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봄
글을 쓰게 된 것도 어쩌면 낯가림으로 비롯된 결과였다. 직접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되고, 혼자 컴퓨터에 앉아서 주절주절 떠들면 되는 일이니까. 낯이라고 해봤자 바라보는 이는 모니터에 불빛뿐이니, 머리를 감지 않아도 되고 억지웃음으로 얼굴을 칠하지 않아도 되었다.
문제는 천성이 게으르다는 점에 있었지만. 오늘도 글을 쓰지도 않고 낮잠을 자다가 엄마에게 걸렸다. 어색한 연기를 뚫고 날카로운 칼날 같은 말이 날아와 꽂힌다.
"너, 지금까지 잤지?"
어쩜 엄마는 보이지 않는 나를 마치 보고 있는 것처럼 아는 걸까? 엄마는 보이지 않아도 다 안다는 말이 더 무섭다. 무엇 때문에 전화했냐는 딸의 퉁명스러움에도 엄마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엄마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라며 전화를 끊는다. 읽지 않은 메시지 10개. 엄마는 또 무슨 이야기를 딸에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야기가 아니라 사진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벽화에 그림을 그렸다고 보낸 사진들. 엄마는 어깨를 들썩이며 벽에다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무슨 그림이냐고 물으니. 아픈 외삼촌을 위해 동생인 엄마가 주는 생일선물이란다. 그래서 그림이 생선일 수밖에 없다는 엄마의 말에 웃음이 삐쭉 새어 나온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엄마가 그린 물고기는 한 없이 자유로웠다. 그래서 더 슬퍼 보였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얼마나 자유롭고 싶으면 엄마는 저렇게 자유로워 보이는 물고기를 그리는 걸까? 생각해 보면 엄마의 인생 자체가 그물에 걸린 물고기였는데.
태어날 때부터 없었던 엄마의 빈자리, 자신을 홀로 두고 절로 가버린 오빠, 새엄마, 동생들을 키우기 위해 놓았던 학업, 시부모님의 병간호와 아픈 오빠, 철없는 두 딸들, 계속되는 가난. 끝도 없는 병간호.
다행히 엄마는 그물 자리엔 원망보다 사랑이 있었다. 엄마는 빈 공간에도 따스함을 채워 넣었다.
자신을 따스하게 대해주던 아빠, 그리운 오빠, 나를 돌봐주는 새어머니, 새로 생긴 동생들, 며느리를 예뻐하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착한 두 딸, 가난하지만 행복한 시간, 지킬 수 있는 가족.
엄마의 시선으로 보니 슬퍼 보이던 물고기가 춤을 추는 듯 자유로워 보인다.
아마도 겨울에 시린 발 동동 구르며 스님이 된 오빠가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서일까?
아니면 인생의 벽을 만나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그건 벽이 아니라 그림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수도.
그림을 그리며 매서운 바람도 춥지 않다는 엄마의 겨울은 얼마나 추웠을지 나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다. 내 인생에는 혹독한 겨울은 없었으니까. 혹시 잔 바람이라도 불면, 찬 바람으로 변할까 봐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막는 사람. 그게 우리 엄마였다.
신기했다. 엄마가 그린 벽화가 엄마가 없던 소녀의 추운 겨울을 떠올리게 만들다니. 참 시렸겠다. 슬프기도 했겠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 내 마음을 또 귀신처럼 알아 차린 엄마는 벽에 그림을 그릴 생각에 처음으로 설레어 밤잠을 설쳤다고 메시지를 보낸다.
아마도 딸이 일어난 것인가? 확인 사살을 하는 메시지일 테지만, 오늘은 그 모습마저도 장난기 있는 소녀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엄마는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던 소녀의 봄을 지금 그림을 그리며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온 마음을 담아 응원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낯을 가려 글을 쓰기 시작한 딸이 붓을 든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를.