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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Feb 12. 2023

사장님! 저희 싸우는 거 아니에요.

나 잡아봐라~ 좋은 말로 할 때 먼저 들어가라

어느 순간부터 첫 번째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생긴 것 같다.


처음으로 카페에 들어가는 일

처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일

첫 번째로 택배를 뜯는 일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갑자기 나를 향해 쏟아지는 시선들이 부담스러워졌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안에 숨어 있던 존재가 나를 향해 달려올 것 같은 막연한 공포심 같은 것들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택배도 나에겐 그러했다. 택배에 붙여진 개봉 후 교환 및 환불 불가라는 스티커가 나에게 경고 문구를 보내는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 택배를 가져와 남편에게 건네주곤 했다.


"이 물건이  비록 내 것이긴 하지만 네가 열어줘"


처음에는 그래 라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던 남자가 점점 "왜?" "네가 하면 안 돼?"라는 말을 하더니, 어느 날은 택배를 열지도 않고 내가 열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배달 왔던 그대로의 상태를 방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상태 또한 덜 더러운 사람이 더러운 사람이 벌려둔 일들을 참지 못해 치우는 것처럼 여지없이 남편의 몫이 되었다.


결국 자신의 몫으로 쌓인 감정들이 점점 남편에게 반항심의 싹을 트게 하고 말았다. 버젓이 현관문을 잘 열던 사람이 왜 자신이 번호키를 눌러야 하냐고 따져 묻기도 하고, 카페에 들어갈 때도 먼저 들어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다음부터 다음에는 내가 한다는 망각의 마법 같은 말로 그를 타이르곤 했는데, 그러다가 결국 사고가 나고 말았다. 


카페 사장님의 말에 의하면 차를 타고 다정히 손을 잡고 카페로 향하던 부부가 갑자기 서로를 밀치더니 꼬리 잡기를 하듯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고 했다. 놀란 사장님은 우리가 싸우는 줄 알고 문 밖으로 뛰쳐나와 우리 부부에게 소리쳤다.


"아니 추운데 들어오시지 왜 밖에서 그러고 계세요?"


나는 사장님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나는 나랑 꼬리 잡기를 하다 숨이 차 오른 남편을 향해 입을 악물고 조용히 말했다.


"그르니까... 먼저 들어가라고 했잖아... 창피하게..."

"나도 싫어 나도 이제 먼저 싫어 너랑 다니니까 나도 이제 먼저 들어가는 게 싫어졌어"


나는 조용히 남편의 옆구리를 비틀며 카페 입구로 끌고 들어갔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카페 사장님의 오해를 풀어 들일 겸 어색하게 말을 먼저 꺼냈다.


"아 사장님 저희 싸운 게 아니라.. 누가 먼저 들어가냐로 서로를 밀어주고 있었답니다 하하하하"

"아 그러셨다면 다행이네요. 저는 다정하게 들어오던 손님이 갑자기 요 앞에서 싸우길래 놀래서.."

"하하하하하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군요 하하하하"


어색한 웃음과 조용한 카페가 더욱 나를 민망하게 만들었고, 오늘도 강압적인 힘에 의해 먼저 들어오고 만 남편 키가주니의 입은 대자로 나와 있었다. 그의 표정을 읽은 듯 보이는 카페 사장님은 태연하게 커피 2잔과 조각케이크를 계산하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그건 그렇고 두 분은 항상 보면 여자와 남자가 바뀐 것 같아요. 카페 나갈 때도 보통은 남자손님이 먼저 나가자 하고 여자 손님이 더 있자라고 하는데.. 보면 항상 여자 손님분이 나가자고 일어서시더라고요"


그 말에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키가 주니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맞아요 이런 카페를 오면 느긋이 앉아서 전경도 바라보고 밀린 대화를 하고 하는 건데 맨날 앉자마자 가자고 하고 카페에 들어가는 건 맨날 나보고 먼저 들어가라고 하고.. 에휴"


그의 한숨에 많은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의 처연한 모습에 마음이 동한 카페 사장님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좀 잘해주세요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주시고요"


마치 여자끼리의 연대가 성별은 다르지만 서로에게 생긴듯한 그들의 공격에 나는 대답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떡이는 척하며 우리의 고정자리에 가서 앉았다. 몇 분 후 한참 카페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의 편이 생긴 것 같은 느낌에 콧노래를 부르고 나에게 걸어오는 남편 키가주니가 매우 얄미워 보였다. 그래서 그가 테이블에 커피를 놓자마자 얼른 코로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야 집에 가자 다 마셨다."


남편이 그런 나를 째려보며 조용히 외쳤다.

"장모님.. 개봉 후 교환 및 환불... 불가...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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