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과 행복은 동전의 양면이다.

“늘” 내가 사라진 이유

by 야초툰


안녕 주연!


나야 동생 "늘"

주연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해 들었어.


어떻게 아냐고?


사실 주연의 그림자가 주연이 내가 사라지자마자

앓던 이 빠진 것처럼 시원하다고 밤마다 외친다고 내가 있는 이곳에 벌써 소문을 냈거든.


그래도 별로 서운하지는 않았어.

그게 내가 아는 주연이니까. 그래서 지금 어디 있냐고?


나는 지금 그림자 세상이라는 곳에 있어.

쉽게 말해서, 인간들의 그림자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면 돼.


어때? 나랑 너무 어울리지 않아? 그림자 세상과 그림자 인생을 사는 “늘”이 말이야.

헛소리하지 말고 진짜 어디 있는 거냐고? 그래 어쩌면 주연에게는 내가 사라진 그날부터 설명해야 되겠지?


그날 그러니까 9월 9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야.

물론 내가 이렇게 설명해도 믿는 건 주연의 몫이야.


나도 처음엔 믿지 못했으니까 직접 내 두 눈으로 그림자 세상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해서 주연에게 설명을 해볼게.


주연도 나도 지금은 믿을 만한 이야기라는

세 글자가 간절히 필요한 것 같으니까 말이야.


지금 이곳에 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내가 이 그림자 세상에 첫 발을 디디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

마치 촘촘히 설계된 거미줄에 내가 탁 하니 걸린 느낌이랄까?

그래서 지금은 어쩌면 주연이 '나에게 나가라고 말했던 것'도

어쩌면 그들의 계획의 일부였을 수 있다는 이야기야.

그러니까 그렇게 자책하지 마. 주연의 잘못이 아니야



사실 나 며칠 전에 이상한 전화를 받았었어.

무슨 자신이 그림자 세상 입주자 대표라고 하면서

그림자들이 사는 세상에 내가 입주하게 되었다는 전화였어


딱 들어도 보이스피싱 같지?


그다음은 당연히 이미 정해진 계단을 내려가는 것처럼

이름, 주민등록번호, 신용 카드번호 등을 술술 물어볼 것 같지?


그런데 아니었어 그 입주자 대표 그러니까 그 김 대표라는 사람이

나에게 물어본 건 생뚱맞게 내가 꿈꾸는 집이 무엇인지였어.


주연! 상상이 돼? 나에게 꿈꾸는 집을 물어보다니

방 한 칸도 가져보지도 못한 나에게 말이야.


심지어 주연이 입던 옷, 읽던 책, 쓰던 방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아서 그런지

나에게 선택이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 생경했어.


그런데도 김 대표가 나에게 그걸 묻는 순간 예상된 계단을 내려가야 했는데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는데 내 눈앞에 딱하고 작은 불빛이 보이는 기분이었어.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불빛 안에는

정말 엄청 큰 책장 속에 책이 가득 꽂혀있는 방이 보였지.

나는 그곳에서 조용히 글을 쓰고 있었어.


너무 멋지지 않아? 나는 그때 그 방을 상상만 했었음에도

내가 이미 그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방을 입주자 김 대표라는

자에게 설명하고 말았지.

그래 몇 초 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영원을 사는 것처럼 정말 행복했어.


아무튼 그렇게 김 대표라는 자와 전화 통화가 끝날 때쯤

입주 마지막 절차가 9월 9일 9시에 금빛 한강 호수에 뛰어드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어.


미친 소리 아니야? 말이 돼? 나는 수영도 못하는데

물속으로 뛰어들라니 말이야.


말도 안 되지 심지어

나는 가족 여행을 가도 물 근처도 안 가던 1인이었잖아.


그리고 기억나?

주연이 세상을 살면서 수영을 꼭 해야 한다며

문화센터 자리도 어렵게 폭풍 클릭해서 등록해 주었는데도,


나는 첫 수업에서 수영장 물에 발이 닿자마자 도망가고 말았잖아.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피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었어

그게 늘 “늘”다운 거였거든.


분명 그날 아침까지도 그러려고 했어.

그런데 주연과 싸우고 몇 시간만 밖에 있다가 집에 다시 들어가려고 했는데,

아무 데도 갈 때가 없는 거야 사실 내 주머니에 돈도 없었어.


그래서 시간을 좀 때울 겸 금빛 호수 공원을 걷다가

근처 호숫가를 바라보며 이 물이 뭐라고 무서워서 들어가지도 못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였던 것 같아.


갑자기 뒤에서 ‘쿵쿵쿵쿵’ 무서운 발소리가 들렸어.

나는 무서워서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들의 말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어.


“야 오늘 주인 인간 100 보도 안 걸었어 망했어!

젠장! 그림자 세상 입구 정문 앞 텐트에서나 자야겠다”


“야 너 그동안 모아둔 돈 없어? 왜 또 텐트 행이야?”


“야 인생은 한방이야 게임방에서 다 날렸지 깔깔깔”


“그래도 지긋지긋한 인간에게서 퇴근이다

오늘도 열심히 일한 그림자 뛰어라”


(여러 명의 그림자 소리)“와 아아아 아 퇴근이다”


그 순간 그들은 어디에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사방팔방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나타났어.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말이야.


나는 당황해서 내 앞을 쳐다봤더니

그곳이 바로 9-B 표지판 앞이었어.

그리고 시간은 9시를 가리키고 있었지.


그때 내가 올림픽대로 입구를 막고 서 있는 차처럼

그림자들은 끝없이 나를 밀치며 쏟아졌어.


그리고 나도 그들에게 휩쓸려 물에 빠지게 돼버렸지.

너무 웃긴 건, 물에 빠지면서 하늘을 올려 봤는데

거기에 슈퍼맨 자세를 취하면서 날아오르는 그림자가 보였어.


걔가 뭐라면서 뛰어들었는지 알아?


“피로야 가라~”

주연도 그 그림자 봤으면 완전 빵 터졌을 거야


아무튼 나도 그 퇴근 무리에 휩쓸려 물에 빠져버렸어.

처음에는 물속을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미친 듯이

손을 휘저으면서 발을 찼던 것 같아.


그런데 그럴수록 나는 점점 바닥으로 끌려가버리고 말았지.

그러다가 숨이 턱 하고 막히더니 정신이 점점 흐릿해졌어.


신기한건, 그렇게 정신은 점점 흐릿했는데

이상하게 내 몸은 나를 짓누르고 있는 껍질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마치 오랫동안 누가 갇혀 있던 나를 나오지 못하게

그동안 짓누르고 있었는데 풀려나는 느낌이었어.


그러면서 나는 정신을 잃었지.


그렇게 정신을 잃는 순간

나는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어


"하늘아~하늘아~너만은....

누군가의 그림자로 살면 안 돼

너는 그냥 네가 주인이 되는 거야

아니 내가 꼭 그렇게 만들 거야"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나는 어떤 긴 줄에 서 있었어.

주연 우리 처음 해외여행 갈 때 기억나?


인천 공항에서 외국 나갈 때

출입국에 사람들이 긴 줄로 서 있잖아 그 모습과 같았어.


내가 선 줄의 앞을 쳐다봤더니

일반 입국자 심사대와 자동 출입국 심사대 두 개로 나뉘어 있었고,

심사대 옆에는 형형색색의 텐트들이 줄지어 있었지.


그리고 내 앞 뒤 그림자들은 한 손에는

검은색 여권을 들고 한 손에는 QR코드를 들고 있었어.

나는 아무것도 전달받지 못해서 가만히 멀뚱히 서서 이게 무슨 일인가?

라고 가만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그때 머리가 하얗고 검은색 정장에

뿔테 안경을 한 사람이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어.


나는 그에게 나오는 거므스레 한 연기가 너무 무서워서

앞에 선 그림자 뒤에 숨어 있었는데..


그는 나를 향해 똑바로 걸어오면서 말했어.


“김 하늘 씨? 아니 현실세계에서는 김 늘씨 맞으신가요?”


“네?…네..”


“안녕하세요? 저는 얼마 전 통화를 했던 김 대표입니다.

오시는 길은 어렵지 않으셨나요?”


“네... 근데... 여기.. 가 어디인가요? 천국인가요?”


“깔깔깔 아닙니다

여기는 설명드렸던 그림자 세상의 입구입니다.

그럼 이쪽으로”


그는 나를 자동 출입국 심사대로 안내했어.

그를 따라 가는데 그림자들이 하는 말들이 들렸어


“쟤는 뭐길래? 자동 출입국으로 가?


“쟤 뭐야? 나도 한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일반 출입국에 줄 서 있던 그림자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봤어.



갑자기 유명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얼굴이 달아올라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가리게 되었고,

김 대표가 그들이 나를 향해 웅성 대는 말들을 들었는지

그들을 향해 소리 질렀어.


“물에 빠져 자살한 인간이야!”


그 말을 들은 그림자들은 늘 있던 일인 마냥

‘아하’라고 말하더니, 다시 자기끼리 수다를 떨기 시작했어.


그 말에 나는 황당한 얼굴로 김 대표를 바라봤는데,

그는 나에게 옅은 미소를 보여주며 말했어.


“그림자들이 너무 말이 많아서 소문이 금방 나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게 그들을 진정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이거든요.

그림자들은 죽은 인간에게 관심이 없어서... 많이 언짢으셨나요?”


“아니요 그래도 제가 자살한 건 아닌데….”


“알죠 알죠 김 늘 씨는

그러니까 그림자 세상에 “김 하늘”씨는 저희의 유일한 희망이에요

물론 당신이 불행의 씨앗이 될지 행운의 네잎 클로버인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말이에요. “


의미심장하게 웃는 김대표가 미소가 찝찝했지만,

왠지 이곳에서는 내가 잘 적응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러니까 내가 원래 살고 있던 곳,

그림자들이 말하는 현실 세계에서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어서

매일 그 테두리만 겉돌고 있는 나 자신을 자주 마주쳤거든.


물론 주연 때문은 아니야.

늘 문제는 나 자신이었지.


아무튼 난 이렇게 잘 지내고 있고

조만간 기회가 되면 또 연락할게


그때까지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인생의 주연은 주연답게 지내고 있어.


김대표가 부른다 그럼 이만 가볼게.


주연의 하나뿐인 동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