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가는 뒷모습

by 채진아

아침 모닝콜이 울린다. 옆에서 그가 뒤척거리며 일어난다. 나는 정신이 깨어 있지만 무거운 눈꺼풀을 뜰 수 없어 자는 척을 한다. 그와 함께 생활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내가 부르는 그의 애칭은 ‘구름이’이다. 종종 글에서 그는 등장할 것이다. 그가 블라인드를 내리고 안방 문을 닫은 뒤 거실로 나가 내가 어제 냉동실에서 미리 꺼내 놓은 팥떡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소리가 들린다. 어제는 진짜 일찍 자자고 했는데 둘이 누워있는 침대에서는 도무지 일찍 잠이 들 수 없다. 하루를 일하느라 모든 걸 소진한 날에는 더 잠들기 싫다. 어머님과 아버님을 모실 집들이는 언제 할지, 메뉴는 뭐로 정할지를 얘기하다가 내가 구름이 허벅지에 다리를 올린다. 그의 신체 중 가장 튼튼하고 두꺼운 다리는 베개보다 따뜻하고 보드라워서 자꾸만 다리를 올리게 된다. 그러면 구름이의 육중한 오른쪽 다리가 내 허벅지로 올라오고 내 몸이 무거움을 감지할 때 나는 말한다.

“자,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내리는 거야. 하나, 둘, 셋!”

내가 다리를 내리는 척하다가 다시 다리를 올리며 킥킥댄다. 잠을 자야 하는데 침대 위에서 그렇게 삼십 분이 훌쩍 가버린다. 그와 둘이 밤마다 이야기를 나눌 때면 꼭 다른 세계에 잠겨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오늘 하루 가장 기뻤던 일과 가장 속상했던 일을 털어놓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가장 나른한 평온함을 느낀다. 잠들지 못하고 그의 다리에 내 발을 비비적댄다. 차가운 발을 녹이면 그렇게 따뜻하고 좋을 수 없다. 내 긴 발톱 때문에 아프다고 말하면서도 나를 내치지 않는 존재가 귀여워 나는 계속 발을 갖다 댄다.

그와 함께하면서 나를 둘러싼 주변의 풍경이 조금씩 바뀐다. 아날로그는 디지털화되었다. 원격으로 스위치를 자동으로 눌러주는 스위치 봇으로 집에 있지 않아도 외출하는 동안 앱으로 컴퓨터를 켤 수 있고 아침을 먹으면서 날씨와 오늘의 뉴스를 들려주는 AI 구글 스피커. 언제는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를 함께 보다가 내가 말했다.

“현빈 아내가 누구였지?”

“헤이, 구글. 현빈 배우자.”

구름이의 말에 구글 스피커는 답한다. “현빈은 2022년에 결혼했고 배우자는 손예진입니다.” 디지털로 제어되는 생활 속에서 나는 삶의 질이 올라가는 경험을 여러 번 맛보았다. 그의 손길은 집 안 구석구석 닿아 있다. 무심코 냉동고를 열 때면 얼음 통에는 깨끗하게 각 잡힌 얼음이 가득 차 있다. 얼음 통에 가득 찬 얼음을 보고 있으면 내게는 없는 꼼꼼함과 치밀함에 감탄을 내뱉었는데 평소 얼음을 얼려도 부족한 얼음을 보며 얼음 정수기를 찾던 내게 그의 부지런함은 내가 게으름을 피웠다는 것을 입증했다. 배터리가 유독 빨리 닳아버리는 내 휴대폰은 만땅으로 채워져 있고 휴대폰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가 미리미리 챙겨둔다. 나도 어찌할 수 없는 느슨함과 빈틈은 그의 세심함과 돌봄으로 메꿔진다.


가까이 생활하면서 내가 몰랐던 점과 그의 습관과 행동이 더욱 눈에 띈다. 나는 아직 완전히 그를 아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새로 알게 된 그의 취향을 살핀다.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에 예민한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에 대해. 자동으로 뭔가 작동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 그가 소리에 민감하다는 것, 아침잠이 없어 주말에도 일곱 시에 일어나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는 것, 하루에 여섯 시간만 자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무언가 계산할 때 뒤가 딱 떨어지게 숫자를 맞추는 걸 좋아한다는 것, 잠들기 전 한 번은 나를 꼭 끌어안고 잠든다는 것.

반대로 그가 말하는 나의 일상과 습관을 이렇다. 헤드 샤워기에서 일반 물줄기로 바꾸지 않는다는 걸 자주 깜빡한다는 것, 평소 애플 워치를 어딘가에 흘리고 다닌다는 것, 수면이 일곱 시간 이상은 되어야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그의 성향과 기질에 반대되는 것들이며 그가 애써 나를 이해하고 있는 점이기도 했다. 그 모든 다른 점들을 우리는 서서히 적응해 나갔다. 그는 주말에도 울리는 알람을 껐고 아침 아홉 시에 일어나는 나를 옆에서 먼저 깨우지 않는다. 내가 설거지하고 있으면 그는 옆에서 청소기를 밀고 나는 그가 해줬으면 하는 것들을 무리해서 보채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해낸다.

둘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리는 언어를 더 닮게 되었다. 다른 이 앞에서 말하기 창피해 죽을지도 모르는 말투라든지 유치함과 애칭이 그 앞에서만 툭툭 튀어나온다. 눈을 마주치고 웃는 일이 더 많아졌다는 것. 나는 그의 귀여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모습이라던가 아침에 설거지하듯 밥을 깨끗이 먹는 모습, 먼저 잠들기 전 비몽사몽인 정신으로 내게 뽀뽀를 하고 침대로 기어가는 뒷모습 같은 것들이다. 그 또한 어디가 귀여운지도 모르는 내 모습을 보고 귀엽다며 꼭 안아주곤 한다. 그럼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기분이 좋아진다. 그가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더욱 선명한 사람이 된다. 때론 나보다 나에 대해 잘 얘기해 주는 사람,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 사람. 나를 웃게 만드는 사람.

많이 보지 못했을 때보다 그가 좋아졌다. 앞으로 머지않을 미래의 그를 아직 잘 모르겠다. 어떤 모습으로 그는 내게 다가올까. 우리는 얼마큼 서로에게 배려해 줄 수 있을지.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을 주는 데에 더 집중할 수 있을지. 그와 함께 지내면서 나는 더 할 말이 많아졌다. 그 사람에 대해 쓰고 싶어지는 말이 많아졌다는 건 사랑의 또 다른 모양이다. 글을 쓰는 존재가 자꾸만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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