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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Mar 09. 2023

여보! 내 분노를 끌어당기지는 마

더 글로리 +1

시작은 좋은 의미였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원하는 그 상황을 직접 경험해 보아야 그 일이 끌어당길 수 있다는 취지였다. 분명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상황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띠리리리링‘


핸드폰에 분명하게 키가주니라고 찍힌 번호를 보고 전화를 받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내가 아는 목소리가 아닌 약간 비음 섞인 여자를 어설프게 성대모사하는 남자의 목소리이었다.


"안녕하세요 키가 주니 출판사인데요"

"아씨... 그런데요?"

"야초툰 작가님이시죠? 저희 출판사에 작가님의 글을 보고 연락드렸는데 언제 시간이 가능하실까요?"

"당신이 퇴근할 때 시간이 아주 괜찮을 것 같은데요?"

"아......"


잦은 장난 전화로 좋은 일을 끌어당기기는커녕 분노를 끌어당기는 남편은 연신 자신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며 그래도 너무 자주 한건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그가 점점 나의 진심을 놀림거리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남편이 가고 싶은 버스 회사에 지원을 하고 연락을 기다리는 일이 생겼다. 물론 그는 그동안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나의 분노를 깨닫게 하기 위해 남편이 낮잠 자는 시간에 맞춰서 전화를 걸었다.


"여.. 보세요?"


분명 남편의 전화기에는 이 전화 받지 마눌이 찍혀있었겠지만 잠을 자던 남편은 얼떨결에 울리는 전화 소리에 눈을 뜨지 못한 채 전화를 받은 것 같아 보였다.


 “여..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지원자 키가 주니 님이신가요? 여기 키가 주니님이 지원한 버스 회사인데요 저희 회사에 지원서를 넣어주셔서 이렇게 전화드렸어요"

".... 음.. 네?"

순간 너무 전문적인 말투와 목소리에 굳어버린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아씨"라는 말을 들려왔다. 아마도 그는 까먹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아내가 특급 호텔 전화 업무만 10년 넘게 일해온 사실을 말이다. 아직은 얼떨떨 해 하는 남편에게 나는 마지막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나의 복수는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주니야! 너 내일 일 나가지? 내일 나 혼자 더 글로리 다 보고 결과만 너에게 말해줄 거야!"

"아씨 안 돼!!! 같이 봐!"


뚜우뚜우…


더 이상 오늘은 남편 키가주니가 나의 분노를 끌어당기지 않기를 바라며 더 글로리를 기다려본다.

드디어 내일이다!
나 너무 기대돼 연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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