갑자기 그녀가 소리친다.

“아! 부탄가스가 없다.”

중요한 게 빠졌다며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한다. 나는 배고픈 와중에 왜 이제 와서 부탄가스를 찾느냐며 물었고 토치로 그을음을 내야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인다며 그녀는 부탄가스를 찾아 대기 시작했다. 나는 답답해하며 말했다.

“마트에 가서 사 올까?”

그녀는 그을음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고 배가 고프니 너는 어서 빨리 음식을 완성하라고 요리에 바쁜 그녀를 위해 나는 직접 마트에 가서 부탄가스를 사 오겠다며 잠바를 두르고 나섰다. 파티시에로 일하는 그녀가 내일 일할 때 필요한 달래 다섯 팩을 추가로 요청했다. 나는 카드를 건네받고 마트로 향했다. 일 층 마트는 마치 시장에 온 것처럼 봄동이며 달래며 시금치, 미나리 같은 나물이 즐비해 있었다. 도심 한복 판 오피스텔 일 층 마트에 이렇게 나물이 많은 것은 처음 봤다. 마트 한구석에 어렵게 찾은 부탄가스와 달래를 집어 들고 계산대 앞에 섰다. 그녀의 휴대 번호로 마트 포인트 적립까지 야무지게 끝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배고픈 배를 부여잡고 부탄가스와 달래를 그녀 앞에 대령했다.

드디어 마지막 순서가 왔다. 소고기 옆으로 내가 좋아하는 순두부 세 덩이를 올리고 토치로 표고버섯과 순두부, 고기에 그을음을 냈다. 뽀얗고 하얀 순두부에만 그을음이 티가 났지만 그녀는 만족해하는 눈치였고 나도 맞장구를 쳤다.

“디테일이 살아있네.”

드디어 마지막 단계인 그녀의 아빠가 일본에 출장 갔을 때 사 왔다는 시판용 나베 육수를 주물 팬에 부음과 동시에 요리가 완성되었다.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테이블 가운데에 나베가 배달되었다. 나는 가장 먼저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었다.

“와, 파는 것보다 더 맛있다.”

이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나베를 먹고 있으니 에어프라이어에서 석화가 익어갔다. 오이스터 록펠러는 풍부한 시금치 향과 노릇하게 익은 빵가루로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을 뽐냈다. 이로써 일식과 양식의 조화로 식탁이 차려졌다. 부드러운 크림과 바싹하게 튀겨진 빵가루, 그리고 익은 듯 완전히 익지 않은 굴이 한 입으로 들어올 때의 맛이란. 매년 이렇게 해 먹어야지. 밖에 나가 돈 주고 사 먹을 만한 비주얼과 맛을 내준 그녀에게 너무 고마웠는데 내가 비록 해줄 수 있는 건 리액션뿐이라 맛있다는 말과 함께 진심의 미간을 찌푸렸다.

일주일 전 나와 함께 음식점에서 나베를 먹었음에도 집에서 나베를 해줄 만큼 그녀의 취향은 확고하다. 디저트 중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피스타치오인데 만날 때마다 피스타치오만 찾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가끔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에 나도 관심이 가곤 한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나는 그녀가 없어도 디저트로 피스타치오를 찾기 시작했다.

그 맛있는 굴도 접시 세 판을 비워내자 슬슬 물려왔다. 옆에 있던 나베도 졸이면서 먹었더니 국물이 처음보다 짰다. 그제야 우리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배부른 식사 뒤에도 디저트를 챙겨 먹는 그녀의 식습관 덕에 망원동 케이크 디저트 집에서 미리 푸딩과 케이크를 배달시켜놓았다. 그녀의 친구가 얼마 전 먹고 난 뒤 너무 맛있어 두 개나 추가로 주문해 집으로 포장해 갔다는 '호지밤 크럼블 푸딩'과 언제나 그녀가 좋아하는 피스타치오 케이크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초코바나나 케이크로 식탁을 갈아 치웠다. 친구를 두둔하며 맛있다고 강조한 '호지밤 크럼블 푸딩'은 부드러운 밤과 위에 뿌려진 견과류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내 입안을 밤 향으로 가득 메웠다. 나도 모르게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디저트를 좋아하는 그녀를 만나면 나는 벌써 그날 하루의 반은 행복으로 찬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그를 만난 뒤부터 새로운 맛을 보게 되고 새로운 곳을 가게 된다.

남은 굴을 손질하며 조용히 대화를 나눈다. 스위스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와 피르스트의 절경을 보며 자전거를 타고 내려왔던 이야기. 그리고 다시 한번 여행을 함께 했던 후쿠오카. 후쿠오카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인터넷이 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자신을 두려움 없이 내보이는 용기와 그가 내게 건네준 솔직함에 나는 그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케이크를 두 입 정도 남기고 더 이상 못 먹겠다며 널브러져 있던 내게 그녀는 한마디 툭 던진다.

“치킨은 아침에 먹어도 맛있지 않아?”

먹는 양을 결코 따라가지 못하는 나는 그 말에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장벽을 느꼈다. 그런 모습이 너무 그녀 다워서 웃음이 났다.

내일 집 갈 때 챙겨가라며 그가 이것저것 챙겨준다. 자기 피부톤에 맞지 않는 아이섀도와 립스틱. 그리고 꿀차와 아보카도. 아보카도를 두 개 챙겨주려다 비싸다고 하나만 챙겨준다. 이젠 아보카도같이 비싼 야채도 줄 만큼 그녀가 내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걸 지켜보는 게 좋다. 그 이후로 그녀는 집을 비웠을 때 고양이 두 마리의 밥과 맛동산 캐는 것(배설물 처리)을 내게 부탁하고 그녀의 집에서 내가 탐내던 물건을 집으로 돌아간 뒤 내 집주소로 슬그머니 시켜주곤 한다. 그럼 나는 우리 집에 왔을 때 어떤 요리를 해줄까, 그녀에게 필요한 건 뭘까 생각한다. 우정은 서로를 좋아할 때 더 좋은 사랑의 모양을 갖춘다.

그녀와 나는 디저트와 맛집으로 채팅방을 채우며 다음 만남에는 어떤 걸 먹을지 정한다. 이를테면 카이막 프렌치토스트, 일본식 오뎅바, 된장 베이스 모츠나베, 내가 좋아하는 냉우동, 그녀가 사족을 못 쓰는 피스타치오와 구황작물 디저트 같은 것들로. 그녀와 함께 나는 또 어떤 새로운 맛을 맛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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