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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May 04. 2023

남편에게 노래 불러주다가 눈팅 맞은 사연

내 남편은 인공지능 키가 주니

남편과 산책을 하다 보면 그의 불평불만을 다 들어줘야 하는 단점이 있다. 그와 걷는 길에는 도망갈 곳이 없기에 끝없이 쏟아지는 이야기를 듣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특히나 야초 산책 후에 마트까지 가야 했기 때문에 장거리 귀 고문이 예상되었다.

 

"저 차는 신호 안 지키고 지나갔어"

"저 여자분은 다리가 춥겠다"

"어? 60-5번 지나간다 내가 아는 주니인가? 주나!!"


오늘도 어김없이 사람이 옆에 있든 말든 쉴 새 없이 떠드는 그를 보는데 갑자기 그에게 어울리는 노래가 떠올랐다. 때 마침 남편 키가 주니가 입술을 뻐끔뻐끔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있잖아 저 사람 말이야"

"이러쿵저러쿵"

"오늘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뜨거운 커피 마셔"

"미주알고주알"

"응?"

"상관 말고 그냥 니 갈 길 가!“

"왱!!"

"네가 쟤로 살아봤냐?"

"아니..."

"아니잖아 그럼 상관 말고 그냥 니 갈 길 가!“

"아이스커피를 마시면 시원하고 좋을 텐데"

"아니니이 그건 니 생각이고"


<장기하의 그건 니 생각이고>


이 노래의 작곡가는 마치 내 남편과 산책을 같이 한 것처럼 모든 가사가 상황에 딱 들어맞았다. 나의 노래에 당황한 키가 주니도 자신이 사람들 쳐다보며 이러쿵저러쿵하는 것 같다며 얼굴이 벌게져서 순식간에 마트로 쏙 들어갔다.


간신히 수다쟁이 키가주니를 물리친 나는 당당하게 야초를 들고 마트 밖에서 기다리는데…. 락토프리 우유만 사러 들어간 키가 주니가 20분째 나오질 않았다.


순간 나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왜 그가 굳이 야초 산책 한 후에 마트를 가자고 했는지, 야초를 데려오면 마트에 들어가지 못하고 나는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라는 생각이 스치나 소름이 돋았다.


"당했다!"


장바구니 가득 군것질거리를 채우고 나오는 키가 주니가 승리의 콧노래를 부르며 나왔다.


"이러쿵저러쿵 미주알고주알 상관 말고 그냥 니 갈길 가 하하하하하 이 노래 은근 중독된다."

"아...."

"니 마 내로 살아봐았나? 부산버전 룰루랄라 아따 거시기 워메 어쩐다냐? 전라도 버전 히히히 “

아 괜히 노래 부르다가
 눈팅 맞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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