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잔혹 동화
그렇게 나의 퇴사가 결정되었고 퇴사일도 한 달 뒤로 결정되었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착착 진행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흐르자 나는 나를 붙잡지 않는 회사에 대해서 약간의 서운함이 생겼다.
6년 넘게 이 호텔에서 내가 쌓은 나의 경력들이 손안에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이 문뜩문뜩 나를 덮쳤다.
‘이곳을 그만두고 다른 호텔에 취직을 못하면 어떡하지?’
‘이대로 경단녀가 되는 것인가?‘
‘너무 준비도 안 하고 그만둔다고 말한 건 아닌가?’
라는 불안한 생각들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그런 불안들은 내가 이 호텔에 6년 일해서 오는 편안함들에서 이제는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는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공포감까지 몰고 왔다.
"이제 더 이상 “어” 하면 “아”가 아니라 “어 저기 그게 이렇게 가능할까요? “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들을 떠올리며 새 호텔에서 신입 경력직으로서 겪을 모진 풍파를 상상에 상상을 더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상상 중에 제일 싫었던 걸 뽑자면
이제는 내가 면접관이 아닌 면접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들이었다. 어쩌면 그 이유는 내가 너무 면접장의 풍경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였다.
*면접관으로서 나는 어떠했는가?
면접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력서를 읽고 가지 않은 적이 많았다.
그리고 어차피 면접장에서 물어보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자기소개를 시켜놓고 그 자리에서 대놓고 이력서를 읽은 적도 있었다.
* 나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봤는가?
‘덜덜덜’ 떨면서 답변을 하는 지원자 모습은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고 적고 또 너무 ‘술술술’ 대답하는 모습에는 답변을 외워서 온 것 같음이라는 평가도 적은 적도 있었다. 마치 ‘어쩌라고 내 맘이지’ 같은 평가들로 평가지를 빼곡히 채웠다.
*면접자에게 묻는 질문은 어떠했는가?
호텔에는 그 브랜드에 맞는 질문들이 거의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지원자에 특성에 따라 다르게 질문한다기보다는 면접자 질문 공용 폴더에 저장되어 있는 질문지를 프린트해서 물어보곤 했다.
질문지
Q. 자기소개를 해보세요
Q. 우리 호텔에는 어떻게 지원하게 되셨나요?
Q. 본인의 성격의 장단점을 설명해 보세요
Q. 살아오면서 갈등을 극복해본 적이 있나요?
->어떻게 해결하셨죠?
Q. 친구와 다툼이 있었을 때나 아르바이트를 할 때 안 맞는 친구와 일 해본 경험이 있나요?
->어떻게 해결하셨죠?
Q. 우리 부서는 3교대 근무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괜찮으신가요?
Q. 본인의 의견이 부서의 의견과 충돌할 때 어떻게 해결하시겠어요?
질문의 대부분은 부서 내에 마찰이 있었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지 물어보는 것 같지만 결국은 15명의 시누이들을 어떻게 잘 모실 수 있는지 파악하는 문제였다.
그래도 우리 호텔만의 특이한 질문이 있었다면,
김 과장은 특히 면접을 볼 때 우리 호텔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는지를 꼭 물어봤다.
나중에 그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니 우리는 어차피 호텔의 상품을 잘 파는 직원을 뽑는 것인데 미리 그 상품을 공부해온 직원들에게 플러스를 주는 건 당연하지 않냐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어차피 호텔은 이윤 추구가 우선이며 이윤을 발생하게 하기 위해서는 객실의 상품을 잘 팔 것 같은 직원을 뽑아야 했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특급호텔에 예약실 면접을 준비한다면 그 호텔 홈페이지로 들어가 패키지 상품들은 어떤 상품이 판매되고 있고 그 상품들의 구성이 가족을 위한 것인지 연인 아니면 위한 것인지를 미리 파악하고 간다면 면접에 플러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듯이 이렇게 많은 TIP을 알고 있는 나도
본인은 면접자로서 면접을 본지 어언 6년이나 지난 관계로 남편이 진행하는 모의 면접시험에서조차 나에게 자기소개를 영어로 해보라는 소리에 소리 없이 입만 뻐금 뻐금할 수밖에 없었기에 비장하게 퇴사한다 말하고 감히 언감생심 다른 호텔에 이력서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눈치챈 듯이 내 등 뒤로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김 과장이 커피 한잔 하자고 나를 불러낸 것이다.
“다른 호텔은 지원은 해봤어?”
“아... 아.. 어니!”
갑작스러운 공격에 방어를 준비하지 못한 나는 당황스럽게 주춤주춤 뒷걸음을 치고 말았다.
“아 그래?”
김 과장은 의미심장하게 웃고는
갑자기 실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 혹시 인어공주가 왜 사람이 됐는지 알아?”
라고 생뚱맞은 질문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기억을 더듬어보면서 대답했다.
“그 왕자님 만나려고 마녀한테 목소리 팔고 인간이 되었잖아!”
“아니야!”
“어? 그럼 뭔데?”
“살이 너무 쪄서 지느러미 치마의 후크가 안 잠겼던 거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두발로 걸을 수밖에 없었던 거야”
“뭐?”
다소 황당한 대답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뭐래? 하하하 그럼 목소리는 왜 안 나오는데?”
“어제 노래방에서 과음을 한 거야!
너도 알지? 상사 욕하면 부르는 노래는 ‘소찬휘에 TEARS’만 한 게 없잖아! “
“그게 무슨..”
“그러니까 너 자신이 변해서 후크가 안 잠기게 되었다고 해도 굳이 너를 옷에 너를 맞출 필요는 없다는 거야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있으니까 너 혹시 예약실 말고 레베뉴 부서(수익 관리부) 애널리스트로 일해보는 건 어때 마침 거기 자리가 났다는데? 그만두기 전에 일을 배워두는 거지 어차피 예약실의 꽃은 레베뉴 부서잖아! 총지배인이 될 수 있는 지름길 말이야!”
*레베뉴 (수익 관리부서)-호텔 객실 요금 및 예산 책정 그리고 매달 매출 예상을 해서 그에 따른 호텔 고정비용을 정한다. 총지배인 직속 보고 부서로 예약실에서 계속 일하면 예약실 과장이나, 레베뉴 쪽으로 부서 이동해서 임원까지 될 수 있었다.
역시 김 과장의 10년 넘은 경력은 괜히 쌓인 게 아니었다. 그녀는 그동안의 경험상 가만히 기다렸던 것이다.
내가 마음이 가장 약해질 때를! 그리고 달콤한 꿀을 가득 바늘에 발라서 콕콕 가장 약해진 부분을 찌른 것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그만둘 거 경력 한 줄 더 써가라는 그 제안에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비록 그 부서가 사람이 들어가면 미쳐서 나오거나 잠수를 타거나 해서 1년을 버틸 수 없는 자리라고 해도 말이다.
나는 우물에 물이 넘쳐서 밖에 나오게 되었지만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