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놈이 감히.
운동을 하러 간 사이. 사건이 벌어졌다. 나는 분명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내 계정에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왔다고 필라테스 선생님이 알려주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인가? 내 계정이 해킹당한 건가? 내가 1만을 모으려고 눈물 콧물 그리고 (이하 생략)까지 했는데, 청천 병력 같은 소식에 운동 끝나자마자 라커룸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핸드폰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나는 필라테스 선생님에게 다급하게 내 게시물을 보여달라고 말했다. 필라테스 선생님은 핸드폰을 내게 건네며,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나는 서둘러 올라온 글을 읽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남편이었다. 내가 운동을 하는 사이에 남편이 게시물을 올린 것이었다.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나는 분노를 연료 삼아, 송골솔골 이마에 맺힌 땀을 바람에 말리며 집으로 뛰어갔다. 내 인생의 최고의 속력이었다.
남편 역시 자신의 범행이 이렇게 빨리 들킬 줄 몰랐던 것 같다. 뛰어 들어갔다니 거실 소파에 앉아 내 핸드폰을 들고 키득키득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너무 화가 나서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잡았다.
"감히? 네가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 얼른 게시물 내려."
"왜에에엥. 재밌지 않아? 만우절 이벤트야. 그리고 생각해 보면 나도 꽤 네 계정에 지분이 있어."
"건방진, 검은 머리 짐승 같으니라고."
기가 죽기는커녕 눈을 치켜뜨고 나에게 반항하는 남편의 행동에 잠시 주춤한 사이, 남편은 그 빈틈을 끼어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내 이야기를 들어봥.“
사건의 시작은 내가 오늘 늦잠을 자서 서둘러 운동하러 뛰쳐나가느라 핸드폰을 두고 간 게 문제였다. 자신을 통제할 주인이 사라진 핸드폰은 자신의 존재를 뽐내며 몸을 신나게 흔들고 있었던 모양이다.
쉬는 날이었던 남편은 마침 그 소리에 일어나게 되었고, 흡사 나이트클럽을 방불케 하는 소파 위에 핸드폰을 멈추게 하고자 손에 들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알람 메시지를 타고 내 계정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 문뜩 오늘이 만우절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고 한다. 심지어 아무리 불러도 아내는 집에 없었다. 한참을 찾아다니고 나서야 어렴풋이 어제오늘 운동 간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고 한다.
그렇다고 나간다고 말도 없이 나가다니. 집 나간 아내에게 앞으로 핸드폰을 두고 다니면 이런 일이 생긴다는 작은 경고를 하고 싶어 졌단다. 그래서 결국 아내 몰래 계정을 훔치게 되었다고.
“그러니깐, 핸드폰 들고 다녀. 길 가다가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내가 데리러 못 가잖아.”
어이가 없었다. 계정을 훔친 도둑이 오히려 더 말이 많았다. 경고는 무슨 당장 지우라고 말하니 이미 자기가 올린 글에 댓글이 달리고 있어 당장 지울 수 없다며 뻔뻔하게 버티기 시작했다.
댓글은 무슨 댓글이냐며, 그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가로채 확인해 보니 정말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그 댓글에 친절하게 답변을 해 주고 있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금손이라고 남편을 칭찬하는 댓글,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응원하거나, 온라인 샵에 팔 생각이 없냐는 등등. 심지어 실타래 구매처까지 묻는 질문이 있었다. 그는 그 질문에 신이 나 인터넷 사이트 링크까지 보내려고 하는 와중에 내가 들어온 것이었다.
내 계정의 콘셉트는 시크엔 낯가림이었는데, 몇 시간 만에 해킹범이 자기 스타일로 바꿔버렸다. 그가 올린 피드에 있는 사진들은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알록달록 화사한 사진과 함께 봄 냄새 잔뜩 나는 음악까지. 남편의 취향이 흠씬 묻어났다. 그저 잠시 핸드폰을 두고 갔을 뿐인데. 나는 그 아저씨에게 경고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어, "
"안돼~나에게 묻는 질문들 답변해줘야 해. 나도 지분 있어. 오늘 하루만 내가 관리할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다시 주어 담을 수 없는 관계로 너그러이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럼 약속해. 이상한 사진 피드에 올리지 않기로."
"알았어. 약속."
나는 그와 어쩔 수 없이 약속을 했지만, 그가 웃을 때마다 기분 나쁜 찝찝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해시태그를 잘 쓰지도 못하면서, 그가 무물보라는 해시태그를 달기 위해서 얼마나 검색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MZ가 되고 싶은 아저씨의 마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