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해서….
“주연 씨! 이 영상을 먼저 확인해 주시겠어요?"
긴 침묵 뒤 방안에 울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크지 않은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방안을 가득 메운다.
여기 어두컴컴한 골방 안 두 명의 여자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 둘 사이에 조명은 깜빡깜빡 금방이라도 나갈 것처럼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으며, 경찰로 보이는 한 여자는 검은 펜을 딸칵딸칵 눌러대며 종이에 뭔가를 적고 있었고, 반대편에 앉은 '주연'이라고 불리던 여자의 표정을 유심히 무언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녀는' 제발 내 동생은 아닐 거야. 아니 아니어야 해! ‘라고 외치는 듯 갈라진 입술을 뻐끔뻐끔 거리며 갈라진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고, 그녀의 눈동자는 불안한 듯 정처 없이 서성이다 이제 겨우 마음의 준비가 된 듯 겨우 경찰이 틀어준 영상을 곁눈질로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실눈에 얼핏 비치는 영상 속 늘어진 노란색 반팔에 파란색 운동복 바지를 입고 터덜터덜 금빛 호수공원 향하는 동생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동생 “늘”이 분명했다.
영상 속 시간은 9월 9일 오후 8시 50분
그리고 그 시간 대략 한 시간 전인 오후 7시 50분
주연은 동생에게 모진 말들을 쏟아부었다.
'그 고춧가루가 뭐라고!'
9월 9일 오후 7시 20분
주연에게 그날은 유난히 힘든 하루였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손님들의 컴플레인이 끝없이 쏟아졌고, 그들이 뱉는 말이 마치 자신을 비난하는 것 같은 가시 돋친 말들이 하루 종일 쿡쿡 "주연"의 마음을 연신 찔러댔다.
그래서였을까?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밥그릇에 붙어있는 몇 개의 고춧가루가 오늘 자신에게 난 상처들에 뿌려진 것처럼 아프고 저리게 느껴진 게 말이다.
"야 "늘"! 너 설거지 똑바로 안 해?"
새우잠을 자고 있던 "늘"은 그 말에 눈을 비비며 포근했던 이불에서 겨우 일어나 대답했다.
"아.. 언제... 왔어?"
"내가 언제까지 동생 뒤치다꺼리를 해야 해? 너도 이제 나이 서른이면 니 밥그릇은 네가 직접 차릴 때가 되지 않았니? 언젠간 '빛날 ‘ 대 작가님아!"
"아... 어.. 미안.."
"그놈의 미안 미안 내가 언제까지 너를 챙겨야 해? 나도 첫째로 태어나기 싫었다고! 첫째는 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첫째는 동생을 잘 챙겨야 한다 그럼 나는 나는.. 누가 챙겨줘!"
라고 말하며 설거지하다만 두 손을 얼굴에 파묻고 주연은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눈물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 주연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늘"은 위로해주려고 주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혹시..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하지만 주연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에게 다가온 "늘"의 얼굴에서 사람들의 욕받이 '조연'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불현듯 분노가 치밀었다.
"니 얼굴 꼴도 보기도 싫어 당장 나가! 내 집에서!!"
사실 그 말은 "늘"이 아닌 자신에게 쏟아붓고 싶은 말이었지만, 자신에게가 아닌 동생에게 퍼붓고 말았고, 그런 주연의 모습은 동생인 “늘”에게는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이불 옆에 놓여 있던 옷을 입으며 그대로 슬리퍼를 끌며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주연도 그런 동생이 평소처럼 1시간 후면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날 이후 한 달째 그리고 지금까지 “늘”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다음날 주연은 퇴근하고 근처 경찰에 달려가 동생 실종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다 큰 성인이니 실종이 아닌 가출일 거라며 조금만 기다려 보자고 했고, 그렇게 기다려 보자는 시간이 하루 이틀 한 달이 지났고 자신의 장기 하나하나가 죄책감에 타들어가 거의 남지 않은 느낌이 들 때쯤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경찰은 아직은 동생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실종 당시 CCTV에 찍힌 영상을 찾았다고 했다.
그 전화를 받자마자 주연은 경찰서에 뛰어갔고, 그 영상 속에 주연이 찾고 있었던 그날의 "늘"이 있었다. 부인하고 싶었지만 분명 "늘"의 뒷모습이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자신이 그녀의 '그늘'이 되어 주겠다고 외치던 동생이 쓸쓸하게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 모습에 주연은 그날 자신이 동생에게 모질게 내뱉었던 그 말들이 자꾸 떠올라 자책의 눈물이 눈에 가득 차올랐다. 그리고 그 눈물이 눈에 차오르는 것과 동시에 CCTV 화면도 검은색 줄이 지지직대더니 꺼져버렸다. 꺼져버린 화면이 동생의 미래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화면을 응시하고 있던 주연에게 영상을 같이 보던 경찰관이 주연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것이 저희가 찾은 동생분의 마지막 영상입니다. 그리고 CCTV에 이런 화면이 잡혔는데... 그림자뿐이라 판독이 힘드시겠지만 혹시 동생분이 맞으실까요? 맞다면... 저희가 저 물속을 수색해 봐야 할 것 같아서요 “
"저 아래 놓인 건 동생의 옷이 맞는데.... 저 그림자는...? “
CCTV 속 그림자는 마치 현실세계를 신나서 탈출하는 슈퍼맨의 모습과 같이 한쪽 팔을 접고 다른 한쪽 팔을 쭉 뻗으며 물속으로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는 모습이 비쳤다, "주연"은 여러 차례 그 장면을 넘겨봤지만 그 그림자가 "늘"의 것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다만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에 주연은 경찰에게 금빛 호수 공원 호숫가를 남김없이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고 결국 동생 "늘"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주연이 본 자살을 하는 것인지 날아오르는 것인지 모르는 그림자만이 주연의 기억의 잔상에 남겨졌을 뿐이었다.
‘내 동생은 정말 자살한 것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늘 어두워 보이긴 했어도 작가라는 꿈이 있는 아이였는데...’
오늘도 주연은 경찰서에서는 '계속 수사 중이고 동생은 아직 오리무중'이라는 뉘앙스의 대답을 듣고는 진이 빠져 서 자신의 집 앞 현관문도 겨우 밀고 들어갔는데 자신의 우편함에 꽂혀있는 검은색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보내는 이: 김하늘
받는 이 : 김주연
이라고 하얀 글씨로 써져 있었다.'김 하늘'이라는 이름이 왠지 낯설지가 않은 주연은 황급히 그 검은색 봉투를 찢어 열었고 그 봉투 안에는 그토록 주연이가 찾고 있던 어떤 이의 글씨체로 시작했다.
안녕 주연!~ 나 동생 "늘"이야!
아니 이제는 "김 하늘"이라고 해야겠다.
그 편지를 보고 주연의 눈은 동그랗게 커졌고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그리고 '죽지 않았어 그래 살아있어'라는 생각이 스치자마자 주연의 다리가 풀려 그 우편함 앞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다행이다 다행이야'라고 외치는 주연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동생을 찾기 위해 회사도 휴직하고 미친 듯이 돌아다닌 그녀의 입술은 이미 갈라져 물집이 자리 잡아 말도 하기 힘든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다행히 다를 외치고 있었다. 마치 이 편지가 꿈이 아니기를 비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동생의 편지를 들고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연은 마치 자신이 여름 뜨거운 태양 볕에 잃어버린 반지를 찾아 한참을 헤매다가 큰 아름드리나무의 그늘에 반짝 빛나는 무언가를 보며 내 반지임이 분명해라는 확신에 그제야 안도의 숨 그러니까 숨다운 숨을 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검은 편지 봉투를 가슴에 움켜쥔 주연은 서둘러 집으로 들어와 옷도 신발도 벗지도 않고 그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주연…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내가 사라졌던 그날부터 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