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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Mar 10. 2023

엄마와 더 글로리 했던 추억 떠올려보기

중요한건 깎이지 않는 자존심


오늘은 구름이 잔뜩 껴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날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몸은 축 쳐지고 걸어서 5분 거리의 분식점도 가기 귀찮아 배달을 시켰다. 이렇게 무력해진 나와 달리 한 없이 밝게 빛나던 나도 있었는데 라며 오래된 추억하나를 꺼내본다.



그날은 호텔 직원이라면 누구나 기다리는 일 년에 딱 하루 있는 “Employee of the day 직원들을 위한 날”이었다.


12월 10일


매년 12월 10일은 전 세계 같은 브랜드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서로를 격려하거나 축하하는 날이었고, 이 날 되면 직원 식당들은 스페셜 뷔페로 가득 찼고, 직원들의 식판은 마치 경쟁이라는 걸 하듯이 밑반찬들이 피사의 사탑으로 세워지는 날이었다. 그리고 경력을 쌓아갈수록 그 스킬은 더 견고해졌다.


"식빵을 단단하게 바닥을 깔고 그 위에 음식의 피자를 김밥으로 지지대를 만들어야 하지"


또 저녁에는 연회장에서 행운의 번호 뽑기로 무료 호텔 숙박권 C나 L로 시작하는 명품백, 해외 항공권을 뽑을 수 있는 행사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물론 운이 좋았던 나는 매년 그 상품들이 허무하게 내 앞, 내 옆에서 신기루처럼 나를 스쳐 지나갔는 걸 보기만 했다. 7년 내내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 날을 기다렸던 건 바로 '호텔 도전 골든벨'이라는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우리 예약 부서는 호텔의 정보 센터라고 불리며 프런트에서 신입을 교육할 때 “모르는 게 있으면 0번을 눌러”라는 매뉴얼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당연히 매년 그 골든벨에 마치 우리 부서 이름이 이미 박혀 있는 것처럼, 타 부서에도 그 우승 상장이 우리 부서가 새로 추가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고, 상금 300 원은 당연하게 우리 부서 회식을 위해 쓰였다. 나는 우리 부서가 1등이라는 걸 증명함과 동시에 소고기 회식을 할 수 있는 골든벨 행사를 좋아했다. 하지만 몇몇 직원들 중에는 1등보다는 전자제품을 주는 4등 5등을 더 선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이 다가오자 인사부에서 늘 그렇듯 도전 호텔 골든벨 안내 문구와 함께 새로운 안내 메시지를 보내왔다.

제목: 우리 모두 Winner가 될 수 있습니다.
12월 10일 오전 11시 장소 : 1층 대강당
*이번 해에는 타 부서와의 형평성을 위해서 3번의 패자부활전이 열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 패자부활전에 나올 문제는 비밀입니다.  

패자부활전이라는 단어는 우리 부서에게는 불필요한 단어였다. 우리 손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도전 골든벨 예상 문제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문제집에는 호텔 기본 정보부터 식음료 및 주변 관광지 및 식품위생법까지 나와 있는 백과사전 한 권 정도의 분량이었는데 매년 새로운 문제가 추가되어 점점 더 두꺼워졌다. 그 만큼 적중률은 더 올라갔다.


골든 벨 행사에 우리 부서 직원 전원이 출전할 수 없었기에 부서 대표선수의 인원을 정해졌다.  5 (사원 2 주임 2 대리 1) 대리 1명이라는 문구에 설마 나겠어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잠시 후 대리 1명 옆에 과장님이 조그맣게 내 이름이 적었다. 물론 이유는 막내 대리라는 이유였지만, 이 시합에서 질 경우를 대비해 강제로 꼬리칸 책임자를 넣는 느낌이었다. 싸움은 구경할 때가 재밌는 법인데 막상 얼떨결에 참가하게 되자 흥미를 상실했다. 그래도 어차피 신입들이 잘할 텐데 너스레를 떨며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말했다.



대망의 골든벨 당일 11시 대강당에는 각 부서에서 50명의 선출된 사람들이 모두 방석에 앉아 화이트보드를 들고 있었다. 우리 부서 대표 선수들도 내가 주도하에 파이팅을 외치며 비장하게 자리에 앉았다. 대표자 50명 주변에 호텔 임원들 및 부서장들이 엄. 근. 진. 표정으로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행사가 시작되었고 역시 나는 얼마 못 가 떨어지고 말았다. 터덜터덜 뒤에 탈락자 자리에 가는데, 마침 부장님이 나를 향해 말했다.  


“직원들의 모범을 보여줄 사람이 쯧쯧쯧”     


나는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한 자리에 앉아서 다른 직원들을 응원했다. 그리고 연이어 타 부서에서 탈락자들이 우수수 나오자 패자 부활전 문제가 시작되었다.


Stage 1 패자 부활전 문제

차를 발로 차면?

 놀라유!!!”


Stage 2 패자 부활전 문제

아몬드가 죽으면?

다이! 아몬드!!”


이상하게 난센스 문제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두 문제 다 내가 맞힐 수 없는 넘사벽의 문제들이었고 그렇게 패자 부활전으로 살아남은 사람들도 어차피 다음 문제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어느덧 우리 부서 주임 1명과 신입 1명이 최후의 2인으로 다행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안도하며 어차피 우리 부서가 우승이구나 라는 생각에 가시방석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인사부 팀장은 이번 해는 우리 부서가 받으면 안 된다는 총지배인의 지령을 받은 것처럼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제 마지막 패자 부활전 문제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해도 역시 예약실 직원들이 남았네요

여기서 제안드립니다!! 이 문제로 마지막 우승자를 정하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 “


갑자기 남은 최후의 2인 이외에도 다른 부서에도 우승의 기회가 생겼다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모두들 끝난 줄 알았던 영화에 쿠키 영상이 등장하는 것처럼 환호했다. ‘아 그래서 인사부에서 그런 메일을...’ 그들의 큰 그림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자 마지막 문제입니다! 엄마가 길을 잃었어요를 네 글자로 말해보세요! “


갑자기 그때 행사장이 고요해짐이 느꼈다. 그리고 불현듯 머릿속에서 어떤 답 하나가 떠올랐다. 사무실로 가려고 일어났던 나는 뒤를 돌아 손을 번쩍 들면서 동시에 얼굴이 터질 것 같은 괴성의 소리 질렀다.


“맘마! 미아!!”


인사 팀장은 당황한 듯 머뭇거리며 총지배인의 눈치를 보더니 대답했다.


“어? 어... 맞습니다. 이번 해 우승자는 맘마미아!! 아니 허대리!!”


다들 이번 해 우승자는 맘마미아라는 말에 빵 터졌고 나는 얼마나 크게 소리 질렀는지 얼굴이 벌겋게 뻥 터졌다.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속에 무거운 응어리를 토해내듯 소리를 질렀던 나 자신이 시간이 지나 멋있게 포장되어 리본을 매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분명 그때는 창피했지만 시간이 지나 글로리 한 추억들이 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남편과의 추억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호텔 이야기를 더 읽고 싶다면?!

https://brunch.co.kr/brunchbook/the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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